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2022 KBO리그 정규시즌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9월. 1군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순위 다툼못지않게 스카우트들의 두뇌 싸움도 뜨겁다. 오는 15일 열리는 2023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를 앞둔 10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1년 농사의 수확을 앞두고 머리가 아프다.
잦은 우천취소로 일정이 수차례 연기된 제90회 봉황대기 고교야구 결승전이 끝나면 스카우트들은 더 분주하다. 점점 다가오는 결전의 날을 기다리며 부디 원하는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미디어를 통해 비치는 스카우트들의 일상은 제한적이다. 관중석에 앉아 스피드건을 들고 선수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가야 할 곳도 챙길 짐도 해야 할 일도 많다. 팀의 미래를 이끌어갈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을 선별하기 위해 연초부터 가을까지 쉴 새 없는 시간을 보낸다.
◆노트북과 스피드건만 있으면 된다? 생존 위한 캠핑 장비는 필수
KBO리그 경기를 찾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짐은 단출하다. 스피드건, 카메라를 제외하면 별다른 장비 없이 선수들을 관찰하고 특징을 수첩이나 노트북에 기록한다.
하지만 10개 구단 스카우트들의 개인 차량에는 항상 대형 파라솔이 구비돼 있다. 보통 캠핑, 낚시 용품으로 제작된 이 파라솔 없이는 여름을 날 수가 없다. 아마추어 대회의 경우 주최 측에서 스카우트들을 위한 테이블석은 제공하지만 기타 다른 장비 지원은 일절 없다. 햇빛을 가릴 수 있는 파라솔, 더위를 식힐 선풍기, 전기 사용을 위한 멀티탭 등은 스카우트 개인이 가지고 다녀야 한다.
올해부터 프런트 업무를 시작한 LG 김용의 스카우트는 "나도 처음에는 노트북, 수첩 정도만 챙겨 다니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30m짜리 전선부터 파라솔, 선풍기까지 다 차에 싣고 전국을 다닌다. 스카우트들은 대부분 개인별로 지역을 나눠서 선수들을 지켜보기 때문에 수많은 장비와 매일 씨름하고 있다고 보시면 된다"고 짤막하게 어려움을 설명했다.
김용의 스카우트의 경우 운이 좋은 편이다. 구단에서 최신 용품을 지급해 준 덕분에 파라솔 무게가 다른 스카우트들에 비해 가볍다. 이동이 잦은 스카우트들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다. 다만 스카우트들은 1년 내내 홀로 움직인다. 프로 선수 출신들은 동료 없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낯설고 어려울 때가 많다.
◆1년 주행거리 3만km는 기본, 졸음 운전은 조심 또 조심
전국 방방곡곡을 혼자 운전해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로 7년차를 맞은 롯데 나승현 스카우트는 "나뿐 아니라 다른 구단 스카우트들이 대부분 1년에 적으면 3만km, 많으면 3만5천km를 운전한다"며 "밤늦게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피로가 몰려와 잠이 쏟아질 때가 많다.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무조건 졸음쉼터에 가서 잠시 눈을 붙여야 한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스카우트의 하루는 매우 길다. 아마추어 대회의 경우 첫 경기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지만 스카우트들은 늦어도 7시 반 이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최대한 그라운드가 잘 보이는 관중석에 파라솔, 노트북, 카메라 등 장비를 설치하고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부터 관찰한다. 경기력뿐 아니라 훈련 태도, 동료들과 소통하는 모습까지 모두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원 키움 스카우트 팀장은 "자리를 잡는 건 철저하게 선착순이다. 연차가 오래된 선배 스카우트라도 경기장에 늦게 도착하면 남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며 "함께 고생하기 때문에 서로 살갑게 지내지만 지켜야 할 예의는 칼같이 지킨다"고 강조했다.
적게는 하루에 2경기, 많게는 4경기를 지켜보려면 높은 집중력은 물론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숙소로 돌아간 뒤에도 데이터와 업무 일지를 작성하면 휴식을 취할 시간도 빠듯하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운전까지 해야 하니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체력과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틈틈이 운동으로 몸을 단련해야만 1년을 버틸 수 있다.
김용의 스카우트는 "선수 때는 늘 같은 체중을 유지했는데 어느 순간 내 배가 볼록 나와 있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며 "휴식일에는 가급적이면 헬스장을 찾아 짧은 시간이라도 꼭 땀을 흘린다. 체력이 있어야만 스카우트 업무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상원 팀장도 "하루 4경기를 계속 집중해서 지켜본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아마 대다수의 스카우트들이 위장병, 소화 장애로 고생할 거다. 식후 움직임 없이 앉아만 있어야 하니 다들 활동량이 부족하다. 위장약도 잘 챙겨 먹고 스스로 잘 관리해야 한다"고 업무 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호소했다.
◆잊고 싶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얼리 드래프트 시행으로 업무량↑
지난 2년은 스카우트들에게 더욱 힘들었다. 2020년초 코로나19 창궐로 각종 대회가 취소, 연기되면서 선수들의 경기력은 물론 훈련을 챙기는 것조차 버거웠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대학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스카우트들 역시 교문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궁여지책으로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을 찾아 먼발치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드래프트를 준비했다.
올해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업무량도 덩달아 늘어났다. 대학 얼리 드래프트 시행으로 지켜봐야 할 선수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스카우트들의 하루가 더욱 길어졌다.
여론은 1라운드 전체 1번 지명이 유력한 서울고 김서현에게만 관심이 쏠리지만 스카우트들은 2~4라운드는 물론 하위 라운드 지명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까지 꼼꼼히 챙긴다.
나승현 스카우트는 "지난해까지 대학팀은 졸업반 선수들만 신경 쓰면 됐지만 올해부터는 2학년까지 모두 다 기량을 확인해야 하고 영상을 찍고 데이터도 확보해야 한다"며 "드래프트 참가 대상 선수들은 디테일하게 체크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상원 팀장은 "일부에서 2023 드래프트 참가 선수들의 기량이 높지 않다고 혹평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각 포지션별로 눈에 띄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예년보다 10개 구단의 고민이 더 많아졌다"고 예측했다.
◆끊임없는 모의고사와 마라톤 회의, 추석 연휴에도 마음 편히 못 쉰다
드래프트 날짜가 다가올수록 스카우트팀의 시계는 더욱 빠르게 돌아간다. 먼저 1년 동안 수집한 선수 데이터를 놓고 잠재력, 현재 기량, 성장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모처럼 스카우트팀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지만 반대로 치열한 토론이 오간다.
나승현 스카우트는 "같은 팀이라도 스카우트들끼리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좋은 회의가 이뤄진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 평가를 취합해서 선수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다"며 "어떨 때는 선수 1명을 두고 2~3시간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드래프트 직전에는 현장에 다니지 않는 데도 여유 있게 일하지는 못한다"고 귀띔했다.
10개 구단 모두 드래프트에 앞서 1라운드부터 10라운드까지 어떤 선수를 데려올 수 있을지 자체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일종의 모의고사를 치르는 셈이다. 원하는 선수들을 모두 데려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10개 구단 스카우트의 시선은 거의 비슷하다. 괜찮다 싶은 선수는 다른 구단들도 눈독을 들인다.
이상원 팀장은 "올해는 드래프트 당일에 초반부터 '타임'을 외치는 구단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가지 변수가 너무 많다"며 "추석 연휴 직후 드래프트가 열리기 때문에 마음 편히 쉬기도 어렵다. 여러 고민 속에 명절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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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