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황수연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이지만 동시에 성추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기덕이 타국에서 코로나19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11일(현지시간) 라트비아 매체 델피 등 외신은 러시아 아트독페스트 영화제 예술감독인 비탈리 만스키의 말을 인용, 김기덕 감독이 발트3국 가운데 하나인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했지만 이달 5일부터 지인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당초 라트비아 북부 휴양 도시 유르말라에 저택을 구입하고 라트비아 영주권을 획득할 계획이었지만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고 이에 동료들이 현지 병원들을 수소문해가며 김 감독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덕 감독은 베를린국제영화제(2004 '사마리아' 은곰상), 베니스국제영화제(2004 '빈 집' 은사자상, 2012 '피에타' 황금사자상), 칸국제영화제(2011 '아리랑' 주목할만한 시선상)를 수상하며 3대 국제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유일한 한국 감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성 추문 의혹이 계속됐고, 미투가 예술계를 강타했던 2018년 수 건의 성폭행 사건이 방송을 통해 드러나며 명성에 큰 흠집을 남겼다.
2013년에는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기로 했던 여배우 A에게 폭행, 강요, 강제추행 치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A는 김 감독이 뺨을 때리고 모형이 아닌 실제 남성 성기를 잡게 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뺨을 때린 행위만 폭행으로 인정했고 김 감독은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에 그쳤다. 이후 김 감독은 여배우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MBC 'PD수첩'은 2018년 여배우 A의 진술을 토대로 김기덕 감독의 성추행을 고발하고 8월 후속편을 방송했다. 이 방송에서 여배우 A는 김 감독이 여성과 남성의 성기 명칭,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입버릇처럼 했고, 자신의 앞에서 바지를 내리거나 가슴을 꼬집는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여성과 함께 성관계를 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여배우 B는 "오디션 때 내가 네 가슴을 봤냐, 내가 볼 수 있나. 내가 너의 가슴을 상상해보니 복숭아일 것 같다. 유두가 핑크색이냐, 검은색이냐. 내 성기가 어떤 모양일 것 같냐"는 성적인 질문을 2시간 이상 받았다고 털어놨다. 또한 여배우 C는 영화 촬영 중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에게 성폭행 당했다며 "합숙 장소가 지옥이었다. 조재현 매니저까지 셋이 하이에나처럼 여자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자신뿐만 아니라 단역 여배우들 역시 김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김기덕 감독은 'PD 수첩'에 성 추문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미투운동이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기다리고 진실이 가려지기 전에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그 후에는 평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첫 번째,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고 항상 그 점을 생각하며 영화를 찍었다. 두 번째, 여자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키스한 적은 있다. 이 점은 깊이 반성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동의 없이 그 이상의 행위를 한 적은 없다. 셋째,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만나고 서로의 동의하에 육체적인 교감을 나눈 적은 있다.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후 김기덕 감독은 여배우 A와 MBC가 허위 주장을 바탕으로 방송을 내보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은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김 감독은 이 사건을 재수사해 달라며 서울고검에 항고했고, 서울중앙지검은 방송 내용을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성 추문과 관련한 모든 소송에서 패소한 김기덕 감독은 지난달 9일에도 서울서부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하고, 'PD수첩' 제작진 2명에 대해 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법정 공방을 이어왔다. 소송을 거듭하며 명예회복에 힘썼지만 김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소송은 소송수계 절차를 밟게 됐다. 남은 소송들은 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진행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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