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수원월드컵경기장, 권동환 기자) 한국 축구가 32년 만에 열린 동남아와의 홈 평가전에서 주포 손흥민(토트넘)을 선발 투입하는 등 최정예 라인업을 구성, 맹폭한 끝에 대승을 챙겼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친선 경기 베트남전에서 전반 2골, 후반 4골을 합쳐 6-0 대승을 거뒀다.
전반전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희찬(울버햄프턴)이 득점했고, 후반전엔 자책골을 시작으로 손흥민, 이강인(PSG), 정우영(프라이부르크)가 골을 넣었다.
이날 승리로 클린스만호는 지난달 영국 뉴캐슬에서 열린 중동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전 1-0 승리, 지난 13일 열린 북아프리카 강호 튀니지전 4-0 대승에 이어 A매치 3연승을 기록했다. 이달 홈 2연전에서 10골을 쏟아부으면서도 김민재가 중심을 잡고 있는 수비라인은 전부 무실점으로 마쳤다.
한국 축구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 열린 한국-프랑스 친선경기에서 2-3으로 진 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에서 13경기 무패(11승2무) 기록하는 성과도 이어갔다.
한국은 다음달 16일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1차전 홈 경기에서 붙을 상대가 이날 싱가포르로 확정됨에 따라 같은 동남아 팀 베트남을 상대로 좋은 모의고사를 치른 셈이 됐다.
다만 한국 국가대표팀이 지난 1991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인도네시아와 붙은 뒤 32년 만에 홈에서 동남아 팀을 불러다 친선 경기를 벌인 것은 논란으로 남게 됐다. 축구팬과 언론은 소중한 A매치 기회에 굳이 동남아 팀과 평가전을 해야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어쨌든 대승으로 성과가 없진 않게 됐다.
이날 경기에선 지난 2017년부터 올 초까지 베트남 대표팀을 맡아 아세안축구연맹(AFF)컵 우승 1회, 준우승 2회 그리고 FIFA랭킹 100위 이내 진입을 이뤄낸 박항서 감독이 등장해 양팀 선수들을 격려하고 본부석에서 이날 경기를 지켜봤다.
클린스만호는 튀니지전에서 유럽파 공격 자원들을 대거 동원해 오히려 베트남 선수들과 팬들이 환호하게 할 장면을 연출했다.
4-4-2 포메이션을 꺼내든 가운데 골키퍼는 기존 김승규(알 샤바브) 대신 2018 러시아 월드컵 주전이었던 조현우(울산)이 나섰으나 백4는 최근 주전 수비라인이 모두 나왔다. 왼쪽부터 이기제(수원),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이상 울산)이 포진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박용우(알 아인)가 포진했으며 황희찬, 이강인이 좌우 미드필더로 나섰다. 공격형 미드필더엔 이재성(마인츠)이 섰다. 투톱은 손흥민, 조규성(미트윌란)으로 짜여졌다.
내년 1월 아시안컵 모의고사로 가정하고 주전급 선수들을 전반전에 최대한 투입해 대량 득점을 만든 뒤 후반에 로테이션을 해보겠다는 클린스만의 의도로 풀이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을 16강으로 이끈 프랑스 출신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은 4-4-2로 맞섰다. 당 반 럼이 골키퍼 장갑을 꼈고, 보 민 트룽, 판 뚜언 타이, 도 주이 마인, 부이 호앙 비엣 안이 백4를 구성했다. 중원엔 도 훙 둥, 응구엔 투안 안, 응우옌 호앙 득, 쯔엉 티엔 안이 배치됐고, 최전방에서 응우옌 딘 박과 팜 뚜언 하이가 한국 골문을 노렸다.
한국은 초반부터 6~7명이 뒤에서 진을 친 베트남을 상대로 일방적인 공격을 펼친 끝에 전반 5분 선제골을 낚았다. 전반 3분 박용우의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몸을 푼 한국은 2분 뒤 첫 골을 터트렸다. 태극전사의 전방 압박에 흔들리던 베트남이 코너킥을 허용했고 이를 이강인이 왼발로 올리자 공격 가담한 김민재가 머리받기를 시도했고 볼이 그의 어깨를 맞은 뒤 골이 됐다.
