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잠실, 윤승재 기자) 지난 3일 잠실 삼성-두산전. 베테랑 투수 백정현이 감격의 '첫 승'을 맞았다. 경기 후 인사를 위해 도열한 삼성 선수들. 이 때 이원석이 백정현에게 공을 건넸다. '시즌 첫 승' 기념구였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는 백정현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백정현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이튿날(4일) 만난 백정현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평소 무표정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내 "쑥쓰럽잖아요"라고 답한 그는 "데뷔 첫 승도 아니고, 또 제가 100승, 200승 하는 투수도 아닌데 이렇게 조명되니까 쑥쓰러웠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 감격의 시즌 첫 승, 하지만 주인공은 덤덤했다
백정현은 올 시즌 험난한 한해를 보냈다. 8월까지 18경기 0승 12패. 지난 시즌 14승을 거뒀던 선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부진이 이어졌고, 잘 던진 경기에서도 불펜 방화나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하는 불운도 계속됐다. 지난해부터 개인 13연패가 이어지며 아쉬움만 쌓였다.
하지만 지난 3일 그 아쉬움을 씻어내는 첫 승이 나왔다. 6이닝 동안 2피안타 2사사구(2볼넷) 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호투를 펼친 백정현은 지난해 10월 23일 KT전 이후 무려 313일 만에 승리를 거두는 감격을 맛봤다. 시즌 19경기 만에 거둔 감격의 시즌 첫 승이었다.
오랜 불운 끝에 맞이한 첫 승, 하지만 그는 오히려 덤덤했다. 백정현은 "계속되는 무승에 주변에서 많이 나를 위로했지만 오히려 나는 괜찮았다. 팀과 팬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라면서 "내 첫 승보다 내가 던진 경기에서 팀이 승리했다는 데 기분이 더 좋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4이닝 4실점이 오히려 터닝포인트, “제가 나온 경기에서 팀이 진 게 마음이 더 아팠어요”
무승의 기간은 길었지만 부활의 조짐은 있었다. 14경기 평균자책점 6.63으로 부진했던 전반기와는 달리 후반기 5경기에서 1승2패 평균자책점 2.81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피홈런이 하나도 없다는 것. 백정현은 전반기 19개의 홈런을 맞으며 부진했지만, 후반기에는 단 한 개의 홈런도 내주지 않으며 탄탄한 투구를 이어갔다. 이에 그는 "기술적으로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 내 구종을 잘 살리는 방법을 연구했고, 투구 패턴을 달리 하는 방법으로 분위기를 바꾼 것 같다"라며 최근의 경기를 돌아봤다.
우여곡절 끝에 거둔 첫 승. 이날 승리가 백정현으로선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백정현은 "터닝포인트라고 할 건 없지만, 굳이 꼽자면 어제보단 지난 27일 한화전이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됐다"라고 전했다. 이유는 팀의 승리. 그는 "당시 4이닝 4실점으로 조기강판 됐지만 팀이 이겼다. 그동안 내가 던진 경기에서 팀이 패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이 아팠는데 팀원들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그 덕에 어제(3일 잠실 두산전)는 편하게 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팀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무승 행진’ 수아레즈도 백정현도 한마음, “팀 승리에 더 집중했으면”
한편, 삼성엔 백정현 외에도 불운의 사나이가 한 명 더 있다. 퀄리티스타트 14경기에 평균자책점 2.53(24경기 135이닝 38자책)의 호투에도 여전히 시즌 4승(7패)에 머물러 있는 앨버트 수아레즈다. 백정현과 마찬가지로 타선과 불펜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불운의 늪에 빠졌다.
하지만 오랜 무승에도 수아레즈는 백정현과 마찬가지로 의연하다. 라커에 '미안해 하지마'라는 한글 문구를 붙여 자신의 승리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동료들을 오히려 격려하는 한편, 지난 31일 SSG전에선 불펜의 방화로 자신의 승리가 무산됐음에도 팀의 끝내기 승리에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백정현도 수아레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백정현은 "나도 수아레즈와 같은 마음이다. 내 승리도 좋지만 팀이 승리하는 게 더 좋고, 팀원들이 내 승리를 챙기기 보단 팀 승리를 위해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라면서 "그렇게 해서 내 승리가 만들어진다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팀 승리가 더 우선이다"라며 팀 승리를 재차 강조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즌, 뒤늦게 시동이 걸렸지만 백정현은 팀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백정현은 "나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알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마음이 크다"라면서 "아직 좋아진지 몇 경기 안됐고, 완벽하게 다 좋아졌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 좋은 감을 잘 살려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라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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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