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7.01 11:18 / 기사수정 2011.07.01 11:18
1916년 처음 창설된 이래로 43회째를 맞이하게 되는 코파 아메리카는 공교롭게도 남미 국가들의 '공공의 적' 아르헨티나에서 열린다.
'Los Argentinos son unos creidos(아르헨티나 놈들은 잘난 척하는 작자들이야).' 이 말은 콧대 높은 아르헨티나 백인들로부터 갖은 무시를 당하는 남미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축구 실력으로 놓고 볼 때 세계 최강 브라질과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있지만 우루과이를 비롯해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이 갖고 있는 라이벌 의식도 상당하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남미의 유럽’이라 불린다. 다른 대다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인구에서 차지하는 백인의 비율(90%, 미국은 70%)이 다른 인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인구 구성에는 커다란 차이점, 한 가지가 존재하는데 바로 흑인의 유무다.
아르헨티나에선 흑인 선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간혹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눈에 띄긴 하지만 이들은 콜롬비아나 우루과이에서 건너온 용병들이다. 그렇다고 애초부터 아르헨티나에는 흑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우루과이 인구의 약 10%를 흑인이 차지하는 것처럼 아르헨티나 역시 독립 당시 인구의 10%가 흑인이었다. 아르헨티나가 온대 기후이기 때문에 이들은 열대 지방의 농업 노예와 달리 상류층의 가사일을 돕는 데 주로 종사했다. 또한 운 좋게 자유를 얻었거나 주인집에서 도망쳐 나온 흑인들은 지금의 보카 지구에 모여 흑인 밀집촌을 형성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의 노예들에 비해 아르헨티나 노예들이 더욱 나은 처사를 받았지만 아르헨티나에 독립 열풍이 불어 닥친 19세기에 이르러 이들의 운명은 역전을 맞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19세기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처럼 ‘전쟁의 시대’였다. 1810년에 벌어진 독립전쟁을 필두로 1826년에는 브라질과의 전쟁, 1852년의 내전, 1865년에는 파라과이와 전쟁을 벌였으며 독립 이후 지속적인 남진정책으로 남쪽의 인디오와 끊임없는 전투를 벌였다.
이러한 민족 감정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덧붙여 축구에서도 고스란히 결과물이 나오고 있어 흥미를 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축구 라이벌 관계를 구축해왔다. 두 팀은 1916년 1회 대회부터 결승에서 맞붙으며 우승을 양분했다. 현재까지 코파 아메리카에서 최다 우승(14회)을 차지한 팀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다.
월드컵 5회 우승을 자랑하는 브라질이 코파 아메리카에서 8회 우승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가장 위협할 팀은 단연 브라질이 손꼽힌다. 브라질은 최근 5차례 열린 대회에서 무려 4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2004년과 2007년에 이어 대회 3연패를 노리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긴장시킬 또 하나의 팀은 파라과이다. 파라과이는 최근 4번의 월드컵에서 3번 이상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둘 만큼 강호로 급성장했다. 아르헨티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파라과이에 1무 1패로 열세를 드러낸 바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5월 25일 열린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4-2로 승리를 거뒀지만 두 팀 모두 2진급으로 구성된 터라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아르헨티나와 함께 A조에 속한 볼리비아는 남미의 어느 나라보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악감정'과 '설움'으로 복받쳐있다.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볼리비아가 아르헨티나를 6-1로 대파한 경기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볼리비아는 클럽 축구 레벨에서도 아르헨티나 클럽들을 상대로 심심찮게 실력 이상의 투혼을 발휘해 왔다.
이번 코파아메리카 개막전은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의 경기로 치러진다. 어느 때보다 심한 집중 견제를 극복해야 하는 아르헨티나의 행보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사진 = 아르헨티나, 브라질 ⓒ 코파 아메리카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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