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6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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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노인들의 제주도 겨울 여행

기사입력 2010.12.23 01:40 / 기사수정 2022.04.16 18:13

기자

2010년 11월 20일

여객선 오하마나호-제주-모슬포-마라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더 많다.
자전거여행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돈은 조금 필요하다. 오히려 용기와 해학과 체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맑은 눈과 가슴을 흐르는 초록마음이 있다면 여행은 더 멋질 것이다.
 

인천부두에서 전송 나온 인디고뱅크님과

올해에 정년을 맞아 직장을 명예퇴직 하는 오이쨈님의 번개에 제주도여행이 올랐다.
그러자고 나서고 보니 단 둘이다. 19일 저녁에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항에서 내린 다음 바퀴 닿는대로 굴러가 보자고 나선 게 이번 여행이다.

인천항을 금요일 저녁에 출항하는 제주행 여객선은 만원이었다.
3등표를 갖고 찾아간 선실은 열악하기만 했다. 15명이면 꽉 찰만한 방에 50명이나 태웠으니 앉을 자리도 부족하였다. 어떤 승객은 돗자리를 들고 나가서 복도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비행기보다는 자전거를 싣기에 편하고 더러 사람냄새가 나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이건 대한민국의 상식수준 이하이다.
남녀노소 50여 명이 뒤엉킨 체 잠을 설쳤다. 밤새도록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에 코 고는 소리며......

후갑판에서 승객을 위해 마련한 모둠춤

안면도 앞 바다를 지나며 오하마나호가 터뜨리는 불꽃놀이

아침을 여는 제주 앞 바다

아침 8시에 제주항에 도착하였다. 낮 2시에 마라도행 마지막 배를 타려면 모슬포까지 부지런히 자전거를 달려야 햇다. 중문으로 가는 중간도로 1135번 평화로를 타고 고개를 여러 개 넘어 모슬포에 닿으니 낮 1시다. 제주항에서 모슬포까지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끌면서 4시간 반이 걸렸다.

마라도는 대한민국의 최남단 땅이다.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면 25분에 닿을 수 있다.
나는 제주도여행을 여러 번 했었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 한 데가 마라도이다. 우리는 우선 마라도에 가기로 의기가 투합 되었다.

평화로 1135번 도로에서 바라보는 새별오름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묘지

제주도의 주요 도로는 자전거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마라도행 여객선에서 바라본 산방산

마라도 선착장에서 절벽을 오르는 계단

모슬포에서 지상 안내원이 자전거는 배에 실어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선장이 실어주었다.
오이쨈님의 사람좋은 인상이 선장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선장은 오히려 지상 안내원을 설득하며 우리의 편의를 봐 주었다.
마라도에는 선착장이 두 군데 있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그때 그때 선착장을 바꿔 접안을 하는 것 같았다. 2시 반에 배는 마라도에 닿았지만 40여 계단을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들고 옮겨야 하는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철가방을 든 어떤 여인이 "자장면 시키신 분?" 하고 사람을 찾고 있었다. TV연예 프로에서 얼핏 본 장면이 생각났다. 마라도의 자장면은 그렇게 유명해진 것이다.


우리는 자장면 대신 얼큰한 짬뽕을 시켰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짬뽕을 먹었다. 왼쪽 귀로 들어온 바람이 오른쪽 귀로 빠져 나갈만큼 거세다는 마라도 바람도 오늘은 풍속이 없다. 자전거로 섬을 둘러보는데 30분이면 족할 그런 작은 섬이다. 억새가 섬의 반을 넘게 덮고 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 등대가 있었고, 그 남쪽 아래 켠에 장난감같은 성당이 있었다. 서쪽에는 30여 호의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과 교회, 사찰, 초등학교의 분교가 있었다.
화산이 분출되면서 만들어진 섬이라 사방이 절벽이다. 절벽을 타고 오른 거센 바람은 섬에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할만큼 강력한 게 틀림이 없다. 성당 앞에 잔디밭이 있었다. 해가 지고 뜨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 그 자리에 텐트를 쳤다.
평화와 안식이 내린 자리였다.


마라도에서 바라 보이는 가파도와 제주도

관광객을 기다리는 투어용 골프카



마라도 등대

마라도 성당

대한민국 최남단 기념비 앞에서

제주도여행 첫 야영이다.
설레일 것도 없을 것 같았던 내 가슴에도 잔잔한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더구나 보름달까지 떴다. 저녁에 반주로 마신 소주도 맛이 달았다. 추억의 주마등을 타고 뭍 사람들이 스쳐갔다.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져 슬펐던 많은 사람들......
그들은 어데서 무얼하고 있을까? 보고싶다! 만나서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할 사람도 많다.

영화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서처럼 두 남자의 밤은 희망 하나만을 남긴체 달빛에 젖어 들었다.
불량노인들의 멋진 제주도여행을 위하여!
 



 


바이크매거진 박규동 press@bike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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