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8.23 09:33 / 기사수정 2005.08.23 09:33
지난 신년벽두부터 대한축구협회의 회장선임과 관련해 시끄러웠던 한국 축구가 이번엔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본프레레(네덜란드.59) 감독의 ‘경질설’과 관련해 참으로 혼란스럽다.
본프레레 감독은 '월드컵 본선 6회 연속 진출’이라는 한국 축구사에 남을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지만, 최근 연이은 부진에 대한 책임과 감독으로서의 역량 부족이라는 축구계 안밖의 목소리로 인해 어쩌면 지휘봉을 내려 놓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23일 오전 10시30분 부터 열리는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위원회가 ‘A대표팀 현황 보고 및 진단’이란 주제로, 위기에 처해있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구하기 위한 해법 찾기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가장 비중 있게 논의 될 과제는 역시 본프레레 현 대표팀 감독의 경질 여부이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지난 1년 3개월간의 ‘본프레레호’를 심층적으로 분석, 점검하고 나아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할 이번 회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우리 축구의 앞날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질의 여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협회 기술위원들이 얼마만큼 진실하고 국민들이 이해할만한 결과를 도출해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현재 많은 비난의 화살이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과 축구협회에 쏠려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라운드에서 경기력을 뿜어냈던 선수들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명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반대로 훌륭한 병사가 훌륭한 장수를 만들 수도 있는 법이다. 과거 월드컵 4강의 원동력은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의 능력도 크게 뒷받침이 되었지만, 황선홍, 홍명보 등의 좋은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이다.
▲사우디와의 최종전에서 패한 한국 축구대표팀 ⓒ엑스포츠뉴스 박효상
최근 대표팀의 경기를 보면 답답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공격은 협력 플레이나 효과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유기적인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허리진은 강한 체력과 근성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를 압박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아직 리더를 찾지 못한 수비진은 상대 선수만 들이 닥치면 우왕좌왕 하며 흔들리기 일 수였다. 한 마디로 우리 대표팀 선수들도 결코 녹녹치 않은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나오고 있는 이러한 결과들이 우리 대표팀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실력의 현주소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부진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지난 2004년부터 우리가 상대해온 팀들이 파라과이나 독일, 스웨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아시아 팀 들이었고, 그 중에서는 FIFA랭킹이 100위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팀들도 많았다. 이러한 팀들을 상대로도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쳤다면, 그 문제점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정신력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축구팬이 지적하듯이 월드컵에서 몸을 날려 호아킨의 네 번째 승부차기를 막아냈던 이운재는 몸이 5kg이나 불어 골키퍼의 생명인 민첩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월드컵 엔트리에 탈락하며 절치부심 했던 이동국도 본프레레호에 처음 탑승했을 당시와는 달리 움직임이 많이 게을러졌다. 정경호, 유경렬 같은 본프레레 감독이 처음 발탁했던 선수들도 처음 그 마음, 그 움직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20대 초반으로 얼마 전 대표팀에 합류한 젊은 새내기들도 기존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몸이 부서져라 그라운드를 뛰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기존의 대표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해야 하지만 김동진, 김진규, 박규선 등 우리 대표팀 젊은 피들의 플레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대표팀에서 활약했다는 듯이 긴장감과 치열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은 경기에 대한 긴장감이나 강한 승부욕 대신 월드컵 4강 팀이라는 자만심으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경기를 쉽게 생각하는 듯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또, 선수 서로를 믿고 함께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해 경기마다 팀 플레이는 실종되고 개인플레이가 넘쳐났다.
최근 경기에서 부쩍 늘어난 패스 미스와 득점 기회의 무산 등이 모두 이러한 집중력과 정신력의 저하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지금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가',' 왜?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들을 스스로 못 내리고 있는 느낌이다. 꼭 이겨야 겠다는 정신적인 무장이나, 지지 않겠다는 악바리 근성은 적어도 지금의 한국 축구에는 없다. 직접 경기를 만들어나가는 선수들 개개인부터 그러한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대표팀 선수들도 본프레레 감독 못지 않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대표팀 선수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무장'이 계속 되지 않다면, 감독 교체나 혹은 그 이상의 극약 처방이 내려진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덧셈, 뺄셈이란 수학의 기본이 없는 아이에게 미분 적분을 가르쳐 봤자 수학 실력이 늘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번 협회의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대표팀 선수들은 코칭스태프 혹은 기술위원회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긴장하고 축구화의 끈을 바짝 동여매야 할 것이다. 팬들은 축구를 못하는 선수들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들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낙인'이 찍히게 되면 더 이상 팬들의 응원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 축구 최대의 위기의 순간인 지금, 그 위기를 구해 낼 '해결사'가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나 대표팀 감독이 아닌, 우리 선수들이라는 것을 깨닫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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