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체력이 다 떨어졌다."
'신빙속여제' 김민선(의정부시청)을 바라보는 소속팀 제갈성렬 감독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지금 체력이 거의 없다. 정신력으로 뛴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외부에선 이상화도 이루지 못한 단일 시즌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여자 500m 금메달 싹쓸이를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김민선은 오로지 자신의 한계와 싸우는 중이다.
김민선은 18일 오전 1시40분 폴란드 토마슈프 마조비에츠키에서 열리는 2022/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6차 대회 여자 500m 디비전A에 나선다.
앞서 김민선은 지난해 11월 노르웨이 스타방헤르에서 열린 이번 시즌 1차 대회 여자 500m에서 생애 첫 월드컵 금메달을 따내며 '포스트 이상화'의 자격을 증명했다.
당시만 해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린 잭슨(미국)이 여름에 인라인스케이팅 대회에 나갔던 터라 체력과 스케이팅 기술이 무너지면서 김민선이 다소 운 좋게 우승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니었다. 일주일 뒤 '빙속의 성지'로 불리는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에서 또 같은 종목 금메달을 거머쥔 김민선은 고지대 캘거리(캐나다), 솔트레이크 시티(미국)에서 각각 열린 3차, 4차 월드컵에서도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특히 솔트레이크 시티 4차 월드컵에선 36초97의 개인 최고 기록을 수립하며 이상화가 갖고 있는 세계기록 36초36에 상당히 다가섰다.
그리고 지난 11일 토마슈프 마조비에츠키에서 열린 5차 대회에서도 김민선은 유일하게 37초대에 주파하며 여자 500m 5개 대회 연속 우승 위업을 일궈냈다.
김민선은 이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에서 단일 시즌 한 종목 싹쓸이 우승에 최초로 도전한다. 18일 6차 대회까지 달성하면 이룰 수 있는 기록이다.
싹쓸이 우승은 올림픽에서 이 종목 2연패를 일궈낸 이상화도 하지 못했다.
이상화는 전성기인 지난 2013/14시즌 월드컵에서 여자 500m 금메달을 7차례 땄으나 휴식 등을 이유로 일부 대회에 아예 불참하는 등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진 않았다.
당시엔 월드컵 매 대회마다 여자 500m를 1~2차 레이스로 두 번 열었다. 이상화는 월드컵 3차 대회까지는 1~2차 레이스에서 전부 금메달을 따고, 4차 대회 1차 레이스에서도 우승, 7회 연속 금메달을 이뤘으나 4차 대회 2차 레이스 땐 불참했다.
김민선은 자신이 롤모델로 삼는 선배가 이루지 못한 대기록에 도전하는 셈이다.
기록이나 여건은 좋다. 김민선은 이번 시즌 내내 기복 없이 고지대나 저지대나 똑같은 스케이팅으로 금메달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6차 대회 경기장에 일주일 전 우승했던 토마슈프 마조비에츠키라는 점도 김민선에게 다행이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김민선의 체력 고갈이 심하다는 점이다.
올림픽을 두 번이나 출전, 나름 경험을 쌓은 스케이터임에도 이번 시즌 만큼은 유례 없는 강행군으로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다.
지난해 11~12월 두달 간 월드컵 4개 대회와 ISU 4대륙선수권 등 5개 국제대회에서 여자 500m와 1000m를 모두 뛴 김민선은 올해 들어 미국과 한국, 유럽을 계속 이동하며 초인적인 일정을 해내고 있다.
김민선은 지난달 초 미국 레이크플레시드에서 열린 동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서 500m와 1000m, 그리고 혼성계주까지 3개 종목을, 요즘 보기 드문 야외 링크에서 찬바람 맞으며 뛰고 금메달 3개를 수확했다. 귀국하자마자 사전 경기로 태릉에서 펼쳐진 동계체전에 경기도 대표로 나섰다.
그리고 쉴 틈 없이 짐을 챙겨 유럽으로 향했고, 일주일 전 월드컵 5차 대회를 뛴 것이다.
제갈성렬 감독은 "6차 대회도 뛰어야 하지만 올림픽이 없는 시즌에 가장 중요한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를 3월 첫 주에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치른다"며 "지금 김민선은 거의 정신력으로 뛰고 있는데 금메달도 좋지만 다치지 않고 남은 대회 잘 마무리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 만큼 힘든 상황에서 김민선은 자신, 그리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6차 대회 트랙에 오른다.
사진=AP, EPA/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