나흘 전 튀니지전에서 헤더골을 넣고도 마지막에 상대 발을 맞고 들어간 탓에 자책골로 기록되는 불운을 겪었던 김민재는 이번 베트남전에선 확실한 자신의 득점을 기록했다. 김민재가 뒤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순식간에 나타나다보니 점프할 때 주위에 어떤 베트남 선수들도 마크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베트남 수비라인을 유린하던 태극전사들은 전반 13분 황희찬이 찬 오른발 슛이 상대 수비를 맞으며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이강인이 직접 차기보단 아크 정면으로 내줘 상대 허를 찔렀는데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왔다.
전반 15분엔 튀니지전 멀티골 주인공 이강인의 슛이 왼쪽 골포스트를 빗나가 수원월드컵경기장에 모인 4만 관중을 탄식하게 만들었다. 이강인이 상대 미드필드 한복판에서 오른쪽 수비수 설영우에 패스를 내줬고 설영우가 다시 이강인에 리턴패스할 때 반박자 빠른 왼발 슛으로 연결한 것이다. 당 반 럼도 꼼짝 못하는 슛이었으나 볼이 골대를 벗어났다.
전반 17분에도 아쉬운 찬스가 흘러갔다. 유기적인 연결 뒤 손흥민이 일대일 찬스를 맞았으나 오른발 슛을 상대 문지기 당 반 럼이 왼발을 쭉 뻗으면서 본능적으로 걷어낸 것이다.
클린스만호도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베트남 역습 과정에서 단독 찬스를 내줬고 쯔엉 티엔 안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황희찬을 완벽하게 제치며 왼발 감아차기를 시도한 것이 크로스바 오른쪽을 살짝 넘어간 것이다. 골결정력이 있었다면 여지 없이 실점했을 만큼 순식간에 위기를 내줬다.
잠시 주춤했던 한국은 전반 26분 프리미어리그에서 펄펄 날고 있는 황희찬이 이날 경기 두 번째 골을 터트리며 경기장 분위기를 다시 살렸다. 중원에서 이재성이 상대 수비 무너트리는 침투패스를 내줬고 이를 황희찬이 잡아 드리블한 뒤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오른발 대각선 슛을 시도해 원정팀 골망을 출렁인 것이다. 황희찬은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포르투갈과의 최종전에서 한국의 16강 진출 확정짓는 득점포를 터트린 뒤 11개월 만에 A매치 골을 넣었다.
2023/24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5골을 넣으면서 특히 골결정력을 가리키는 골전환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황희찬의 킬러 본능이 불을 뿜었다.
하지만 한국은 전반 29분 안이하게 볼 처리를 하다가 웅우옌 딘 박에 위렵적인 오른발 슛을 내줘 만회골을 내줄 뻔 했다. 앞서 쯔엉 티엔 안의 골찬스처럼 키커의 결정력이 좋았다면 골이 될 수 있는 위기였다. 클린스만도 벤치에서 뛰쳐나와 아쉬움을 표시했다.
클린스만호는 이후 왼쪽 측면에 포진한 황희찬의 드리블 돌파 등 단독 플레이를 통해 활로를 뚫고 조규성, 손흥민 등이 빈 공간 찾아들어가는 움직임으로 3번째 골을 노렸다. 하지만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6골을 넣으며 득점 단독 2위에 오른 손흥민이 전반전에선 3차례 슛을 모두 골문 밖으로 차면서 추가골을 이뤄내지 못했다. 설영우는 베트남 선수와 볼경합 도중 다리에 피가 나는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간단한 치료 뒤 계속 플레이했다.
전반 45분엔 이재성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단독 찬스를 맞아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당 반 럼에 막혔다. 러시아 혼혈로 동남아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당 반 럼은 이날 태극전사들의 소나기 슛을 상당히 잘 막아냈다.
결국 추가시간 1분도 지나고 한국이 2-0으로 앞서면서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후반 들어 한국은 더욱 매서운 공격력을 뽐냈다. 거의 성인팀이 고등학교 축구팀을 다루듯 했다.
