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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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훈의 야구수첩] 양준혁, 생애 두번째 희생 번트를 대다

기사입력 2007.04.10 00:00 / 기사수정 2007.04.10 00:00

장강훈 기자
                        

[엑스포츠 뉴스 = 장강훈 기자]

2대 0으로 앞선 3회말 무사 1, 2루의 타점 찬스. 두산의 선발인 금민철은 경기 초반부터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전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 나가 박진만의 적시타 때 득점까지 올린 양준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팬들의 기대는 “당연히 강공, 기왕이면 시원하게 홈런이나 한 방 놓아주라”였다.
 
순간, 초구를 맞는 양준혁이 엉거주춤 한 자세로 번트를 댔다. 3루 덕아웃 쪽으로 떠오르는 플라이성 타구. 완벽한 번트 실패였다.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고, 일부 팬들은 항의(?) 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연속 3개의 볼을 지켜본 양준혁은 1스트라익 3볼에서 몸쪽으로 들어오는 변화구를 3루 선상으로 안전하게 굴렸다. 누가봐도 잘 댄 번트였다. 양준혁의 번트 성공으로 상황은 1아웃 2, 3루. 이어 등장한 심정수가 우익수 뒤쪽으로 가는 큼지막한 희생플라이로 3점째를 올렸다. 결과론으로 봤을 때는 완벽한 작전이다. 삼성 밴치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우선, 양준혁은 지금 손목 부상 중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왼손 전체에 테이핑을 하고 있었다. 손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타구를 강하게 때릴 수 없다. 무사 1, 2루에서 손목이 아픈 왼손타자라면, 상대 배터리는 분명히 바깥쪽 공으로 카운트를 잡고, 몸쪽 빠른 공으로 병살을 유도하려 했을 것이다. 임팩트 순간에 힘을 싣지 못하기 때문에, 양준혁은 경험에서 나온 관록으로 공을 툭툭 쳐서 안타를 노리고 있었다. 상대팀 배터리 입장에서는 최근 타격감이 좋은 심정수와 상대하기 전에 최대한 아웃 카운트를 늘려 놓고 싶었을 것이다.
 
둘째, 양준혁은 아직 실전감각이 덜 올라왔다. 시범경기도 고작 2경기만 출장했고, 이 마저도 마지막 시범경기는 비와 황사로 취소된 터였다. 개막 2연전 모두 선발출장 했지만, 실전감각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다. 타격 컨디션을 찾기 위해서는 실전감각, 이 중에서도 상대 투수의 공을 끝까지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번트만큼 공을 끝까지 볼 수 있는 타격자세는 없다.
 
그런데 정작 팬들은 말이 많다. 주인공이 양준혁이기 때문이다. 삼성라이온즈의 대표 타자이면서, 팬들에게는 대구 야구의 자존심인 그다. 그런 양준혁이 번트를 댔다. 박빙의 점수차도,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경기 후반도 아니었다. 2대 0으로 삼성이 리드하고 있던 3회말 무사 1, 2루였다.
 
팬들은 “실망”이라는 의견과 “역시”라는 의견으로 양분된다. 삼성의 자존심인 양준혁이 번트를 대는 것은 볼성 사납다는 의견에서의 ‘실망’이고, “팀 플레이에 충실한 대(大) 타자, 번트 성공 후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반응에서의 ‘역시’다.
 
‘실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이기기 위한 경기라지만, 잦은 번트는 야구 보는 재미를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스몰볼’ ‘지키는 야구’로 대표되는 선동렬 감독의 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있는 셈이다. 반면 ‘역시’라는 입장을 가진 팬들은 “번트도 야구의 일 부분이다. 작은 부분들이 모여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역설한다. 선 감독의 지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양준혁은 야구를 “시계”라고 정의한다. 신인선수부터 구단 프런트까지 저마다 맡은 역할이 다 다르단다. 이들이 시계 내부에 있는 수십가지 기계들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야 구단 전체가 자연스럽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때문에 양준혁은 “나는 작은 시계 내부에 있는 작은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희생번트로 인해 팀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말이다.
 
너무 잦은 번트는 물론 관전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그러나 당일 선수의 컨디션, 경기흐름 등을 정확히 읽어낸 상태에서의 번트는 야구의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절대 번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선수가 번트를 보기 좋게 성공시킨다면, 그 역시 야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조금 더 상황을 이해하고, 야구를 즐길 줄 아는 관전문화가 아쉽다.
 
 


장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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