(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착하게 사는 건 지겹지 않나요?”
최근 종영한 MBC 일일드라마 ‘하늘의 인연’에서 배우 김유석은 돈과 권력이 법보다 강하다고 믿는 탐욕의 화신이자 악역 강치환 역을 맡아 120회 내내 극의 흐름을 좌우했다.
말 그대로 빌런 원톱이었다. 그에게 악역의 매력을 묻자 “악역의 매력이라기 보다는 착한 게 싫다. 착하게 사는 건 지겹지 않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물을 구축할 때 착하게 사는 캐릭터보다는 ‘쟤가 왜 꼬여있지?’하며 꼬여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가 생기고 시원해요. 착한 역은 밋밋하고 재미없는데 악역은 통쾌해요. 삶에서 안 해본 역할을 하는 게 재밌어요.”
‘하늘의 인연’은 아버지의 그릇된 욕망이 만든 비극으로 원수가 되어버린 부녀가 마침내 천륜의 사랑을 깨닫는 이야기다. 강치환은 돈과 권력을 좇아 자신의 아이를 가진 옛사랑 이순영(심이영 분)을 잔인하게 버렸다. 이후 친딸 윤솔(전혜연)에게도 비정한 모습을 보여준 빌런 끝판왕이다.
김유석은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작가님의 목표가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의해 악행을 저지른 악인이지만 인간성을 회복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어요. 끝까지 살아남아 죗값을 치르는 거죠.
연기를 하면서 보니 구원 받을 놈이 아니더라고요. 자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잘못된 것을 인지하면서도 죄책감 없이 범행을 저지르잖아요.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 대상 같은데 죽어서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했어요. 저도 납득이 안 되는 인물이어서 암담했죠. 나쁜 짓을 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나중에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걱정도 되고요.
그래서 양심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면 연기할 수 없을 것 같아 죄책감 없이 연기했어요. 그 정도로 저에게도 강치환은 진짜 이해 안 되는 놈이었죠. 죽을 때까지 모욕과 수모와 벌을 받아도 모자라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과 뒷부분을 상의한 적 있어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니 처참하게 응징당하고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정의가 생기고 사이다도 생기는 게 아닌가 했어요. 작가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끝까지 살려서 수모당하고 벌 받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쉽지 않은 캐릭터였죠.”
27년 차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김유석은 ‘하늘의 인연’의 주인공으로 일찌감치 낙점됐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특유의 예리한 눈빛과 관록의 연기로 빌런 원톱을 완성해 냈다.
“김진형 감독님의 데뷔작이거든요. 매 신 준비를 철저하게 해오고 공을 들이고 일일극이라고 쓱 넘어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장에서 말이 잘 통했죠. 의견을 제시하면 흔쾌히 받아들이고 아닌 건 아니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시고 매력적이고 신뢰가 드는 감독님이어서 나중에 또 만나고 싶어요.
여정미 작가님과는 ‘울지 않는 새’를 한 적 있었는데 작가님에게 고마웠던 건 기획 단계에서 원픽으로 김유석 배우와 가고 싶다고 전화를 주셨어요. 이때까지 한 악역 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놈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좋기도 하면서 필발이 장난 아니신데 어디까지 치달을까 할 정도로 겁이 났어요.
결과적으로는 작가님이 원하신 그림이 제대로 그려졌는지 생각해 볼 때 다행히 나쁘지 않았어요. 그 그림에 가깝게 창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만들었고 실망스럽지 않은 결과를 만든 것 같아요.”
캐릭터와 완벽하게 한 몸이 되는 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시종 감정을 다이내믹하게 표출해야 하는 악역은 더 그럴 터다. 6개월 이상 강치환에게 몰입한 김유석은 여전히 캐릭터의 여운을 느끼고 있다.
“일일드라마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악역을 한다는 건 5개월 정도쯤에서는 우울증과 소화불량, 피폐함 등이 생겨요. 세상과 사람을 볼 때 제대로 된 눈으로 보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막판이 되니 그런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다져나가면서 준비하는 과정에 익숙한 배우여서 이런 감정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윤솔은 재심 재판에서 윤이창(이훈) 사망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강치환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감옥에서 하진우(서한결)와 윤솔의 결혼을 축복한 강치환은 27년간 딸로 알았던 세나(정우연)와도 회포를 푼다. 윤솔과 하진우는 입양한 아이의 돌잔치 때 강치환이 만든 목각인형 선물을 받고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김유석은 “고생을 많이 하고 심적 부담감이 컸다. 촬영이 끝나고 진이 다 빠져 어떻게 해야 하지 할 정도로 아무것도 못 하겠는 거다. 아직은 종영이 실감이 나지 않은 상태여서 어떤 마음이 올지 기다리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강치환에게 연민이 쌓여야 하는데 그게 전혀 없어서 연기할 때 오히려 편했어요. (악행을) 당연시 여기고 하면 되거든요. 어려웠던 건 이런 인간도 살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잖아요. 될까 반신반의하면서 찍었어요.
강치환이 어떻게 용서를 받을까 했는데 용서를 구하진 않지만 반성하고 늬우치고 엉엉 울어요. 물론 그렇다고 지은 죄가 씻기는 건 아니에요. 평생 감옥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벌 받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강치환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놈이에요. 뉘우쳐도 소용없죠.” (웃음) (인터뷰②에서 계속)
사진= 김유석 제공, MBC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