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는 매주 금요일마다 남미 축구 전문 기자 윤인섭 기자의 '풋볼 아메리까노'를 연재합니다. '아메리카'는 많은 경우 미국을 지칭하지만 남미에서 말하는 '아메리까'는 많은 경우 미국을 제외한 범 라틴 아메리카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풋볼 아메리까노를 통해 매주 살아있는 남미 축구에 대한 다양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 전기리그 11와 14위, 후기리그 16위와 13위. 어느 리그의 갓 1부 리그로 승격한 팀들의 성적으로 보이지만 앞의 수치는 아르헨티나 축구를 양분하는 보카 후니오르스와 리베르플라테가 지난 시즌 아르헨티나 1부리그에서 거둔 성적이다.
지난 시즌 아르헨티나 리그는 가히 혁명적인 한 시즌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리그에서 반피엘드가 클럽 창립 114년 만에 첫 아르헨티나 1부리그 우승을 거머쥔 데 이어 후기리그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배출한 아르헨티노스 후니오르스가 25년 만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즉, 중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두 팀이 지난 시즌 아르헨티나 축구의 두 챔피언으로 거듭난 것이다.
반면 보카와 리베르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축구의 ‘5대 명문팀’의 성적은 참담했다. 유일하게 강호로서의 위용을 지킨 인데펜디엔테가 거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4위 성적이 ‘씽꼬(5) 그란데스’가 거둔 지난 시즌 최고 성적이다.
산로렌소는 전기리그에서 7위를 차지하며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후기리그 16위로 추락했고 라싱은 전기리그 16위에 이어 후기리그8위를 차지했지만, 득실차가 -10에 달했다. 자칫하며 내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아르헨티나5대 명문의 어느 팀도 볼 수 없을 지경이다.(아르헨티나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진출팀은 전 시즌 후기리그와 시즌 전기리그 성적을 합산해서 결정)
그래도 산로렌소와 라싱의 시련은 보카와 리베르의 그것보다 충격이 덜 했다. 아르헨티나 리그가 프로로 전환된1931년 이후, 보카와 리베르 두 팀이 한꺼번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지난 시즌에는 두 대회에서 두 팀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세대교체 시기를 놓친 노쇠한 스쿼드에 있었다. 스쿼드가 노쇠하다 보니 팀의 활동력이 떨어지고 상대의 강한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결국, 상대와의 중원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가지 못하니 수비진에 엄청난 부담이 가중됐고 이는 양 팀에 최악의 수비불안으로 연결되었다.
이 말은 곧, 아르헨티나 양강의 부활에 대한 화두가 세대교체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는 보카와 리베르의 부활을 이끌 것이고 실패는 에스투디안테스와 벨레스 사르스피엘드 같은 신흥 강호들이 보카와 리베르의 영역을 대체할 것을 의미한다.
보카와 리베르 부활의 열쇠: 대대적인 팀 개편
양 팀은 지난 시즌의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감독을 선임했다. 보카는 지난 시즌 아르헨티노스의 후기리그 우승을 이끈 클라우디오 보르기에게 팀의 부활을 맡겼고 리베르는 우라칸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티키-티키(아르헨티나 축구 특유의 짧은 패스 플레이)적인 팀으로 변모시켰던 앙헬 카파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명가의 부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은 보르기와 카파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대대적인 팀 개편이었다. 특히 양 팀의 수비진은 완전히 새로운 팀이 됐을 정도로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보카는 지난 시즌 팀의 포백을 구성했던 우고 이바라(은퇴), 훌리오 카세레스(전기리그, 현 아틀레찌구MG), 에세키엘 무뇨스(후기리그, 팔레르모), 클라우디오 모렐 로드리게스(데포르티보 라코루냐), 후안 크루포비에사(아르세날)가 모두 팀을 떠났다.
대신 에스투디안테스의 남미 제패 주역인 크리스티안 세샤이와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클레멘테 로드리게스(전 에스투디안테스), 아르헨티노스의 후기 리그 우승을 이끈 마티아스 카루소, 지난 시즌 아르헨티나 리그 최고의 중앙 수비수로 거듭난 후안 인사우랄데(전 뉴웰스)를 영입하며 이번 시즌 새로운 수비진을 구축했다.
리베르 역시 오른쪽 수비수 파울로 페라리와 중앙 수비수 알렉시스 페레로를 제외하고 팀의 주축 수비수 전원이 팀을 떠났다. 전 아르헨티나 대표 파쿤도 키로가는 우라칸으로 떠났고 구스타보 카브랄(현 테코스, 멕시코)과 크리스티안 비쟈그라(메탈리스트, 우크라이나)는 해외에서 새로운 출발을 맞았다.
반피엘드의 전기리그 우승 주역 호나단 마이다나, 파라과이 최강 리베르탓에서 야심 차게 영입한 아달베르토 로만, 경험 많은 측면 수비수 카를로스 아라노(전 아리스, 그리스)가 이들을 대신해 리베르의 새로운 수비진을 이끌 것이다.
