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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시즌 2] 이범호·손승락·정인욱의 스승, 박태호 감독

기사입력 2010.08.18 10:19 / 기사수정 2010.08.18 10:19

김현희 기자

[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고교야구 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프로야구판에서 맹활약했던 선수 출신들이 대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구태여 프로무대가 아니더라도 아마 시절에 전국무대에서 명성을 떨쳤던 선수들이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다. 부산고 김민호 감독은 현역 시절, 롯데 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명성을 떨쳤던 왕년의 스타였으며, 경기고 강길용 감독과 제물포고 가내영 감독 역시 프로에서 현역 시절을 보낸 바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프로에서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면서 프로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프로야구 선수 출신 감독이 모교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대구고 박태호 감독(47)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2009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했던 바로 그 박태호 감독이다. 박 감독은 대구고-영남대를 거쳐 1987년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던 내야 유망주였다. 데뷔 첫 해 대타 요원으로 나서면서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프로에서의 생활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짧았다. 6년 동안 프로에 몸담으면서 거두었던 성적이 타율 2할5푼7리, 5홈런, 40타점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감독 역시 엄연히 1992년 롯데 자이언츠 우승 멤버로 이름이 올려져 있다.

프로 은퇴 이후 잠시 개인 사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지만, 야구와의 끈질긴 인연은 그에게 다시 유니폼을 입게 하였다. 1996년을 시작으로 모교 대구고등학교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박 감독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야구가 아닌 다른 일을 해 보고 나서야 ‘야구만큼 쉬운 것이 없음’을 느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야구 외적인 일을 하다 보면, 남들보다 10배, 20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행복해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지도 철학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박 감독은 “프로에서 실패했던 것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박 감독이 모교 지휘봉을 잡은 이후 대구고는 전국대회 우승 7회, 준우승 3회라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이범호(소프트뱅크)를 필두로 정인욱(삼성), 이재학(두산), 유재호(LG), 정상교(KIA 입단 예정)와 같은 ‘프로 선수 제자들’을 여럿 배출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제자들이자 후배들을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한다. 이러한 그의 ‘지도 철학’을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봉황대기 대회가 한창인 수원 구장에서 박 감독을 만나보았다.



▲ 지난해 아시아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었던 박태호 감독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 유망주, 박태호

- 각설하고, 박 감독님의 대구고 선수 시절에는 참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경북고 문병권, 성준 등이 박 감독님의 라이벌이지 않았는가?

박태호(이하 ‘박’) : 당시 경북고가 상당히 강했다. 하지만 1981년도에는 우리도 대붕기에서 우승하는 등 전력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 동기로는 강기웅을 포함하여 전종화 전 LG 코치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지금 2루수로 뛰고 있는 전호영(2학년)이 있지 않은가? 그 친구가 전종화 코치의 아들이다(웃음).

- 그렇지만, 198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고 구단인 삼성에 지명되지 못했다. 그 점이 못내 아쉽지 않았는가?

박 :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류중일, 강기웅 등 빼어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들이 연고 지명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웃음). 이정훈 선수 역시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지 않았는가. 나 역시 롯데 자이언츠에 2차 1번으로 지명되어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 그만큼, 1987년 당시 박 감독님께서 내야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다. 1987년 데뷔 성적 역시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72타수 22안타, 타율 0.306).

박 : (고개를 저으며) 과찬의 말씀이다.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웃음).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부산의 야구 열기는 정말 굉장했다. 그러한 열기 속에서 나 역시 잘해 보고 싶었다. 대타로 3할 타율을 기록했다고는 하나, 나는 그렇게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솔직히 프로시절 이야기를 꺼내면 창피하다(또 웃음).

- 너무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 듯싶다. 1988~89년도에도 홈런을 두 개씩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박 :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프로에서의 실패를 바탕으로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프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 1992년도 롯데 자이언츠 우승 멤버로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는가?

