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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무너진' 박성화호, 실패에서 배워라

기사입력 2007.11.23 00:43 / 기사수정 2007.11.23 00:43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허리가 무너지면 이길 수 없다!'

11명이 하는 축구에서는 어느 포지션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팀 전체의 균형을 보았을 때 미드필더만큼 중요한 포지션도 없다. 공격과 수비의 구분이 파괴되는 현대축구의 경향에서 중원에서의 볼 장악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고, 어느 팀이 미드필더 운영을 잘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되고 있다. 유럽의 강팀들이 앞다투어 비싼 몸값에 수비형 미드필더를 영입하는 이유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말하면, 미드필더의 실패는 공격과 수비의 붕괴로 이어지고, 미드필더가 무너진 팀은 절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빅 4'를 노리다 강등권으로 추락한 마틴 욜 감독의 토트넘, 졸전 끝에 유로 2008 본선행이 좌절된 잉글랜드 대표팀, 올림픽 본선행에 성공했지만 답답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의 공통점 역시 '허리라인'의 붕괴다.

마틴 욜의 무너진 꿈, 잘못된 미드필더 전술

수석코치로 토트넘과 인연을 맺은 마틴 욜은 감독 부임 후 토트넘을 리그 5위에 두 차례 올려놓으며 토트넘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탄탄한 조직력으로 묶은 마틴 욜 감독의 역량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번 시즌 토트넘은 '빅 4'를 위협할 유력 후보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토트넘은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강등권으로 추락했고, 마틴 욜 감독은 이에 책임을 지고 경질되고 말았다.

마틴 욜 감독은 마이클 캐릭이 맨유로 이적한 후 조코라를 줄곧 중용하며 허들스톤, 제나스, 타이니오를 번갈아가며 중앙에서 세웠다. 욜 감독은 말브랑크, 아론 레논과 같은 측면 미드필더들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앙에 수비 성향의 미드필더를 세웠지만, 이와 같은 전략은 재앙을 불러왔다.

중앙 라인이 지나치게 뒤로 처지면서 중원을 상대팀에 내주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윙백을 포함한 포백 수비진 역시 뒤로 쳐지게 되었다. 윙백의 공격가담이 여의치 않으며 토트넘의 측면 공격 역시 풀리지 않게 되고, 결국 경기 주도권을 내주며 어이없게 패하는 경기가 늘어갔다. 토트넘 경기를 관전한 장외룡 전 인천 감독도 한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앙 미드필더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마틴 욜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할 수 없었고,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많았다며 경질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훌륭한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실패한 전술을 반복한 마틴 욜 감독에게 변명의 여지는 많지 않은 듯하다.

잉글랜드의 풀리지 않는 난제, '미드필더 조합'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는 모든 감독들의 숙제는 바로 람파드와 제라드의 활용 문제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두 선수 외에도 오언 하그리브스, 가레스 배리, 저메인 제나스 등 훌륭한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많다. 문제는 이들을 최대화하는 전술의 고안이 어렵다는 점이다.

람파드와 제라드를 함께 세우는 방안은 에릭손 감독 시절부터 팬들의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두 선수 모두 공격적인 재능이 출중한 선수이며 마무리 능력이 탁월하기에, 어느 한 선수에게 수비만을 전담할 수 없었다. 두 선수의 무리한 공격 가담은 경기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결국 잉글랜드의 월드컵 졸전 원인을 제공했다.

맥클라렌 감독은 제라드와 배리를 조합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해결하는 듯했다. 맥클라렌의 잉글랜드는 제라드와 배리 조합을 내세운 후 이스라엘, 러시아, 에스토니아를 모두 3-0으로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중요한 크로아티아전을 앞두고 루니와 오언이 차례로 부상을 당하자, 맥클라렌 감독은 무리하게 미드필더 조합을 바꾸며 람파드-제라드 카드를 다시 꺼냈다. 전방에 크라우치 한 명을 세우고 미드필더에 제라드와 람파드, 배리를 함께 세우는 전술을 펼친 것. 공격력이 뛰어난 제라드와 램파드가 크라우치의 후방에서 공세를 펼친다는 계획이었지만, 두 선수는 유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공격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미들라인의 압박을 책임져야 할 배리 역시 역할이 익숙지 않은 듯 제때 중앙을 지키지 못하며 교체되고 말았다.

결국, 잉글랜드 대표팀은 '극악의 호흡'을 보인 제라드와 램파드가 나온 크로아티아전에서 다시 패하며 유로 2008 본선행에 실패했다. '금단의 카드'를 꺼낸 맥클라렌 감독은 결국 자국 언론의 맹렬한 비난을 받으며 사퇴 위기를 맞게 되었다.

박성화호의 근본 문제, '허리라인의 혼란'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3승 3무의 성적으로 최종예선을 1위로 마치며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첫 3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시작이 좋았던 박성화 감독은 이어 내리 3경기를 0-0무승부로 마치며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박성화 감독은 부임 때부터 올림픽대표팀에 4-4-2 전술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했다. 베어벡 감독의 4-3-3 전술이 효율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고 지루한 경기를 보인 데에 대한 박 감독의 처방전이었던 셈. 그러나 투 톱 전술에 필요한 쉐도우 스트라이커 자원이 부족했기에 박성화 감독은 박주영이 회복된 지난 시리아 전부터 4-4-2전술을 제대로 가동할 수 있었다.

주목할 점은, 박주영이 복귀한 시리아전부터 올림픽대표팀의 골 침묵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박주영은 오랜 부상 공백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긴 했지만, 박주영의 활약이나 기량이 크게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박주영 위주의 4-4-2전술에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했고, 특히 미드필더 전술이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박성화 감독의 4-4-2전술은 마틴 욜 감독의 토트넘이 가진 문제와 유사하다.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할 수 있는 이근호, 이상호, 김승용은 측면 미드필더라고 하기엔 너무나 전방으로 나가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중앙의 오장은과 기성용이 앞으로 치고 나올 수 없고, 단조로운 롱패스 외엔 공격 옵션이 없었던 것. 기성용의 패스는 분명 수준급이긴 했지만, 그의 롱패스에 익숙해진 상대팀은 손쉽게 패스를 차단했고 당연히 공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컨디션을 끌어올린 박주영은 미드필더의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며 패스 전달에 일조했다. 그러나 박주영이 빠지는 순간 공격진의 숫자가 줄며 효율적인 공격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세 경기 연속 무득점, 351분의 골 침묵은 이와 같은 전술적 문제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박성화호, 실패에서 배워라

박성화 감독에게는 이제 올림픽 본선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남은 8개월의 시간동안 박 감독에게 필요한 건 바로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이다. 왜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한 토트넘이 강등권으로 추락하며 마틴 욜 감독이 경질되었는지, 두터운 스쿼드를 갖춘 잉글랜드 대표팀이 졸전 끝에 유로 2008 본선행에 실패하며 맥클라렌 감독이 경질 위기에 몰렸는지 말이다.

다행스럽게 박성화 감독의 올림픽대표팀은 본선행 티켓을 잡았다. 박성화 감독이 올림픽대표팀 명함을 가질 수 있는 시기도 조금 더 늘어났다.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길만이 박성화 감독과 올림픽대표팀이 명예회복에 성공하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사진=박성화 감독이 이근호에게 주문을 하고 있는 모습 (C) 엑스포츠뉴스 오규만 기자]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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