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축구회관, 김현세 기자] "선수로서 못 갔던 월드컵, 지도자로서 가고 싶은 꿈이 크다."
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는 정조국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K리그 전설이라고 불리는 그는 그라운드를 떠나는 심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해 나갔다. 정조국은 2003년 안양 LG에 입단해 데뷔 첫 시즌 12골 2도움 기록해 신인상을 받았다. 또, K리그에서 17시즌 통산 392경기에서 121골 29도움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2011년부터 2시즌 동안 프랑스 리그앙 AJ오세르, AS낭시에서 뛰었다. 2016년 광주 FC에서는 20골 기록해 최다득점상만 아니라 MVP까지 수상했다. 그는 이동국, 신태용과 같이 K리그에서 신인상, 득점왕, MVP를 모두 받던 세 번째 선수였다.
정조국은 "은퇴 자리 마련해 주시는 제주 프런트께 감사하다. 이 자리 빌려 정말 추억이 많고 아픔 또한 많이 있는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이것 또한 감사하다. 감사히 잘 했구나 생각하고 있다.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무슨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많이 아껴 주셨던 팬 분과 K리그 동료, 선후배, 지도자 분께 감사하다. 축구 선수 정조국은 떠나지만 제2의 인생으로, 지도자 정조국으로서 돌아올 수 있게 최선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조국과 일문일답이다.
-은퇴 결심 배경이 있었나.
▲가장 큰 계기는 다섯 달 전부터 고민했고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전 내려놔야지 했다가 다음날 생각이 바뀌고 반복됐다. 힘든 시기를 겪던 때 내 자신을 너무 많이 괴롭히고 있더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버티지 못하다 보니 정말 내려놔야겠다고 수없이 반복하다가 스스로 결정했다. 지금 당장 '더 할까' 하는 생각 역시 있지만…. 많은 선수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고민이 많았다. 지금이 적당한 시기가 아닐까. 다음 스텝으로 가는 데 있어 지금 은퇴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많은 팬 분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 그러면서 내려놓게 됐다.
-자연인으로서 삶이 어떻나. 가장 영광스럽고 좋았던 기억이 있나.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이 시기는 휴가라서 그렇다. 아내와 우스갯소리로 1월 월급날이 돼 봐야 실감날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못 해 왔던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몸은 힘들다. 그래서 오늘도 일찍 나왔다. (웃음)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굉장히 행복하고,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것은 사실이다. 동계 훈련 준비도 하지 않아도 되니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관리하지 않아도 돼 심적으로 여유롭다.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것 봐야 '이제 백수구나' 할 것 같다. 굉장히 오랫동안 프로 선수로서 생활해 왔는데 많은 순간이 생각난다. 그래도 가장 뜻깊은 것은 처음이다. 안양 LG 유니폼 입고 첫 데뷔 무대였다. 전남 원정이었다. 많이 깨달았던 때였다. 나는 아마추어구나. 프로는 다르구나 했다. 자신 있었다. 속된 말로 다 씹어먹을 줄 알았다. 열아홉 친구가 참 당돌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을 것 같다. 심정을 생각하면 참 설레고, 그떄 기분 갖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데 또다른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인상, MVP, 우승 다 해 봤다. 더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나. 또, 아쉽게도 성인 대표팀과 인연이 잘 없었다.
▲K리그에서는 해 볼 것 다 해 보고 상도 많이 받아 봤지만, 공격수이다 보니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많은 골을 넣기는 했지만 놓쳤던 찬스 역시 많았다. 다 생각나고…. 숫자로, 기록으로 남으니까 굉장히 아쉽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선수로서 월드컵에 못 나갔던 것이다. 변명일 수 있지만대표팀에 갈 만하면 부상이 왔다. '이 친구 괜찮네' 하고 보러 오실 때 망치고, 기대를 많이 받다 보니 스스로 자만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월드컵에 못 갔던 것 또한 내가 감내해야 할 일 같다. 내 가장 큰 꿈은 선수로서 못 갔던 월드컵을 지도자로서 가고 싶은 꿈이 크다. 그동안 겪어 왔던 착오와 잘못된 준비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노력할 생각이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큰 아들과 가족이 해 준 말이 있나.
▲가족을 생각하면 조금 많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내가 가장 힘들 때나 기쁠 때 누구보다 내 편이 돼 줬고, 많은 힘이 돼 줬고, 내 옆에서 지켜 줬고, 그 누구보다 내 아내가 많은 희생을 해 줘서 지금의 내가 있다. 축구 선수이기 전에 인간 정조국으로서 결혼 전후로 나눌 수 있다. 누누이 말해 왔듯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결혼이다. 너무 고맙다. 정말 미안하고…. 그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던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정말 멋지게 떠나고 싶었는데…. 앞으로 받들어 모시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둘째는 너무 좋아해 주고, 셋째는 아직 말을 못해서…. 그래도 지금 너무 행복하고 보내고 있다. 많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막내에게 축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겠다.
▲아빠도 선수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가 아쉬워했다. 막내는 아직 아빠가 축구하는 모습을 못 봤다. 나 역시 아쉽다. 셋째에게는 축구 선수가 아닌 지도자 정조국으로서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부모가 그렇듯 떳떳한 아빠이고 싶다. 자랑스럽고, 존경할 만한 아빠가 되고 싶다. 축구 선수 정조국으로서 멋졌던, 특히 우리 아이들 통해 영감을 얻었고, 내가 모험하고 도전할 수 있게 했던 아이들이었다.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 '우리 아빠 축구 선수 정조국'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데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기억나는 지도자가 있나.
