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9월 초 창립 50주년을 맞아 사사(社史)를 발간했다.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울산 바닷가 허허벌판에 조선소 부지만 잡아 놓은 뒤 거북선 그림이 새겨진 500원권 지폐로 영국 은행을 설득해 배를 만들었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가 어느 덧 50년이 지난 것이다.
올해 국제에너지계 탈러시아 바람을 맞아 중동이나 미국에서 천연가스를 실어 세계 각국으로 운반할 수 있는 LNG선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한다. LNG선 브랜드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중공업그룹의 배는 2026년까지 주문이 꽉 차 있으니 정주영 회장의 반세기 전 의지와 혜안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사사 한 켠엔 현대중공업이 운영하는 유일한 스포츠단 울산 현대 축구단 이야기도 있다.
정확히는 부록을 제외하고 299페이지로 된 본문 맨 마지막에 있는데, 2020년 12월 코로나19 속에서도 축구팬들과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겼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사진이 담겼다.
사사는 스포츠에 대한 반성부터 먼저 소개한다.
‘2010년대 조선 경기 악화로 수주 절벽에 의한 경영위기 앞에 스포츠단 축소 운영이 불가피해졌다’며 현대중공업 씨름단과 내셔널리그 현대미포조선 축구단 해체(정확히는 영암군과 안산시에 인계)를 털어놓고 아쉬움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내 두 스포츠단 해체의 빈자리를 울산 현대 축구단이 채웠다며 2년 전 아시아 정상 등극 스토리를 전했다.
또 성적과는 별도로 ‘스포츠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철학을 꾸준히 실천하며,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를 함께 해온 명문 구단으로서의 위상을 곧추 세웠다’고 자평했다.
지금 돌아보니 사사 발간 시기가 두 달만 늦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축구단 얘기에서 만큼은 17년 만에 K리그1 제패한 소식을 실을 수 있어서다.
모기업 창립 50주년을 울산 현대가 멋지게 자축한 셈이 됐다. 시즌 초반부터 숱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선두를 질주해 우승까지 일궈냈다는 점도 인상 깊다.
울산 현대는 1983년에 창단(당시엔 인천 연고, 1990년 울산 연고지 이전)해 내년으로 40년 역사를 자랑한다. 창단 당시엔 현대차가 모기업이었다. 현대차가 전북 모기업이 되면서 1998년부터 현대중공업이 울산 구단을 운영하게 됐다.
하지만 국내 프로축구 우승은 현대차가 관할하던 1996년을 포함해 2005년과 올해 3번 뿐이어서 K리그사의 한 시대를 관통했던 구단은 아니다.
1990년대 일화(현 성남)와 대우(현 부산), 2000년대 수원, 서울, 그리고 2010년대 전북 등이 화려한 멤버와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영화를 누리는 사이, 울산은 이들을 견제하는 조연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준우승이 너무 많아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북을 제외하고는 앞에 소개한 상당수가 모기업 침체와 관심 부족 등으로 사라졌거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축구단 인수 뒤 25년간 애정을 쏟고 지역민들과 호흡한 현대중공업그룹을 다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그룹 축구 사랑은 단순한 축구단 운영으로 끝난 게 아니다.
김정남 김호곤 윤정환 김도훈 홍명보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을 울산 현대 지도자로 영입, 성적과 비전을 세워나갔다.
아울러 오너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을 비롯해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가삼현 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등 그룹 내 인사들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행정가로 이름을 알렸다.
현대중∼현대고로 이어지는 유소년 육성 체계를 확립해 프로는 물론 한국 축구의 젖줄까지 맡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미래 사업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탈탄소 선박, 자율주행 선박 등을 통해 향후 50년 먹거리를 개척하고 있어서다. 올해는 실적도 좋아 지주사인 HD현대는 1∼3분기 영업이익이 3조 1000억원(연결기준)이 넘는다. 조선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은 예상을 깨고 3분기부터 흑자전환(연결 영업이익 1888억원)에 성공했다.
아울러 정몽준 회장 장남인 정기선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가 그룹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기도 하다.
마침 울산 현대도 이번 K리그1 우승을 통해 아시아, 그리고 세계(클럽월드컵) 무대에 다시 도전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는 중이다. 새 출발점 앞에 선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향후 50년이 어떻게 될지, 그 속에서 울산 현대는 어떤 역할을 히고 무엇을 이뤄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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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엑스포츠뉴스DB, 현대중공업그룹 50년 사사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