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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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아이돌이란 무엇일까③' 이니셜N [엔터XENTER]

기사입력 2023.01.21 20:45 / 기사수정 2023.01.25 09:00



(엑스포츠뉴스 이정범 기자) (K-POP아이돌이란 무엇일까②에 이어). 자연수 = Natural number = 0과 음수가 아닌 양의 정수.

이번 제목인 이니셜N에서 N이 이 자연수를 뜻하며, K-POP아이돌 산업의 핵심인 아이돌에 대해 생각을 풀어내기 위한 핵심 키워드다.



1. 인간 스마트폰


사람이 휴대용 컴퓨팅 기기들에 대해 평가하는 행위와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행위의 결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특히 K-POP아이돌에 대한 평가와는 더더욱 싱크로율이 높다고 느껴졌다.

휴대용 컴퓨팅 기기들에 대한 총평을 보면 "디자인은 예쁘지만 성능은 별로다", "성능은 좋지만 디자인이 투박하다", "성능도 좋고 디자인도 좋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 아쉽다" 등등으로 귀결되는데, 디자인을 비주얼로, 성능을 실력으로, 무게를 체중으로 치환하면 아이돌들이 듣는 말과 대체로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스마트폰과 아이돌을 비교해 보면, 평가 외적인 요소에서도 공통점이 제법 있다.

회사 팬덤(휴대폰 제조사, 아이돌 기획사)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렇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대체로 대기업 상품이지만 조금 더 알아보면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상품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러하다.

복합적인 성격과 기능을 가졌지만 다른 그 무엇보다 비주얼이 소비자의 선택에 있어 제 1옵션인 경우가 많고(과거의 블랙베리, 현재의 갤럭시Z 플립 시리즈 등), 이러한 경향 때문인지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하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다룰 또다른 공통점은 장점의 스펙화, 기능의 어플리케이션화다.

스마트폰 이전의 시대,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전자사전, PMP, MP3플레이어 등등이 실질적으로 스마트폰에 흡수됐다. 시계, 계산기, 달력, 지도, 사진기 등 원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무수한 제품들이 애플리케이션화 됐다.

아이돌 역시 사전적인 의미의 가수로는 다 포괄할 수 없는 많은 기능들을 장착해야 하는 게 숙명인 직업군으로,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지"라는 문장과 "가수'니까' 노래'만' 잘하면 된다"라는 문장은 서로 엄연히 다른 문장이라는 걸 보여준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도 데리고 온다"는 야구계 유명한 문장을 패러디한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비주얼 메인보컬"이라는 말이 이러한 산업과 시장의 성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 문장은 아이돌 씬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러한 인재가 매우 희소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꼭 노래와 외모가 아니더라도, 아이돌들이 시장 위에서 하는 모든 노력들은 바로 이 '희소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2. 이름은 하나인데 직업은 서너 개


'희소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정말 많은 직업을 품게 되는데, 이 직업들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직업이다. 무대 위의 직업인 보컬리스트, 댄서, 래퍼 등이 대표적.

'대표적'이라는 이야기는 다르게 말하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앞서 언급한 '속도의 경제'를 실현하려면 수행하기 위해 아이돌들이 가져야 하는 직업은 최소로 잡아도 2~3가지 이상이다.

첫 번째는 예능인. 당연히 주요 방송국 예능에 고정 출연할 정도로 재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꼭 아니더라도 아이돌은 '최소한의 예능감'을 당연히 요구받는다. 아이돌에겐 방송국 예능 외에도 아이돌 리얼리티, 자체 콘텐츠 등이 존재하므로.

더불어 IT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가장 먼저 따라가는 직업이 아이돌이다 보니, 예능인으로서 아이돌의 범위도 점점 더 커진 상태. 현재는 실질적으로 아이돌이 데뷔하면 그와 동시에 유튜버, 실시간 인터넷 방송인, 틱톡커 등의 직업이 자동으로 따라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는 연기자. 물론, 아이돌 중에 연기에 도전하는 인재들이 많아서 분류에 넣은 것도 맞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통상적인 의미의 연기자보다는 '유사 지인 연기자'와 '아이돌 콘셉트 연기자'를 말한다.

일반적인 의미의 연기는 도전하는 아이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돌도 있지만, 유사 지인으로서 연기력과 아이돌 콘셉트 연기력은 대부분의 아이돌들이 보여줘야 한다.

물론 아이돌이 하는 모든 팬 대응이 다 연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형태의 유사 지인'에 다 진심이기는 힘들고, 진심이 아닐 때도 잘 대응하려면 연기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여러 유사 지인 중 유사 애인(유사 남친, 유사 여친)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렇다.

또 다른 연기인 아이돌 콘셉트 연기는 무대 표정 연기와 연결된 부분이긴 하지만 약간 더 범위가 넓다.

