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김지수 기자)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대만을 꺾고 4회 연속 아시아게임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조별리그에서 대만에 패했던 아픔을 깨끗하게 되갚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한국은 7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야구 스포츠 문화센터(Shaoxing Baseball & Softball Sports Centre-Baseball)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 결정전에서 대만을 2-0으로 이겼다.
선발투수 문동주가 6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4사구 무실점 완벽투로 한국의 금메달을 책임졌다. 지난 2일 대만과 B 조별리그 2차전에서 4이닝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던 가운데 닷새 후 치러진 금메달 결정전을 지배하고 설욕에 성공했다.
타선에서는 2회초 김주원의 결승 1타점 희생 플라이가 천금 같았다. 한국은 2회초 선취 득점 후 상대 폭투로 한 점을 보탠 뒤 추가 득점이 없었던 가운데 김주원의 희생타가 승리의 발판을 놓는 데 큰역할을 해냈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1998 방콩, 2002 부산, 2010 광저우,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통산 6번째 금메달이자 4회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류중일 감독은 2014 인천 대회에서 태극전사들을 이끌고 금메달을 견인한 데 이어 9년 만에 또 한 번 한국 야구를 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려놨다.
한국은 김혜성(2루수·키움)-최지훈(중견수·SSG)-윤동희(우익수·롯데)-노시환(3루수·한화)-문보경(1루수·LG)-강백호(지명타자·KT)-김주원(유격수·NC)-김형준(포수·NC)-김성윤(좌익수·삼성) 순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지난 5일 중국, 6일 일본전과 동일한 타순을 꾸려 대만 선발투수 린위민(Lin Yu-min)에 맞섰다.
한국의 금메달 결정전 선발투수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2일 대만과 조별리그 2차전에 선발등판했던 문동주가 금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야구의 명운을 걸고 마운드에 올랐다.
대만은 쩡종저(유격수)-린즈웨이(좌익수)-린리(지명타자)-린안커(우익수)-우녠팅(1루수)-린즈하오(3루수)-리하오위(2루수)-션하오웨이(중견수)-린쟈정(포수)으로 선발 라인업을 들고나왔다. 지난 2일 한국과 조별리그와 비교하면 리하오위와 린즈하오의 타순만 바뀌었다.
한국은 1회초 1사 후 최지훈의 볼넷 출루 후 윤동희가 우전 안타를 쳐내면서 1사 1·2루 기회가 4번타자 노시환 앞에 차려졌다. 지난 2일 대만과 조별리그 2차전에서 선발투수 린위민에게 6회까지 4안타 1볼넷 무득점으로 꽁꽁 묶였던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공략하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기대를 걸었던 노시환의 방망이가 터지지 않았다. 린위민을 상대로 잘 맞은 타구를 만들어 냈지만 2루수 정면으로 향했고 2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4-6-3' 병살타로 이어지면서 한국은 득점 없이 1회초 공격을 마쳤다.
외려 1회말 수비 시작과 동시에 선발투수 문동주가 위기를 맞았다. 선두타자 쩡종저에게 2루타를 허용한 뒤 린즈웨이의 희생 번트 성공으로 1사 3루 실점 위기가 들이닥쳤다.
문동주는 여기서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린리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빠르게 아웃 카운트를 늘렸다. 3루 주자 쩡종저가 홈으로 스타트하지 못하면서 2사 3루가 됐다. 이어 4번타자 린안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실점 없이 1회말 수비를 끝냈다.
한국은 초반 고비를 넘기고 2회초 공격에서 린위민 공략에 성공했다. 선두타자 문보경이 2루타를 치고 나가며 포문을 열었다. 후속타자 강백호의 타석 때 린위민의 폭투가 나오면서 무사 3루 찬스를 잡았다.
한국은 강백호가 3루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흐름이 한차례 끊겼지만 김주원의 좌익수 뜬공 때 문보경이 태그업 후 홈 플레이트를 밟으면서 1-0으로 먼저 앞서갔다.
기세가 오른 한국 타선은 린위민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형준이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간 뒤 김성윤의 2루타가 터지면서 2사 2·3루로 린위민을 압박했다.
린위민은 당황한 듯 제구가 흔들렸다. 강한 비바람 속에 투구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김혜성의 타석에서 어처구니없는 폭투를 범했다. 한국에게는 행운이었고 2루 주자 김성윤, 3루 주자 김형준이 한 베이스씩 진루하면서 스코어는 2-0이 됐다.
타자들이 분발하자 문동주도 힘을 냈다. 150km 중반대 강속구와 포크볼 등 변화구를 앞세워 대만 타선을 요리했다. 2회말 우녠팅을 2루수 땅볼, 린즈하오를 삼진, 리하오위를 3루수 땅볼로 잡고 삼자범퇴로 수비를 마쳤다.
