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동병상련이다.
13일 A매치에서 격돌하는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을 두고 하는 얘기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고 사상 두 번째로 원정 대회 16강에 오른 한국은 이후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국내 상주 등과 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직업 윤리'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물론 축구 면에서도 내용과 결과가 모두 좋지 않아 퇴진 위기까지 몰렸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대표팀이 부진에 빠진 것은 다르지 않다. 비록 조별리그 탈락했으나 카타르 월드컵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에 2-1로 뒤집기 승리를 챙겨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이후 1.5군이 참가한 걸프컵을 비롯해 최근 A매치에서 5번을 전부 지면서 당장 10월 열릴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그리고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의 성적이 어떻게 될지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거액을 주고 이탈리아 현역 대표팀 감독을 하고 있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을 빼낸 뒤 사령탑에 앉히는 파격적인 스카우트를 단행했다.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나란히 위기에서 서로를 상대로 A매치 무승 탈출에 나선다. 두 팀은 13일 오전 1시30분 영국 뉴캐슬에 위치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9월 두 번째 A매치를 치른다.
아시아 국가인 두 팀이 축구종가 영국에서 붙는 다소 독특한 그림이다. 양국은 당초 9월에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강호인 멕시코와의 평가전을 나란히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8일 만났던 웨일스에 이어 멕시코와 격돌하며 위르겐 클린스만이 지휘봉을 잡은 뒤 첫 원정 2연전을 강팀과 줄줄이 붙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코스타리카와 멕시코 등 북중미 두 팀을 연속으로 만나 만치니 감독 데뷔 2연전을 치르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멕시코가 막판 변심하면서 무산됐다. 멕시코는 자국 중계 등을 고려해 시차가 같은 곳에서 A매치를 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고 결국 호주, 우즈베키스탄을 미국으로 초청해 9월 2연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멕시코 대신 서로와 경기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두 팀 모두 최근 두 차례 월드컵에 아시아를 대표해 출전하는 등 적어도 대륙 내에선 강팀 지위를 갖고 있으나 올해 성적으로 한정지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은 클린스만 부임 뒤 5경기에서 3무2패에 그치며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아시안컵 본선을 치르기도 전에 감독이 거취 논란에 빠졌다. 지난 3월과 6월 각각 두 차례씩 국내에서 평가전을 치러 2무2패로 승리를 일궈내지 못한 클린스만은 지난 8일 웨일스전에서도 상대가 12일로 예정된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예선을 대비하느라 주전 일부는 선발 라인업에서 빼 1.5군 전력으로 나섰음에도 졸전 끝에 0-0으로 비겨 팬들과 국민들의 큰 비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해외에서 '월클 놀이'만 잔뜩 하다가 웨일스전에 임한 클린스만이 내용도 결과도 없는 무색무취 축구를 들고 나온 탓에 이번 사우디아라비아전이 그의 거취까지 쥐고 흔들 단두대 매치로 급부상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공석이었던 감독을 만치니로 채워 사령탑 거취 논란은 없지만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 본선 등 '본고사'를 위해선 한국을 제물 삼아 웃어야 한 숨 돌릴 수 있는 상황이다. 카타르 월드컵 직후 열린 터라 주전급 선수들이 빠진 채 이라크에서 치른 걸프컵에서 이라크, 오만에 연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남미에서 최약체인 두 팀을 홈으로 불렀으나 연달아 1-2로 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지난 9일 코스타리카전에서는 1-3으로 져 만치니 감독에게 큰 걱정을 안겼다.
위기에 빠진 두 대표팀을 구할 선수들은 역시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스타 플레이어들이다.
한국은 주장 손흥민(토트넘)과 간판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포르투갈전 결승포 주인공인 황희찬(울버햄프턴)이 올해 A매치 첫 승을 위해 출격한다. 각각 공격과 수비, 측면 돌파에 강점을 지니고 있어 같은 아시아팀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을 상대로 우위를 확보하는 게 가능하다.
손흥민은 가장 최근 열린 소속팀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쐈고, 김민재는 뮌헨의 분데스리가 연승 가도에 기여했다. 황희찬은 4경기에서 조커로 3차례 출격해 2골을 쏘는 등 시즌 초부터 컨디션이 좋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한 때 스페인 비야레알 유니폼을 입기도 했던 전천후 공격수 살렘 알 도사리의 발 끝에 기대를 건다.
A매치 77경기에서 21골을 기록 중인 알 도사리는 특히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1-1로 팽팽하던 후반 8분 역전 결승포를 꽂아넣으며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이어 비록 패하긴 했지만 월드컵 멕시코전에서도 한 골을 터트리며 멀티골을 기록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이집트전 골까지 합치면 어느 덧 월드컵 본선 득점이 3개에 달한다.
월드컵 두 달 뒤엔 모로코에서 열린 클럽월드컵에서 소속팀 알 힐랄의 결승 진출에 공헌하는 등 기량과 컨디션이 절정에 달해 있다. 지난 3월 남미 국가와의 두 차례 A매치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의 해당 경기 유일한 골을 연속으로 뽑아냈다. 백4를 갈아 엎은 클린스만호의 경계 대상 1호라고 볼 수 있다.
클린스만의 거취와 만치니 감독의 첫 승, 한국의 A매치 무승 탈출, 아시아 국가끼리 축구종가에서 펼치는 자존심 싸움 등 여러 변수들이 뒤섞인 가운데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격돌하게 됐다.
클린스만호에선 홍현석이 웨일스전 뒤 아시안게임 대표팀 합류를 위해 귀국한 상태다. 사우디는 자국 유명 클럽들이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줄영입하면서 사우디 대표팀 선수들의 출전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