사실 아이돌이 데뷔해서 무슨 콘셉트를 할지는 데뷔 전까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팀이 추구하는 방향, 그 팀 안에서 내가 가져야 할 포지션을 회사나 프로듀서가 잡아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

요정 콘셉트를 할지, 청량 콘셉트를 할지, 강한 콘셉트를 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기 때문에 두루두루 소화할 수 있는 콘셉트 연기력이 필요하다. 센 콘셉트를 메인으로 하는 팀이 특별 무대에서 귀여운 콘셉트를 할 수 있고, 청순한 콘셉트를 메인으로 하는 팀이 특별 무대에서 센 콘셉트를 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세 번째는 고객 응대 근로자

법률적으로야 고객 응대 근로자로 분류되진 않지만, 어떤 측면에서 봐도 아이돌은 감정노동 보호법(참고자료①)의 보호를 받을만한 고객 응대 근로자다.

언뜻 유사해 보이지만 2번과 3번을 분리하는 이유는 2가지의 '직군'이 다르기 때문. 일반 직장으로 비유하면 2번 '연기자'로서 아이돌은 영업직에 더 가깝고, '고객응대 근로자'로서 아이돌은 고객센터 근로자에 더 가깝다. 2번의 능력은 더 많은 팬들을 영업해 오는 능력이고 3번의 능력은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걸 잘 견디는 능력이다.

K-POP 아이돌 비즈니스가 더 많은 소비자들과 더 많이 접촉해서 돈을 버는 형태로 발전하다 보니 이러한 성격이 여타 연예인 직군들보다 좀 더 강해졌는데, 이런 발전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블랙 컨슈머라 할 수 있는 소비자들과 상대할 일도 무척 많아졌다. 흔히 아이돌계 블랙 컨슈머하면 악플러를 많이 떠올리겠지만  K-POP 아이돌 시장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별별 형태의 블랙 컨슈머들이 많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이돌 표준 계약 기간인 7년 동안은 회사의 지시나 방침을 따라야 하는 일이 많고, 사람 대응이 이 비즈니스의 핵심이라 어지간히 진상이어도 잘 쳐내지 못한다는 걸 이용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정말 많다. 특히 오프라인 팬싸인회, 아이돌 공항 출근길, 실시간 인터넷 라이브 등에서 그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아이돌이 감정노동 보호법의 보호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직군이라는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하는 이야기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직업들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노래 실력이 좋아도 K-POP 아이돌하기 어렵다. 무대 위에서의 능력(춤, 노래, 랩)과 무대 아래에서의 능력(팬대응, 멘탈 관리, 예능감 등)이 무조건 연동되는 능력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그게 그렇지 못하다는 걸 우리는 많은 사례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3. 육각형의 아이돌, 육각형의 인간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양립하기 쉽지 않은 능력'들을 많이 품고 있는 능력자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을 이른바 '육각형 아이돌'이라고 부른다.

육각형 아이돌은 야구에서 장타력, 컨택트, 스피드, 수비, 송구 능력 등이 두루 좋은 선수를 5툴 플레이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표현이다. 정확히는 5툴에 외모까지 더한 '6툴 플레이어'라는 표현이 아이돌 육각형론과 유사성이 높다.

K-POP 아이돌이 글로벌하게 인정받고 또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꼽을 때, 이러한 육각형 인재들의 활약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1세대 때부터 4세대까지 K-POP 아이돌의 역사가 쌓이면서 무수히 많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A라는 개성을 가진 아이돌이 알고 보면 B도 C도 D도 잘할 때가 많다는 것. 또한 데뷔 초에는 다소 부족했더라도 꾸준한 기량 향상을 통해 육각형 아이돌이 되는 사례들도 K-POP아이돌 씬을 보다 보면 적지 않게 관찰된다.

이전 글에서 K-POP아이돌 산업을 캐릭터 산업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

하나의 캐릭터를 조형할 때 매력적인 그림체(비주얼), 성능(당장의 실력 혹은 성장 가능성), 캐릭터성(성격, 설정), 세계관, 서사 등등의 요소들이 당연하게 혼합되고 조립되는 일은 실제로 캐릭터 산업의 성격을 갖고 있는 분야에선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꼭 아이돌로 불리지는 않는 편이지만 '아이돌적 인기'를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이 존재하는 것(참고자료②)도 같은 맥락. 육각형 인재들의 활약을 약간 다른 방향에서 보면, 크고도 깐깐한 소비자들의 욕심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이 시리즈는 K-POP아이돌 씬이 알면 알수록 한국사회가 참 많이 투영되어 있는 분야라는 감상에서 출발했다.

자영업자의 나라(참고자료③)에서 활동하는 가수답게 겪는 어려움의 형질이 보통의 자영업과 매우 닮았다는 점도, 직업의 본질이 분명 의미 있음에도 그것만으로는 돈을 벌기 힘들다는 점(참고자료④)도 아이돌을 통해 현대 한국 사회를 보게 되는 이유다.