문동주는 3회말에도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선두타자 션 하오웨이를 삼진, 린쟈정을 2루 땅볼로 잡고 날카로운 구위를 뽐냈다. 2사 후 쩡종저를 중전 안타로 1루에 내보냈지만 곧바로 린즈웨이를 3루수 내야 뜬공으로 솎아내고 실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문동주는 이닝 거듭할수록 더 강해졌다. 4회말 대만 3번타자 린리, 4번타자 린안커를 연달아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5번타자 우녠팅을 유격수 땅볼로 잡았다. 대만의 클린업 트리오를 압도하는 피칭을 선보였다.
대만의 방망이는 문동주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5회말 린즈하오가 1루수 땅볼, 리하오위 2루수 땅볼, 션 하오웨이가 2루수 뜬공으로 힘없이 물러났다.
다만 한국 타선도 2회초 이후 추가 득점이 없어 불안한 리드를 이어갔다. 한국은 3회초 최지훈-윤동희-노시환이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4회초 무사 1루와 5회초 1사 1루에서는 후속타가 없었다.
6회초 득점 무산은 아쉬웠다. 대만은 6회초 수비 시작과 함께 투수를 류즈롱(LIU Chih-Jung)으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류즈롱은 지난 2일 한국전에서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한 바 있다.
한국은 몸이 덜 풀린 류즈롱을 상대로 선두타자 노시환의 볼넷 출루 후 문보경의 희생 번트로 1사 2루 찬스를 만들었다. 곧바로 터진 강백호의 좌전 안타로 1사 1·3루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여기서 김주원과 김형준이 연이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점수를 얻지 못했다.
기회를 놓친 뒤에는 곧바로 위기가 뒤따라왔다. 호투하던 문동주는 6회말 1사 후 쩡종저에게 1회말에 이어 또 한 번 2루타를 허용했다. 우측 펜스 상단에 맞고 떨어져 나온 아찔한 타구였다. 불과 몇 cm 차이로 홈런이 되지 않았다.
문동주는 위기에서 더 강해졌다. 린즈웨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아웃 카운트를 늘렸다. 린리까지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낸 뒤 포효하는 장면은 이날 경기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1루 쪽 한국 더그아웃과 응원석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은 7회말부터 이번 대회 내내 탄탄함을 과시한 'K-불펜'을 가동했다. 최지민(KIA)이 4번타자 린안커를 중견수 뜬공, 5번타자 우녠팅과 6번타자 린즈하오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8회말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박영현(KT)이 대만의 추격을 잠재웠다. 선두타자 리하오위를 볼넷으로 출루시키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션 하오웨이, 린쟈정을 삼진으로 잡고 빠르게 아웃 카운트 두 개를 늘렸다. 이날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던 대만 리드오프 쩡종저까지 포수 앞 땅볼로 잡고 실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은 9회초 공격에서 강백호-김주원-김형준이 삼자범퇴로 물러나면서 2-0 리드로 9회말 수비를 시작했다. 류중일 감독은 고우석(LG)에게 세이브 상황을 맡겼다.
고우석은 선두타자를 잘 처리했지만 이후 3번타자 린리의 타석 때 주심의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으로 볼넷을 내줬다. 린안커와 승부 때도 심판의 일관성 없는 스트라이크 콜로 카운트가 불리해졌고 우전 안타를 허용해 1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고우석은 무너지지 않았다. 우녠팅을 병살로 잡고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홍콩을 10-0 8회 콜드게임(Called Game)으로 꺾고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대만과 2차전에서 0-4로 패했다. 태국과 3차전을 17-0 5회 콜드게임 승리로 장식하고도 웃지 못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슈퍼 라운드는 본선 조별리그 A, B조 1~2위가 모여 경기를 치른다. 상위 2개국이 금메달 결정전, 하위 2개국이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맞대결을 펼친 팀 간에는 재대결 없이 조별리그 경기 결과가 슈퍼 라운드 최종 순위 결정 시 반영된다. 이 때문에 조별리그 B조에서 한국, 홍콩, 태국을 모두 이긴 대만은 조 1위로 슈퍼 라운드에 오른 것은 물론 1승을 안고 시작한 반면 한국은 1패를 안고 일본, 중국을 상대해야 했다.
한국은 일단 슈퍼라운드에서 일본, 중국을 차례로 격파하고 유리한 경우의 수를 확보했다. A조 1위 중국이 대만에 덜미를 잡히면서 금메달 결정전 진출이 확정됐다.
류중일 감독은 금메달 결정전 진출 확정 후 "같은 팀에게 두 번은 안 진다. 금메달을 꼭 따겠다"고 밝혔던 가운데 대만에 멋지게 복수하고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