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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리부트③] 김연자 "기적을 보는 기분, 글로벌 인기 확신"(인터뷰)

기사입력 2020.09.13 07:00 / 기사수정 2020.09.12 09:02


엑스포츠뉴스가 창간 13주년을 맞이해 '트로트 리부트'를 주제로 트로트의 역사와 인기 비결, 앞으로 지금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한 움직임 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하나의 음악 장르를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콘텐츠로서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 트로트가 송가인, 임영웅 등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주목 받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게 된 배경과 발전 과정을 되돌아봤습니다. 또 트렌드의 중심이 된 트로트가 지금의 인기와 열풍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대중문화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더불어 원조 K트로트 한류의 선두주자 김연자를 통해 과거 일본 활동 당시 이야기와 향후 트로트의 글로벌 인기 전망까지 함께 들어봤습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김예나 기자] 트로트의 인기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 대세 장르인 트로트가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트로트 열풍 속, 가수 김연자가 '원조 K트로트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요즘처럼 트로트가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다는 사실이 굉장히 행복하고 영광스러워요.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트로트를 듣고 힘이 난다는 얘기를 해주실 때 정말 감사드려요. 꾸준하게 트로트의 길을 걸어온 덕분에 지금의 좋은 결과를 제가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합니다."

김연자의 트로트 인생은 한결같이 흘러가고 있다. 지난 1974년, 당시 15살의 나이로 가요계 데뷔한 김연자는 어느덧 데뷔 46년차 가수가 됐다. 1977년 처음 일본으로 넘어간 3년은 언어적으로 한계도 많이 느끼고 한국 가수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도 일쑤였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아침의 나라'가 큰 히트를 치면서 다시 한 번 일본 진출 재도전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K트로트 한류의 큰 공을 세웠다. 

김연자에게 트로트는 "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이었기에 더욱더 간절했다고. 최근 서울 목동에서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김연자는 요즘 같은 트로트 붐 현상에 대해 "기적을 보는 기분이다. 제가 데뷔하던 시절엔 생계를 위해 가수가 되는 일이 많았다. 어렸을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꾸준히 활동하다보니 기적을 보는 것만 같아서 정말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김연자는 1974년 '말해줘요'로 데뷔하며 출중한 가창력과 화려한 비주얼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스스로 가수로서 경쟁력을 갖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한국에서 성공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일본에서 손을 내밀어줬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련 없이 떠났다"고 밝혔다. 

1977년 일본 음반회사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김연자는 3년 간 일본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활동할 한국 가수를 뽑는 오디션이었다. 한국의 트로트가 일본 엔카의 원조라를 말이 돌던 때였기 때문에 한국 가수를 데려와 일본에서 활동을 시켜야 더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때 제가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3년 계약을 맺고 일본 활동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수로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넘어간 김연자는 당시 한국인이란 이유로 제약과 차별도 있었지만 당당하고 꿋꿋하게 잘 이겨냈단다. 그는 "마이웨이였다. 민폐 끼치지 않고 욕 먹을 일 없도록 노력도 많이 했다. 3년 동안 정말 언어적으로나 가수로서 활동하는 데에 있어서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떠올렸다. 

3년 동안의 일본 활동을 통해 큰 배움은 얻었으나 가수로서 커리어를 쌓는데는 실패했다. 3년 후, 결국 계약 해지를 당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김연자는 1988년 '아침의 나라'가 일본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다시 한 번 일본에 진출, 한류 가수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그는 "진짜 전쟁 속으로 들어간 시기였다. 다행히 언어적으로도 누군가 뭐라했을 때 받아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기 때문에 다시 일본에 갔을 때는 두려울 게 없었다. 그때는 이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일본 사람들은 간드러지고 한국 사람들은 강하니까 그 중간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무지와 김치의 중간 정도로 스타일을 잡고 만들어갔다"고 전했다. 

일본뿐 아니라 브라질, 쿠바, 베트남 등 세계 곳곳에서 김연자를 찾는 팬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파워풀한 성량과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 요즘 말로 무대를 '찢어놓는' 김연자를 보고 싶어 하는 세계 각지 팬들의 요청에 해외 공연도 많이 다녔다. 그는 "항상 반응이 뜨거웠다. 무대를 보고 '김연자는 김연자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 정말 좋았다"며 웃었다. 

김연자는 올해 초 SBS '트롯신이 떴다' 촬영차 가수 남진, 설운도, 주현미, 진성, 장윤정, 붐, 정용화 등과 함께 베트남으로 떠나 트로트 버스킹을 펼쳤다. 코로나19로 인해 더 이상 해외 촬영이 어려워져 베트남 이후로는 해외 버스킹이 중단됐지만 당시 베트남 현지의 뜨거운 반응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까 외국인들이 트로트를 어떻게 들을지, 어떤 평가를 할지 너무 긴장하고 걱정됐죠. 다들 트로트 버스킹을 처음 해보니 정말 열심히 하는 게 보였어요. 저 역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서 열심히 휘둘렀어요. 결론적으로 트로트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언어적인 한계인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래가 주는 감동, 기쁨, 즐거움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통한다는 것을 김연자는 분명하게 느꼈다고. 그는 "우리도 팝을 들을 때 영어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듣는 것은 아니지 않나. 노래가 주는 감동이 통한다면 언어적 차이는 문제가 크게 되지 않더라"고 설명했다. 

김연자는 트로트의 인기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 글로벌 팬들에게 사랑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도전 꿈의 무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을 통해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해 많은 인기를 얻고 빛을 보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임영웅, 김호중, 김수찬 등 후배 가수들 보면 저마다 사연들을 갖고 있다. 다들 가수의 꿈을 안고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빛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다. 점점 트로트 스타들도 많이 생기고 팬들끼리 경쟁도 생긴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더 붐이 불어서 세계적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는 트로트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10분 내로' '아모르파티' '블링블링' 등 관객을 휘어잡는 파워풀한 무대 퍼포먼스와 에너지를 뿜어내는 김연자의 원동력은 팬들의 응원과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같은 때에는 이렇게 신나게 노래 불러도 되나 걱정되지만 살짝 힘을 빼고 부르면 어디 아픈지 걱정되더라"며 "항상 팬들의 응원 덕분에 더 힘을 내서 에너지를 쏟아내게 되는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지금처럼 남녀노소 사랑 받는 날이 온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러워요. 이렇게 트로트가 전세대를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날이 올 줄 몰랐죠. 늘 감사드리고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활동 열심히 할 계획이고 좋은 곡 선보일게요." 

hiyena07@xportsnews.com / 사진=박지영 기자 
 

김예나 기자 hiyena07@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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