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10년 넘게 한 팀에서 뛰면서 단 한 시즌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투수가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최근 2년간 7승에 그쳤던 LG 트윈스 투수 임찬규가 14승 달성과 함께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임찬규는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최종전에 선발 등판, 5⅔이닝 4피안타 1사사구 3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5-2 승리를 견인했다. 2회초에 점수를 헌납한 걸 제외하면 크게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임찬규가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한 시즌은 2018년(11승)과 2020년(10승) 총 두 차례였다. 하지만 두 시즌 평균자책점이 각각 5.77, 4.08로 투구 내용까지 만족스럽진 않았는데, 올 시즌은 확실히 달랐다. 30경기 144⅔이닝 14승 3패 1홀드 평균자책점 3.42로 단순히 승수만 많이 쌓았던 게 아니었다.
첫 단추를 잘 끼운 임찬규는 4월 한 달간 21⅓이닝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2.91을 기록했다.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의 보직은 선발이 아닌 불펜이었고, 임찬규는 4월 16일 두산과의 홈경기를 기점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기 시작했다.
4월 말부터 안정감을 찾은 임찬규는 5월 4경기 24이닝 4승 평균자책점 1.13으로 상승 곡선을 그려나갔다. 5월 28일 광주 KIA전에서는 7이닝 무실점 투구로 시즌 5승째를 올리면서 평균자책점을 1.97까지 떨어트렸다.
물론 시즌 내내 흐름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임찬규는 6월 이후 부침을 겪기도 했다. 6월 27일 인천 SSG전 이후 한 달 넘게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기도 했고, 8월 27일 창원 NC전에서는 '헤드샷 퇴장'으로 아웃카운트 1개 없이 마운드를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에도 굴하지 않은 임찬규는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다시 힘을 냈다. 5이닝을 소화하는 건 기본이었고, 지난달 23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는 무려 8이닝을 던지면서 올 시즌 개인 한 경기 최다 이닝을 소화했다. 타선의 득점 지원까지 확실하게 받은 덕분에 자신이 원했던 그림대로 정규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임찬규의 커리어 하이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말, 취재진과 만났던 임찬규는 염경엽 LG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며 시즌을 준비한 과정을 돌아봤다. 그는 "감독님께서 주문하셨던 게 변화구를 살리라는 것이었다. 캠프 때부터, 또 롱릴리프를 준비할 때도 선발진에 성적을 낼 수 있는 젊은 투수들이 선발진에 있기 때문에 그 뒤를 받쳐주자고 말씀하셨고,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까 (욕심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선발 자리, 또 퀄리티스타트, 5이닝 이런 걸 내려놓게 되면서 그냥 내 색깔을 찾게 됐다"며 "자연스럽게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언제든지 롱릴리프로 또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나가는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상승세의 비결을 전했다.
선발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저 주어진 역할만을 소화하자는 게 임찬규의 생각이었다. 그는 "어떠한 궤도라는 건 생각하기 나름인데, 나 역시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놓치게 되면 좌절했다. 그래서 그런 거 없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중간에 가서 던지면 되는 것이고, 선발로 가면 선발대로 가서 그냥 '내 공을 던지자'고 생각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18.44m에서 원하는 공을 던지는 것밖에 할 수 없지 않나. 그 부분에만 집중했다"고 얘기했다.
승수가 좀 더 쌓인 8월 초에도 임찬규는 겸손했다. 그는 "10승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시즌을 시작한 게 아니다. 좋은 야수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이닝을 던지지 않았음에도 많은 승수를 가져온 것 같다"며 "승리를 의식하고 평균자책점과 같은 기록을 의식하게 되면 이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시즌 초에 준비한 대로 팀이 필요한 자리에서 열심히 던져주는 내 역할인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임찬규는 "7월에 경기도 많이 없었고, 텀이 너무 길었다. 내용도 좋지 않아서 생각이 좀 많아질 수 있었는데, (8월 초) 키움과의 홈경기 전에 다시 리마인드를 했다. 캠프 때 준비했던 것, 시즌 초반에 공부했던 것들을 돌아보면서 어떤 마인드로 경기에 나갔고 다시 무언가를 지키려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좀 더 재밌게 즐기자는 마인드로 경기에 임하려고 했고, 위기 때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가면서 좋은 날이 온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더 이상 증명할 게 없다. 염경엽 LG 감독도 시즌 내내 임찬규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면 "국내 1선발"이라며 치켜세웠다. 아담 플럿코 없이 한국시리즈를 준비해야 하는 LG로선 2선발에 대한 고민을 풀어야 하는 가운데, 임찬규가 그 중책을 맡을 가능성도 열려있다. 시즌 14승과 정규시즌 우승으로 그동안의 아쉬움을 털어낸 임찬규가 가을야구에서도 활짝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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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