박 : 당시 멤버가 참 좋았다. 박정태, 박계원, 공필성 등 좋은 후배들이 많았기에 우승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반면 나는 방위 복무 이후 더그아웃에서 유니폼만 입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승의 현장에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 프로에서 못 뛰어 본 선수들이 많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 박 감독님의 프로 생활을 실패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박 : 그렇지 않다. 사실 내가 야구 외적인 관리를 잘못 했다. 그래서 선수로서 연습을 왜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프로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를 후배들에게 많이 주입한다. 솔직히 야구장에서 잘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것 외에 야구 외적인 모습을 잘 갖추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 당시 선수 생활을 같이했던 이로 故 조성옥 감독님이 있었다.

박 : 조성옥 감독님과는 상당히 절친이었다. 부산고 감독 시절에도, 동의대 감독 시절에도 죽이 잘 맞는 선후배 관계였다. 그래서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정말 안타까웠다. 그런데 내가 은퇴를 하던 해에 조성옥 감독님이 우리 집에 직접 찾아 와서 ‘쌀 한 가마니’를 가져오더라(웃음). 이게 뭐냐고 했더니, 조성옥 감독님 하시는 이야기가 가관이었다. “이거 다 먹을 때까지 다른 일자리 구하라!”라고 했었다(웃음). 그때 추억이 생각난다.

▲ 봉황대기 8강전에서 만난 신일고 최재호 감독(사진 우측). 두 감독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대표팀을 이끈 바 있다.

모교에서의 지도자 생활, 그리고 차정환과의 인연

- 은퇴 이후 개인 사업을 했다고 들었다.

박 : 카센터, 주점 등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이 야구 외적인 일을 하다 보면, 남들 10배 혹은 20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1996년 모교 코치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내가 배운 것이 야구밖에 없으니 그 외에 것은 절대 눈독을 들이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 다시 야구 외적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후배들이나 코치들, 그리고 야구계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거(야구)밖에 없다. 야구 외에 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다른 일은 더 힘들다.”라고 조언해 준다. 그래서 간혹 후배들이 “감독님, 야구 하기 힘듭니다.”라는 이야기를 해 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충실히, 그리고 열심히 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른 일 하기 힘들다.”라고 이야기해 준다.

- 1996년 모교 코치로 다시 야구 유니폼을 입었을 때, ‘차돌’과도 같았던 선수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 사람이 바로 현재 부산고 야구부에 재직 중인 차정환 코치 아닌가?

박 : (공감한다는 듯) 그렇다. 차정환이 나의 첫 제자였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생각이 참 바른 선수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도자를 하면 잘할 수 있는 재목’으로 생각했다. 정말 성실하게 운동했다.

- 그러한 차 코치의 어려운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2천만 원 마이너스 통장을 건넸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박 : (쑥스러운 듯) 내 능력 안에서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그것을 차정환 본인이 너무 크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다. 그러나 내가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차정환’이었기에 안심하고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차 코치는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는 친구였다. 알아서 잘했기에 내가 ‘믿음’을 줄 수 있었다.

- 부산고 차 코치 이야기가 나온 만큼, 김민호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역 시절,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기도 하지 않았나?

박 : (공감한다는 듯) 그랬다. 김민호 감독님과도 경기 외적인 것을 포함하여 많은 부분을 서로 주고받는다. 연습 스케줄을 포함하여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서로 연락해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 부산고 차정환 코치는 박태호 감독의 첫 번째 제자였다.

-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 : 제자들 성장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이범호를 포함하여 손승락, 정인욱, 이재학, 유재호 등 1, 2군을 막론하고 현역에서 열심히 하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단, 야구 외적인 생활에서 아웃되지 않았으면 한다. 야구장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야구 외적인 부분을 잘 관리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 마지막 공식 질문이다. 박 감독님께 ‘야구’란 무엇인가?

박 : 인생의 전부다. 야구를 통해서 롯데라는 구단도 가 보고, 실패도 해 보고, 야구 외적인 일도 해 보았지만, 야구만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유니폼을 벗는 자체가 두렵다. 이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는 유니폼을 벗을 날이 오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지도자 생활을 그만 한다는 자체가 참 두렵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대구고에 머물면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싶다. 물론 우승도 중요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나면 실력도 자연스럽게 늘기 마련이다. ‘제대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때나마 야구가 잘 된다는 핑계로 다른 생활에 눈독을 들이면 안 된다. 내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다.

[사진 (C) 엑스포츠뉴스 김현희/변광재 기자]



김현희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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