한국은 후반 6분 손흥민이 내준 패스를 조규성이 밀어 넣는 듯했으나 상대 수비 맞고 들어가 자책골로 3-0을 만들었다. 이어 이날 들어 슛이 번번히 빗나가던 손흥민이 후반 15분에 4-0을 만들었다. 손흥민은 황희찬과 패스를 주고받은 뒤 달려들어 오른발 슈팅으로 자신의 A매치 38호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은 클린스만호 첫 경기에선 지난 3월 콜롬비아전에서 멀티골을 넣었으나 이후 득점이 없었다. 6월 열린 페루전, 엘살바도르전에선 탈장 수술로 인해 엘살바도르전에서만 교체로 들어가 잠깐 뛰었고 9월 유럽 원정에선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않았다. 지난 13일 튀니지전에선 사타구니 부상 등으로 아예 쉬었다. 그러다가 베트남전에서 전반부터 의욕적으로 슛을 쏜 끝에 7개월 만에 A매치 득점포를 쏘아올렸다.
이후 한국은 상대 선수 퇴장으로 수적 우세까지 점하게 됐다. 후반 16분 부이 호앙 비엣 아인이 수비하다가 페널티지역 밖에서 손흥민에게 볼을 빼앗긴 뒤 그를 저지하다가 넘어트린 것이다. 주심은 즉각 레드카드를 빼들어 그에게 퇴장을 지시했다.
이 때부터 태극전사들은 마치 'A매치에서 나도 한 번 골 넣어보자'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었고 후반 25분 튀니지전 멀티골의 사나이 이강인이 A매치 두 경기 연속골에 성공했다.
교체로 들어간 황의조(노리치 시티)가 후반 25분 측면을 뚫어낸 뒤 페널티지역 정면으로 내준 공을 잡아 이강인에게 내줬고, 이강인이 이를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베트남 골망을 출렁였다. 이강인은 A매치 16경기 3골을 기록하게 됐다.
대미를 장식한 선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8골을 퍼부으며 득점왕에 오른 정우영이었다. 정우영은 후반 41분 황의조의 슈팅이 굴절된 것을 골문 앞에서 당 반 럼이 잡기 전에 빼앗아 밀어 넣고 6-0 대승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골 넣은 뒤엔 아시안게임에서 득점할 때마다 유명해진 경례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한국 축구가 A매치에서 6골 이상 넣기는 지난 2019년 10월10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스리랑카와의 홈 경기 8-0 대승 이후 4년 만이다.
클린스만호는 이날 2~3수 아래로 꼽히는 베트남을 맞아 기록 면에서도 크게 앞섰다. 한국은 슈팅 33-8, 유효 슈팅 12-1, 공격 점유율 66% 대 34% 등으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다.
물론 문제도 있었다. 전반 29분 응우예 딘 박에게 결정적인 위기를 내주더니 후반엔 상대 프리킥 찬스에서 골대를 한 번 맞는 아찔한 장면을 허용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골결정력이 괜찮았다면 1~2골을 내줄 수 있는 위기였다. 김민재가 역습을 당해도 좋은 스피드를 활용해 막아냈으나 카타르 월드컵 뒤 대표팀 주전을 꿰찬 이기제, 설영우, 정승현 등이 김민재와 더 호흡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났다.
경기를 마친 뒤 클린스만은 "선수들이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줘서 기쁘다"며 "선수들의 경기 태도나 집중력을 높게 평가한다. 득점도 많이 했고, 경기력도 나아졌다고 생각한다"고 호평했다.
클린스만은 "중요한 것은 열흘간 선수들이 훈련을 하며 보여준 모습들을 지난 튀니지전에 이어 다시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높게 사고 싶다. 오늘 경기는 월드컵 2차예선을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친선 경기였다. 예선에 앞서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보여준 경기였던 것 같다. 선수들과 함께해서 행복했던 열흘이었다"고 했다.