▲많은 감독님과 해 왔다. 많이 모시면서 아직 명확히 어떤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생각하고는 있지만 전부 설명할 수 없어 당장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모든 감독이 저마다 장단점이 있지 않겠나. 메모도 많이 해 놨다. 내게 맞는, 팀에 맞는 지도자가 될 수 있게 해야 할 것 같다. 장단점을 잘 파악하겠다. 축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경기장 안에서 선수가 하는 일이다. 선수들의 마음을 사야 하니 첫째 옵션은 선수들 마음을 어떻게 사느냐댜. 내가 자격이 되는지, 인정받을 수 있는지 생각하겠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선수가 지도자를 평가할 수 있는 때 같다. 요즘에는 더 많이 오픈돼 있는 게 사실이다. 정보도 많고. 선수가 인정할 수 있는 지도자가 돼야 할 것 같다.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않으려 하고 있다. 더 단단하게 될 수 있게 많은 조언도 구해야 할 것 같다. 내 자신에게 더 많이 채찍질해야 할 것 같다.
-지도자 입장에서 '열아홉 정조국'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냉정히 말할 것 같다. 내게는 '너는 아직 아마추어다'라고 해 줄 것 같다. 천방지축이었고 나밖에 몰랐다. 팀 스포츠이지만 '나만 잘하면, 나만 골 넣으면 돼'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하니 철부지였고 당돌했다. 그런 선수를 프로 선수로 만들어 주신, 내가 가장 존경하고 축구계 아버지이신 조광래 감독님이 계셨다. 따끔하게 말씀해 주셨던 감독님이 계셨기에 내가 있다.
-득점왕에 오르고 그 뒤 4시즌 동안 외국인 선수가 득점왕에 올랐다.
▲솔직히 그때는 '나도 저만큼 기회 주고 시간 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웃음) 지금 돌이켜 보면 외국인 친구들과 싸우고 경쟁하며 내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다. 근성 또한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로서 경쟁은 당연하다. 그때는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도 했었다. 안타깝게 생각은 하고 있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고질적 문제가 연관돼 있는 것 같다. 매년 득점 순위에 국내 정통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데 나 또한 반성하게 된다. 그렇지만 후배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감히 '다른 친구를 닮아가려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고 싶다. 나는 호날두, 메시, 손흥민, 그리고 이동국, 정조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니까. 닮아가지 말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면 좋겠다. 요즘 특징 있는 선수가 잘 없는 게 사실 같다. 자기만의 큰 무기를 가지면 좋겠다. 나 역시 스피드가 빠르지도, 헤딩이 좋지도 않다. 그렇지만 골대 앞에서 슈팅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자기만의 무기를 개발하고 외국인 친구와 부딪히며 경쟁하고 그 선수의 장점은 무엇일지, 보고 배울 게 있는지 보고 자기 색깔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 반대로 볼 때 그만큼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프랑스에서 2시즌을 돌이켜 볼 때 어땠나.
▲유럽 진출이 꿈이었다. 축구 보는 시점이 넓어졌다. 향후 지도자로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뛸 때 나름 멋진 골 또한 넣었고, 이제 후배들이 프랑스리그에서 잘 뛰면 좋겠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축구 선수로서 2016년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본보기가 될 이야기일 것 같은데….
▲결과를 알고 나서도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2015년 겨울 그 선택을 지금 또한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다. FC 서울을 떠나야 하느냐 남아야 하느냐 고민했다. 내게 첫사랑이었으니 더 힘들었다. 그러나 큰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내 축구 인생을 걸어야 했다. 광주에 가서 잘못됐다면 이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조용히 선수 생활을 끝냈을 것이다. 그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감독님께서 믿고 기다려 주셨고, 운 또한 맞아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내 모든 것을 날릴 수 있었다. 모든 업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러나 쫓기지 않으려 했다. 그때 이적 뒤 첫 경기가 가장 많이 긴장됐다. 세 시간 자고 나섰다. 쫓기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편히, 긍정적으로 하다 보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으니 기회는 올 것이다. 잡는 것이 문제다. 우리 후배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들 말에 자극받던 때가 있었나.
▲'아빠는 왜 경기 안 뛰어?' 그 말이 정곡을 찔렀다. 축구 선수인데 경기 나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보더라. 변명은 해야겠는데 할 말이 없더라. 아빠로서 정말 창피했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아직 K리그에서 뛰는 또래 선수가 남아 있다.
▲많이 없지만 (염)기훈이 형이 있겠다. 그만둘 때 연락했다. 나보다 더 많이 이뤘던 선수다. 잘 마무리하고 내려 오면 좋겠다. 더 잘 하시겠지만…. 특히 기훈이 형은 현역 생활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잘 해내실 것이다. 후배들에게 많이 존경받고 있으니 내가 말씀드릴 게 없다.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고 잘 내려 오시면 좋겠다.
-가장 기억나는 골이 있나.
▲모든 골이 소중하다. 다 기억나고 다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의미 있는 골은 K리그 데뷔 골이다. 의미가 깊다. 정말 많은 기대를 받고 당차게 프로에 도전했으니까. 그런데 와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려웠다. 정말 좋은 선수가 많아 힘들었다. 아마 10경기 넘게 골을 기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부천 SK와 경기에서 페널티킥이 났다. 그때 외국인 선수가 키커였는데 내가 공을 빼앗았다. 그 열아홉이…. 벤치 보고 조광래 감독님께 '내가 차겠다'고 했다. 그 골을 넣고 그러면서 탄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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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세 기자 kkachi@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