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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SK, 50만 관중 돌파와 '구도인천'의 재탄생

기사입력 2007.08.07 01:28 / 기사수정 2007.08.07 01:28

반욱 기자

                 
<인천 연고 최초 50만 관중 돌파한 SK와이번스>
    

[엑스포츠뉴스=반욱 기자] 지난 1일 인천 문학 야구장. KIA 타이거즈를 홈으로 불러들인 SK 와이번스에는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다름 아닌 홈 관중 50만 명 돌파가 바로 그것이다.


7월 31일까지 홈 관중 49만 5592명을 기록 중이던 SK는 1일 경기에서 7,935명이 입장하면서 50만 3527명을 기록해 인천 연고팀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50만 관중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 시즌 들어 성적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거머쥐고 있는 SK.


지난 5월 문학 경기장 만원사례에 이어 또 한 번의 의미 있는 기록을 만들어 냄으로써 인천 야구 팬들의 가슴속에 더욱더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연고로 한 LG-두산-롯데에 이어 4번째로 50만 관중을 돌파한 SK는 작년과 비교하여 90%의 관중 증가율이라는 믿기 힘든 성과를 올리고 있다. 관중 증가율로 따지면 8개 구단 중 1위고, 경기당 평균 관중 역시 1만 713명으로 4위를 기록 중이다. 이대로 라면 시즌 전 목표했던 63만 홈 관중 역시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홈 팬들의 기대 또한 대단하다. SK의 한 팬은 “평균 관중이 1만 명이 넘고, 주말의 경우 1만 5천 명 이상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고 있다. 남아 있는 주말 경기만으로도 10만 명은 가능하기 때문에 60만 돌파는 거뜬할 것이다.”라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나타내기도 했다.


인천 연고 팀들의 ‘소중한, 그러나 아쉬운 추억’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1982년, 인천을 연고로 삼은 최초의 프로야구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 탄생의 어려움만큼이나 성적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4년 후인 1985년 기업 사정의 악화에 따른 구단 매각 절차를 밟게 되고 시즌 도중이던 1985년 5월 1일 청보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하면서 인천 연고의 두 번째 야구팀인 청보 핀토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야심 차게 후기 리그에 뛰어든 청보 핀토스. 그러나 인천의 두 번째 팀인 핀토스의 시즌 성적표는 39승 70패 1무로 6개 구단 중 최하위에 그쳤다.


2년 반 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체 인천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87년 청보로부터 야구단을 인수받은 태평양은 연고지인 인천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돌핀스라는 구단 명칭으로 다시금 프로야구 정복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총 8번의 시즌 동안 태평양 돌핀스가 기록한 최고 성적은 94년 정규리그 2위. 철벽 마무리 정명원을 앞세운 '짠물야구'로 돌풍을 일으켰던 태평양은 페넌트레이스 1위였던 LG 트윈스와 한국시리즈 결승에서 만나 아쉽게 4전 전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하는데에 그쳤다.


이전까지 인천을 연고로 한 야구팀이 정규리그에서 2위를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한국시리즈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한 팀도 없었기 때문에 당시 태평양 돌핀스의 선전은 인천 야구팬들에게 너무도 큰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94년의 태평양 돌핀스는 5-60년대 고교야구를 평정하며 지어진 ‘구도 인천’의 재탄생을 알리며 인천을 뜨겁게 달구었다. 일명 투수왕국이라 불리며 최강 마운드를 자랑했던 돌핀스는 정민태, 김홍집, 정명원, 조웅천 등 한국 프로야구에 걸출한 투수들을 탄생시키면서 인천에 프로야구의 새 바람을 불어 넣어준 팀으로 팬들의 뇌리 속에 남게 되었다. 



96년, '구도 인천'을 이끌었던 태평양 돌핀스는 역사 속으로


1996년 3월 11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의 4번째 팀이 되었다. 프로야구 원년 시절부터 창단 후보 기업으로 물망에 올랐던 현대는 우여곡절 끝에 14년 만에 프로야구에 참여했다.


현대는 김재박이라는 걸출한 스타 감독의 지휘 아래 창단 첫 해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한국시리즈에까지 올라 아쉽게 준우승을 기록했다. 김응룡 감독이 이끄는 해태 타이거즈와 격돌해 '포스트시즌 최초의 노히트노런'(4차전 정명원)을 기록하는 등, 매 경기 접전을 펼쳤지만 4승 2패로 아쉽게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인천팀의 첫 우승을 기대하는 팬들에게서 큰 성원을 받으며 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인천 연고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16년을 기다린 인천 야구팬들은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인천에 첫 우승 안긴 현대, 갑작스런 이별 통보 후 떠나가다
 
98년 한국시리즈에 페넌트레이스 1위 자격으로 직행한 현대 유니콘스가 LG를 만나 4승2패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당시 에이스 정민태가 흘린 기쁨의 눈물과 함께 현대는 인천 연고팀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세우게 되었다.


2000년 1월 초, 놀랄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현대 유니콘스.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이라는 기사를 접한 인천의 야구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노했다. 프로구단이 연고지를 이전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지역 홈 팬들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 만한 중대한 사유가 뒷받침됐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의 현대는 인천 팬들을 간과했다. 이후의 '부잣집' 현대의 행보는 '상전벽해'가 다름없었다.  여전히 많은 인천의 야구팬들은 현대 야구단을 배신자라 칭하면서도 초라해진 현대의 모습에 애증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작은 너무나 좋았던 인천의 4번째 팀 현대 유니콘스. 그 끝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인천의 새로운 희망 SK 와이번스


2000년. 현대 유니콘스가 떠난 뒤 비어있던 인천에 SK 와이번스가 5번째 인천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SK는 지하철 광고와 거리 현수막 등으로 '인천에 뿌리내리기'를 시도했으나 다소 부진한 성적과 야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이렇다 할 인기몰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학 경기장이라는 최신식 경기장에서 다시금 야구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한 인천의 야구 팬들은 이내 SK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SK는 2007년 프로야구 흥행을 책임지며 관중동원과 성적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3의 ‘구도 인천’의 재건이 SK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한 시즌 50만 관중 돌파 기록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이후 인천 연고 팀들이 단 한 번도 넘지 못한 벽이다. 25년 만에 달성된 이 기록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전과 달라진 김성근 감독의 야구 철학과 선수들의 노력, 그리고 구단의 남다른 팬 서비스 등이 조화를 이루며 인천의 5번째 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인 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천 팬들의 성원에 '우승 보답'을 약속하는 SK


이제 SK 와이번스는 그들에게 열렬한 성원을 아끼지 않는 팬들을 위해 보답할 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 SK가 찾은 보답의 길은 한국시리즈 우승. 인천 연고의 첫 번째 우승팀은 현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인천을 떠나고 없다.


SK의 인천 입성 후 인천 홈 팬들이 '비룡 구단'을 인정하고 사랑을 보여 주는 데에는 만으로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올 시즌 인천 팬들은 숨김없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팬들의 불안함을 불식시키고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SK는 '2007 한국시리즈 제패'라는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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