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단판 승부에선 협력 플레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챔스) 결승에서 박지성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올 시즌 박지성은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기존의 박지성이 왕성한 활동량을 주무기로 삼았다면 이번 시즌에는 날카로움과 섬세함을 더했다. 박지성의 바르셀로나전 선발 출장은 유력해 보인다. 박지성은 맨유의 왼쪽 미드필더로 뛸 가능성이 높다.
[그림 1= 맨유 미드필더진의 기본 포메이션: 퍼거슨이 4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기용할 경우 박지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 나아가 발렌시아가 선발로 나선다면 퍼거슨 감독은 안정적인 측면 자원의 배치를 통해 상대와의 중원 싸움에 유리하도록 이끌 것으로 보임. 즉 박지성의 움직임이 측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중앙으로의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4-4-2 시스템을 즐겨 쓴다. 상황에 따라 4-3-3 전형을 혼용하지만 2년 전 이 전술을 들고 나와 실패를 맛본 만큼 이번 경기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4-4-2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맨유가 4-4-2로 나올 경우, 박지성과 안토니오 발렌시아(혹은 나니)를 측면 미드필더로 두면서 라이언 긱스와 마이클 캐릭(혹은 대런 플레처)를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할 확률이 높다. 여기에 웨인 루니가 2선으로 내려와 중원 싸움에 가세한다면 맨유는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이번 시즌 루니는 단순한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 전 지역을 소화하며 더욱 이타적인 활약을 펼쳤다.
퍼거슨 감독이 앞서 말한 4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한다면, 선수 개개인이 부여받은 역할에도 차이가 생긴다.
우선 측면에서 중앙으로 자리를 이동한 긱스는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후방에서 공격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1973년생인 그는 체력적 부담을 노련미를 통해 극복했으며 이는 상대의 거친 압박을 풀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 긱스의 파트너인 캐릭은 좀 더 후방에서 미드필드 진용을 정비하는 동시에 공격의 물꼬를 트고자 할 것이다.
다만 플레처의 컨디션 여부가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2년 전 맨유는 플레처를 대신해 안데르송과 캐릭을 선발 출전시켰지만, 중원 싸움에서 완패했다. 중원을 휘저으면서 상대 패스를 차단할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플레처의 역할이 중원에서 상대 미드필더에 압박을 가하고 공격의 흐름을 끊는다는 점에서 맨유는 유용한 자원을 하나 잃은 셈이었다. 이번 바르셀로나전 역시 플레처의 정상적인 몸 상태 여부가 팀 전술 변화에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림 2= 박지성의 주요 역할: 에브라가 오버래핑한 경우 뒷공간을 메워줄 수 있음. 나아가 직접적인 공격 가담이 가능(左) 아우베스가 오버래핑을 시도할 경우 2선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가함으로써 상대 측면 공격을 봉쇄할 수 있음(右)]
측면 미드필더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덧붙여 바르셀로나가 중앙 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박지성의 활약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산소 탱크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 박지성은 중원을 종횡무진 움직이는 선수다. 그는 맨유 이적 후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 주인공이다. 단순히 공격에만 가담하는 것이 아닌 종적인 움직임 즉, 측면에서 공격과 수비 모두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는 파트리스 에브라와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냈다. 에브라가 오버래핑한 사이 박지성이 뒷공간을 메우는 형태로 새로운 왼쪽 측면 공격의 패러다임을 형성했다. 공격 성향이 짙은 에브라가 마음 편히 오버래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뒤에서 그를 받쳐주는 박지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바르셀로나 측면 공격의 핵심인 다니 아우베스도 주요 관심사다. 박지성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아우베스가 오버래핑할 경우, 2선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가해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차단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앙 지향적인 바르셀로나의 가장 위협적인 측면 공격 형태 중 하나를 끊을 수 있다.
여기에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 들어가는 아우베스의 성향을 고려할 때, 박지성의 존재는 매우 부담이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박지성은 측면에만 한정되지 않고 좀 더 중앙으로 파고들어 와 아우베스를 견제하기 때문이다. 아우베스 입장에서는 박지성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벽이 될 수 있다.
이번 시즌 박지성은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면서 상대 미드필더와의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도왔으며, 상황에 따라 직접 공격에 나서며 기회를 얻어내기도 했다.
긱스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그 자리를 박지성이 메우거나 긱스와 캐릭을 후방에 두고, 그들의 앞선에서 공격을 전개할 수 있다. 또한 바르셀로나가 미드필드 지역에서 공 점유율을 높일 때, 챠비 에르난데스와 같은 핵심 플레이어를 밀착 마크함으로써 공격 전개를 봉쇄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09/10시즌 챔스 16강 2차전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으로 하여금 상대 키 플레이어 안드레아 피를로를 묶도록 했고 이를 통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번 시즌 박지성은 한 단계 진화했다. 강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신뢰까지 얻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바르셀로나전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경기가 될 것이다. 올 시즌 박지성이 내로라하는 팀들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현존 최강인 바르셀로나전에서도 이러한 기세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이에 이번 바르셀로나전은 박지성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 = 박지성 (C) Gettyimages/멀티비츠]
박문수 기자 SPORT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