수비 안정화를 위한 개편은 단지 수비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보카와 리베르는 특급 수문장 영입을 통해 수비 안정화를 위한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보카는 전 시즌 아르헨티나 리그 최고의 활약을 보인 크리스티안 루체티를 반피엘드에서 임대 영입했고 리베르도 전 아르헨티나 대표 후안 파블로 카리소를 라치오로부터 임대했다.
그 밖에 보카는 비야레알에서 다미안 에스쿠데로를 영입하며 리켈메에 가중된 공격 부담을 분산시키는 시도를 했고 리베르는 지난 시즌 인데펜디엔테의 상승세를 주도한 왈테르 아세베도, 페루 국가대표 호셉미르 바욘(전 산마르틴)을 영입하며 중원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시즌 개막 한 달, 보카와 리베르의 엇갈린 명암
양 팀은 야심 찬 준비 작업을 통해 2010/11 전기리그 개막에 임했다. 그러나 아페르투라2010 3라운드가 종료된 시점에서 보카와 리베르의 성적은 18위와 2위로 그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보카는 리켈메의 부상 공백과 팀 조직력의 미비로 1무2패의 극심한 부진에 빠졌지만, 리베르는 공수의 완벽한 발렌스를 과시하며 3연승의 이상적인 시즌 출발을 맞고 있다.
보카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리켈메의 부상 공백이다. 지난5월, 왼쪽 무릎 수술로 팀 전력에서 이탈한 리켈메는 여전히 재활에 매진 중인 상태이다. 보르기 감독은 리켈메의 이적과 부상 공백에 대비, 프리시즌 동안 마르셀로 카녜테와 크리스티안 차베스, 에스쿠데로 등에게 리켈메의 역할을 부여했지만 확인한 것은 리켈메의 커다란 빈자리뿐이었다.
공격의 중심을 잡아주고 전방의 마르틴 팔레르모와 루카스 비아트리에게 공격 기회를 제공할 리켈메의 역할에서 공백이 발생하자 보카의 공격작업은 단순히 전방의 장신 공격수를 향한 무책임한 볼 투입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상황에서 득점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고 선제골을 먼저 허용한 상황에서 추격의 가능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 것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구성된 수비진의 조직력 부재도 보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세샤이, 인사우랄데, 카루소, 클레멘테 모두 개인적 역량은 훌륭한 선수들이지만 아직, 팀으로서의 수비진을 구축하지 못한 결과 보카는 매 경기 선제골을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쳐나갔다.
이러한 보카의 총체적 난국이 그대로 묻어난 경기가 지난주에 펼쳐진 승격팀 올 보이스와의 원정 경기였다. 수비진이 허술하게 뚫리며 전반전에만 두 골을 허용한 보카는 단순한 공격 전개 탓에 단 한 번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하며 0-2로 완패했다.
보카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분노케 한 이 경기로 말미암아 보카 회장 호르헤 아마엘은 이미 보르기 감독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번 주, 벨레스와의 홈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리그1위 벨레스는 더 이상 보카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점에서 보카가 다시 한번 감독 교체를 단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리베르의 올 시즌은 ‘강호의 부활’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출발이다. 카리소는 위기마다 뛰어난 선방으로 리베르 수비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고 마이다나와 아라노가 가세한 플랫4라인도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몰라보게 안정되었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노장과 신예선수들의 이상적인 조화이다. 특히 36살 동갑내기인 아리엘 오르테가와 마티아스 알메이다의 부활이 눈에 띈다.
지난 몇 해 동안 알코올중독의 여파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오르테가는 이번 시즌 확실히 회복된 모습을 보이며 리베르 공격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예측 불가능하면서 정확한 패싱력은 전성기의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고 나이가 들면서 더욱 원숙해진 경기 운영능력으로 자칫하면 달아오를 수 있는 팀의 젊은 공격수들을 적절하게 컨트롤하고 있다.
지난해, 2년 만에 선수로 복귀한 알메이다는 ‘리베르 부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올 시즌 들어서는 체력적인 부족함도 많이 해결되었고 무엇보다 중원에서의 투쟁적인 모습으로 지난 시즌 중원싸움에서 참패한 리베르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로헬리오 푸네스 모리, 파쿤도 아프란치노 등 90년대 생 신예 선수들의 눈에 띈 성장도 리베르의 부활을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지난 시즌5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푸네스 모리(91년 생)는 이번 시즌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리베르 공격의 핵심으로 거듭났다. 특히 오르테가의 퇴장 공백 하에 치러진 인데펜디엔테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끄는 등, 앞으로 리베르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아프란치노도 무서운 성장세로 마르셀로 가야르도(현 나씨오날, 우루과이)의 이적 공백을 완벽히 메우고 있다. 왼쪽 라인에서 펼쳐지는 아프란치노의 활기찬 플레이로 리베르의 공격은 우측의 디에고 부오나노테와 완벽한 좌-우 발렌스를 이루며 상대 수비진에 커다란 부담을 안기고 있다.
이번 주에 펼쳐질 전 챔피언 아르헨티노스전, 다음 주의 벨레스전 등, 두 차례의 원정 고비만 잘 넘긴다면 리베르의 상승세는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지속할 것이다.
[사진 (C) 리베르 플라테 홈페이지, 보카 후니오르스 홈페이지 캡처]
윤인섭 기자 pres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