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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안방에서 LG의 홈으로, 잠실야구장의 밤 [윤승재의 파크스토리]

기사입력 2022.08.16 13:30

윤승재 기자


(엑스포츠뉴스 잠실, 윤승재 기자) 지난 4일, 잠실 삼성-두산전이 막 끝난 서울 잠실야구장. 조명탑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며 어둠이 깔리는 사이, 관중석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내외야 관중석의 광고판을 빠르게 제거하고 구단기를 바꿔 다는 데 힘을 쏟았다. 그렇게 이들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보낸 시간은 40분 남짓. 그렇게 두산의 안방이었던 잠실야구장은 어둠 속에서 LG의 홈구장으로 탈바꿈했다. 

◆ 한 지붕 두 가족, 남몰래 분주하게 바뀌는 잠실의 안방

서울 잠실야구장의 주인은 한 팀이 아니다.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30년 넘게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하고 있는 중. 그러다 보니 두 팀은 잠실야구장을 온전히 자신의 홈구장으로 꾸밀 수가 없다. 팀 고유의 조형물이나 구단별 스폰서 및 광고, 응원 현수막들까지 구장에 고정적으로 설치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두 팀은 매번 홈 주인이 바뀔 때마다 구단 스폰서 광고와 현수막 등을 일일이 교체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홈구장이 바뀌는 날은 분주할 수밖에 없다. 특히 주중 3연전과 주말 3연전의 홈 주인이 다르면 더더욱 바쁘다. 목요일 경기가 끝나고 난 심야 시간엔 광고판 및 현수막 교체를 위해 스태프들이 내외야, 야구장 로비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해당 작업에 나선다. 야구팬들이 모두 퇴장하고 조명탑의 불이 꺼진 뒤에도 스태프들은 끝까지 남아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 



◆ 출입구 현수막부터 외야 광고판까지, 불은 꺼졌지만 ‘바쁘다 바빠’

야구장 안팎으로 많은 것이 바뀐다. 야구장 메인 출입구 현수막부터 경기장 외야 높은 곳에 걸려 있는 구단기와 영구 결번 깃발, 잠실 외야에 붙어 있는 구단 광고들과 내야 출입구에 걸려있는 광고 통천 등이 동시에 철거‧교체된다. 더그아웃 배경을 장식하는 광고판이나 선수단 냉장고에 붙어 있는 스폰서 광고판도 마찬가지. 해당 작업은 잠실야구장 경호와 보안을 담당하는 업체에서 예순 명 남짓의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진행한다. 

유니폼과 구단 상품을 판매하는 1루쪽 MD샵도 새롭게 바뀐다. 매대도 새롭게 바뀌고, 천장에 걸려 있는 선수들의 사진도 홈주인이 바뀔 때마다 교체를 거듭한다. 다만 해당 업무는 앞서 소개한 경호업체가 아닌 MD 관리자와 구단이 직접 관리한다. 현수막도 구단 직원 혹은 구단의 대학생 마케터들이 교체한다. 그러나 이 업무도 홈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진행되는 것은 똑같다. 불 꺼진 경기장에 늦게까지 남아 남몰래 땀을 흘리고 있다. 



◆ 새벽 퇴근도 다반사, 2연전은 더 바빠진다

현수막 교체 시간은 철거만 최소 40분에서 1시간. 업무를 모두 마치면 자정이 가깝거나 새벽까지 넘어가는 일도 종종 있다고. 구단기 및 광고판 교체 업무를 총괄하는 신화안전시스템의 양진혁(29) 팀장은 “사는 곳들이 달라서 막차 시간이 다가오는 근무자들은 퇴근시키고 남은 인력으로 업무를 할 때도 있다. 가끔 열 명이 할 때도 있다. 그래서 거리가 먼 직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오늘은 경기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하기도 한다”라며 웃었다.

오는 16일부터 시작되는 2연전 체제에선 더 바빠질 예정이다. 당장 16일~21일 경기에만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뀐다. 14일까지 두산 홈이었던 잠실은 16, 17일엔 LG가, 18, 19일엔 두산이, 20, 21일엔 다시 LG가 주인이 될 예정이다. 3연전 땐 일주일에 한 번만 겪어도 될 교체 작업을 두 번이나 해야 한다. 다행히 홈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는 건 다음 주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쉴 틈이 없는 잠실야구장의 스태프들은 어느 때보다 바쁜 한 주를 보낼 예정이다.

◆ 현수막 교체에 관중 통제 업무까지, 하루가 정말 긴 잠실 스태프들

사실 구단기와 현수막 교체만 놓고 봤을 땐 큰 힘이 드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경기 전과 경기 중 관중 통제 업무까지 마치고 진행하는 교체 업무면 이야기가 다르다. 해당 인원들은 경기 전과 경기 중 관중 입장 통제와 안전을 담당한 뒤, 경기 후엔 관중 퇴장 안내는 물론, 홈구장이 바뀌는 전날이면 관중석 내·외야와 출입구 등지로 흩어져 현수막을 교체하는 작업에 나선다. 

평일 기준 직원들은 오후 1시, 아르바이트생들은 경기 두 시간 반 전에 출근해 교육을 받고 업무를 시작하는데, 관중 입장을 도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서 있어야 하고 경기가 끝나면 관중 퇴장과 함께 현수막 교체 작업에 나선다. 관중 통제까지 함께 병행해야 하기에 생각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상당히 긴 호흡이 필요한 데다, 퇴근 걱정까지 생길 수밖에 없다. 



◆ 야구 향한 사랑과 열정은 우리도 마찬가지,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직원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대부분의 근무자가 자신들이 원활한 야구 경기 진행을 돕는다는 것에 큰 자부심이 있다고. 양진혁 팀장은 “모두 야구를 정말 좋아하고, 이쪽 계열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힘든 업무인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고충도 있다. 퇴근 시간이나 일의 강도보다도 관중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긴다. 양 팀장은 "그래도 가끔 음료수를 주시면서 응원해주시는 관중분들도 계시고, 응원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된다. 근무자들 모두 경기의 일원이 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모두의 시선은 그라운드 혹은 응원단상으로 쏠린다. 관중들의 시선과 카메라 앵글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 앵글이 닿지 않는 곳엔 항상 이들이 있다. 그라운드를 등지고 관중석을 바라보며 일하고 조명이 꺼진 뒤에야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기에 선수들과 구단, 팬들은 오롯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양진혁 팀장은 “사실 스포트라이트는 선수나 응원단이 받는다. 하지만 우리 근무자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라고 당부하면서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수들과 팬들이 오롯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열심히 하겠다”라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잠실 윤승재 기자, 엑스포츠뉴스DB

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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