속도와 최적화를 중시하는 나라의 가수답게 가요계 그 어디보다 빠르고 그 어디보다 최적화를 중시한다는 점도,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참고자료⑤)의 가수답게 높은 수출 능력(참고자료⑥)을 갖게 됐다는 점도, 어지간히 잘해선 좋은 소리 듣기 힘든 깐깐한 소비자들(참고자료⑦) 앞에서 장사해야 한다는 점도 K-POP아이돌 씬을 통해 현대의 한국을 보는 이유.

하지만 위의 이유들보다 더 큰 이유가 하나 존재하는데, 그건 자의 여부와 무관하게 사람이 사회에 발을 딛고 시장에 발을 딛는 순간 'N인분의 인간'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대입, 취업, 직장 생활, 연애, 결혼 등등 인생의 여러 중요한 순간을 논할 때 스펙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사용한다. "이 스펙이면 이 대학 가능하냐", "저 회사 취업 가능하냐", "연애할 수 있냐", "결혼 가능하냐" 등등 우리는 자신이 해당 분야에 합당한 인간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남을 평가할 때도 주요 스펙 A, B, C, D, E, F가 잘 갖추어져 있는지 평가한다. 인생의 여러 주요 지점마다 그 지점의 룰에 기반한 육각형이 존재하는 셈.



우리는 이 무형의 틀 안에서 '꽉 찬 육각형'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6등분한 조각 하나조차 되지 못하는가.

물론, 평가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가를 하기도 하는 사람(사용자, 소비자)이기도 한 우리는 종합적으로 우수한 사람의 매력, 그가 만들어내는 성과의 뛰어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평가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어지간해선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안다.

다만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처럼 육각형을 제시하고 제시받는 게 기본도 아니고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평가할 때 우리는 'XX원툴'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아이돌 씬에선 실력은 없는데 외모만 뛰어난 아이돌을 '얼굴 원툴'이라 부른다.

심지어는 노래를 잘하는 아이돌조차도 이런 소리를 듣는데, 지금은 멸칭으로 쓰진 않지만 '고음셔틀'이라는 단어가 '노래 원툴'이라는 표현과 다름이 없다. 이게 멸칭인 이유는 왕따 당하는 학생을 지칭하는 단어인 '빵셔틀'에서 '빵'을 '고음'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 가수가 가수로서 노래를 잘한 건데도 "고음이나 배달하는 애" 정도로 부른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언어 속에서 인간은 '온전한 양의 정수'로서 존재하기 어렵다.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조차도 'XX원툴'이라 불린다면,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은 무엇으로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육각형의 인간이 되는 것이 기본 사양이고 이를 다 갖춰야만 비로소 온전한 '1'이라 불릴 자격이 생긴다면, 높은 확률로 인간은 1이 되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0에 수렴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글은 '인간이 당연하게 0에 수렴하는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생의 난이도는 내려갈 생각이 없고, 날고 기는 타인들에 비해 나 자신이 끝도 없이 초라해질지라도, 이 글의 주인공인 아이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 '0에 수렴하는 존재'가 아니라 '0과 음의 정수가 아닌 양의 정수'로서 존재한다는 것.

이에 'K-POP아이돌이란 무엇일까?③'의 제목이자 결론이 "이니셜N(자연수)"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①고객응대근로자 건강보호 가이드 라인(고용노동부 / 2019)

②작년 임영웅은 580억, 아이유는 260억… 가요계 '슈퍼 솔로 IP'(스포츠조선 / 2023.01.19.)

③"대기업 수 선진국보다 적은 한국, 자영업자는 후진국만큼 많다"(중앙일보 / 2021.09.09.)

④돈 못 버는 진료과 전락...위기의 소아청소년과(데일리팜 / 2022.12.13.) 
  조선업 역대급 호황의 그늘 ‘협력업체 임금 체불’(부산일보 / 2023.01.12.)   
  박봉에 떠나는 기사들… 마을버스가 멈춰 섰다(서울신문 / 2023.01.18.)  
 
⑤무협 “올해 한국 무역, 사상 첫 세계 6위” 전망(한겨레 / 2022.12.05.)
 
⑥콘텐츠산업 연매출 136.4조원…게임·만화·음악 수출 확대(전자신문 / 2022.06.09.)

⑦박찬욱 "까다로운 한국 관객 덕"…외신, K-무비 호평(뉴스A / 2022.05.29.)

사진 = 뉴진스 'OMG' 뮤직비디오 캡처, 삼성전자, 스튜디오 케이 유튜브 채널, SM엔터테인먼트, 듀오, 에이핑크 정은지, 인피니트 김성규, 바다, 김준수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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