손흥민 풀타임을 두고는 "기존 계획은 90분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었다. 손흥민과도 얘기를 했다. 손흥민의 근육 부상이 재발한 것은 아니었다. 본인도 괜찮다고 했다"며 "주장과 함께 90분을 소화했다는 게 중요했다. 손흥민이 스스로 진지하게, 집중력을 갖고 경기 템포를 늦추지 않으며 경기에 임했다"고 손흥민을 충분히 쓸 생각이 있었음을 알렸다.
이어 재택 근무 논란에도 주말 유럽파 관전을 통해 자신의 행보를 계속 관철할 뜻을 전했다. 클린스만은 "마인츠-바이에른 뮌헨이 싸우는 경기, 이재성과 김민재의 경기를 관전한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집에 갔다가 11월 FA컵 일정에 맞춰 한국에 돌아온다"며 "FA컵 일정이 끝나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 가서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를 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적장인 트루시에는 "한국처럼 톱클래스 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했지만 결과가 따라오지 못했다"며 "상대는 피지컬적으로 앞섰고 전술적으로도 좋은 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팀을 계속 만드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월드컵을 준비하는 팀이다. 퇴장으로 10명이 싸우다보니 더 힘들었지만 선수들이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줬다"고 했다.
다만 트루시에는 "패배나 스코어는 놀랍지 않다. 선수 개개인 능력치, 경험에서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며 "다만 우리도 빠른 선수를 투입하며 2~3골을 넣을 기회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득점이) 나오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좋은 찬스에서 골결정력 부족했던 것을 되돌아봤다.
한편,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의 첫 상대팀은 같은 날 동남아 싱가포르로 결정됐다.
한국은 다음달 시작되는 북중미 월드컵 2차예선에서 중국, 태국과 한 조에 속했는데 다른 한 팀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1차예선에서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격돌하는 싱가포르-괌 승자가 막차로 합류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두 팀이 1~2차전을 모두 마쳤고 결국 싱가포르가 이겼다.
싱가포르는 17일 적지에서 열린 2026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2차전 원정 경기에서 괌을 1-0으로 이겼다. 앞서 1차전 홈 경기에서 괌을 2-1로 이겼던 싱가포르는 2전 전승을 거두고 2차예선에 올랐다. 한국은 내달 16일 싱가포르와 홈 경기를 시작으로 2026 월드컵 첫 항해에 나선다. 이어 21일엔 중국으로 건너가 원정 경기를 소화한다. 태국과는 내년 3월 홈앤드어웨이로 2연전을 치른다.
싱가포르는 지난달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한 세계랭킹이 157위에 불과한 국가로 26위인 한국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일본인 니시가야 다카유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데 2011년 싱가포르에 진출한 30살 한국 선수 송이영이 2년 전인 2021년 귀화까지 마쳐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다음달 싱가포르를 직접 방문, 현지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를 관전하는 등 싱가포르 축구 수준을 파악할 예정이다.
◆ 클린스만호 전적 및 일정
2023년 3월24일 한국 2-2 콜롬비아(울산문수축구경기장) 득점 : 손흥민(2골)
2023년 3월28일 한국 1-2 우루과이(서울월드컵경기장) 득점 : 황인범
2023년 6월16일 한국 0-1 페루(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2023년 6월20일 한국 1-1 엘살바도르(대전월드컵경기장) 득점 : 황의조
2023년 9월8일 한국 0-0 웨일스(영국 카디프)
2023년 9월13일 한국 1-0 사우디아라비아(영국 뉴캐슬) 득점: 조규성
2023년 10월13일 한국 4-0 튀니지(서울월드컵경기장) 득점 : 이강인(2골) 황의조 자책골
2023년 10월17일 한국 6-0 베트남(수원월드컵경기장) 득점 : 김민재 황희찬 손흥민 이강인 정우영 자책골
2023년 11월16일 한국-싱가포르
2023년 11월21일 한국-중국
2024년 1월15일 한국-바레인
2024년 1월20일 한국-요르단
2024년 1월25일 한국-말레이시아
2024년 3월21일 한국-태국
2024년 3월26일 한국-태국
2024년 6월6일 한국-싱가포르
2024년 6월11일 한국-중국
사진=수원월드컵경기장, 박지영 기자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