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11.05 15:02
대한체육회는 5일 "'한국스포츠의 큰 별이자 한국레슬링의 대부'로 불려졌던 이상균 전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장이 5일 오전 향년 80세로 타계 했다"고 밝혔다. 사인은 노환으로 알려졌다.
1931년에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7년 당시 을지로3가에 소재한 조선체육관(후에 '한국체육관'으로 개칭) 레슬링부에 등록하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1949년 제30회 전국체육대회 레슬링 주니어플라이급 우승을 시작으로 당시 한국레슬링 경량급 최강자의 위치를 확고히 하며 한국 레슬링의 선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인은 6.25 전쟁 당시 육군특무부대 문관으로 근무하던 중 뜻하지 않은사고로 레슬링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왼손 손가락 3개를 절단하는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뼈를 깎는 훈련과 자신에게 맞는 전술개발 그리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1951년 제32회 전국체전 레슬링 라이트풀라이급 우승으로 재기하면서 그의 화려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1956년 제16회 멜버른올림픽에서 왼손 핸디캡을 극복하고 레슬링 밴턴급에서 4위를 차지했고 1960년 제17회 로마올림픽대회 레슬링 코치를 시작으로 제18회 동경올림픽 국제심판, 제5회 방콕아시안게임 레슬링감독,제19회 멕시코올림픽 국제심판 등 지도자와 국제심판으로 활약했다.
특히 고인은 장창선 선수의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 레슬링 은메달 획득 등 1971년 국제레슬링연맹 특1급 국제심판까지 지도자로 활동하며 이후 우리나라 레슬링을 빛낸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 뛰어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후 우리나라 체육행정을 이끌게 된 고인은 1971년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 동국대학교, 대한유도대학교 강사, 서울시체육회 이사 및 사무처장, 1994년 제13대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장을 차례로 역임하며 선수와 지도자로서 한국스포츠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고인은 한국체육 발전에 대한 공로로 경희대학교 문화상(체육부문), 체육부장관 표창, 제37회 서울시 문화상(체육부문), 미연방 스포츠아카데미(공로상) 수상을 한 바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7호에 차려졌으며 장지는 이천호국원,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8시 30분이다.
[사진 = 이상균 (C) 태릉선수촌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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