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7.20 09:22 / 기사수정 2010.07.20 14:05
[엑스포츠뉴스=안양, 김현희 객원기자] 어지간한 LG 트윈스의 '올드 팬'들은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달콤한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공이 많던 MBC 청룡을 인수하며 대대적인 팀 개편에 나선 LG가 구단 인수 후 바로 첫 해에 우승을 거머쥔 것 역시 여러 야구팬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을 법하다. '신흥 명문' LG의 탄생은 곧 한국 프로야구계의 지각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구단 역사의 시작을 순조롭게 끊은 LG지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승 바로 이듬해인 1991년도에는 치열한 4위 싸움 끝에 6위로 내려앉은 것을 비롯하여 1992년도에도 6위를 마크했기 때문이었다. 김기범, 문병권 등을 비롯한 투수들을 비롯하여 간판타자 박흥식마저 부상, 혹은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4위 싸움을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시기에 LG 마운드에 '한줄기 빛'을 건넨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덕근 現 평촌중학교 감독이다.
1989년, MBC 청룡에 입단한 김덕근 역시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다. 실업야구 농협 시절에는 노찬엽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문지상에 이름을 여러 차례 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1991년 8월 22일, 4위 싸움의 분수렁이었던 태평양 돌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면서 ‘깜짝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 19년, 김덕근은 당시의 기억을 ‘추억’으로 묻어둔 채 후학 양성에 힘을 쓰고 있다. '짧고 굵은' 4년간의 프로생활과는 달리 중학 야구 감독으로서 '제2의 성공시대'를 열고 있는 김덕근 감독. 그의 선수 시절 추억을 들어 보기 위해 안양 평촌중학교를 찾았다.
현역 시절의 추억
-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프로야구를 즐겨 보신 분들, 특히 LG를 좋아하셨던 분들에게 '김덕근'이라는 이름은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닐 것 같다.
김덕근(이하 '김') : (고개를 저으며) 과찬의 말씀이다. 농협에서 MBC에 입단할 때에만 이름을 조금 알렸을 뿐, 지금도 'LG의 김덕근'이라고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웃음).
- 1988년도였나? 실업 야구 농협 시절, 한국전력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을 때 모 언론사에서 김덕근의 존재를 대서특필한 바 있다.
김 : 실업 야구에서 완봉을 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타자들이 알루미늄 배트를 썼기 때문에, 대부분 '타고투저'였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완봉을 했다. 실업에 있을 때 투수로서 좋은 결과를 냈다. 그런데 당시에는 실업야구 선수들이 2년 동안 선수 등록을 해야만 프로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1989년에 MBC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문할 수 있었다.
- 당시 팀 동료 역시 빼어난 실력을 과시했을 것 같다.
김 : 그때까지만 해도 실업팀 여건이 정말 괜찮았다. 프로에서 3할 타율을 꾸준히 기록한 노찬엽 선배를 비롯하여 후에 태평양으로 입단한 박은진, OB의 김선규 등이 팀 동료였다.
- 1989년 신인지명 기사를 찾아봤는데, 당시 '굉장한 신인'들이 많이 들어온 것으로 안다. 당시 시세로 계약금 2,000만 원을 넘기면 A급으로 분류했는데, 그 명단에 있었는데
김 : (공감한다는 듯) 입단 동기로는 김기범, 최훈재가 있었고, 또 조계현을 비롯하여 장호익, OB로 입단한 이진 등 멤버들이 쟁쟁했다.
▲ 김 감독은 제2회 국제 유소년야구대회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사진=경기도 야구협회 제공)
- 1989년 첫 승 했을 때, 어떠한 상황이었나?
김 : (쑥스럽다는 듯) 삼성전에서 내가 세이브 상황서 등판했다. 그런데 상대 타자로 등장한 이만수에게 동점 홈런을 맞았지 뭔가. 그런데 우리 팀이 바로 역전시키는 바람에 '얼떨결에' 승리 투수가 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개막전부터 몸 상태가 좋았고, 특히 배성서 감독님께서 나를 많이 키워주고자 하셨다.
- 데뷔전을 치른 후 이듬해 LG 유니폼을 갈아 입자 마자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가 됐다.
김 : 18승을 거둔 김태원 투수(현 공주고 코치)가 정말 잘했다. 개인적으로는 우승했던 그 해 11월에 결혼도 했다.
- 하지만, 김 감독님의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계기는 1991년 8월 22일, 태평양과의 경기였다. 당시 5이닝을 던지면서, 승리투수가 됐었는데?
김 : 당시 어깨 부상으로 인대가 끊어진 상태에서 몇 개월 쉬다가 백인천 감독님께서 선발로 등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5회까지 던지고, 마무리로 정삼흠 선수가 잘 막아주어 시즌 첫 승을 할 수 있었다.
- 4위 싸움의 분수렁이었던 당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결국 팀은 6위에 머물고 말았다. 이후 팀 주장이 김동재 선수로 바뀌었는데, 김 감독님 추억에 남아 있는 '주장 김동재'는 어떠한 선수였는가?
김 : 소식을 들어보니, (김동재 코치가) 쓰러졌다고 하는데…… 쾌차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작 나는 투수였기 때문에, 김동재 선수보다는 실질적으로는 정삼흠 선수가 투수조 조장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 그러한가? 그렇다면, 동료들이 바라본 정삼흠은 어떠한 선수였는가?
김 : 상당히 성격히 활발했다. 그런데 워냑 내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정삼흠 선수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웃음).
은퇴 이후의 생활
- 그런데 1992년 이후 현역 시절 기록이 없다. 당시 나이로 스물여덟이었는데, 왜 일찍 그라운드를 떠났는가?
김 : 운동을 하다 보니, 잘 안 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하지 않다 보니, 선수 고가 평가에서 내가 좋은 점수를 받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은퇴하게 됐다.
- 이후 어떻게 지냈는가?
김 : 얼마 동안 쉬다가 안양에 초등학교 야구부를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력서를 냈다. 그래서 초등학교 야구부를 3, 4년 정도 맡다가 이후 중학교 야구부 창단 소식에 이곳 평촌중학교로 적을 옮기게 됐다.
올해로 11년 정도 중학교 야구 감독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출신이 아마야구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기존 아마야구 지도자들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께서 끝까지 나를 위해 힘을 써 주셔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도 평촌중학교 야구부가 다른 학교들에 비해 호평을 받는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 경기도 내 대회에서 평촌중학교를 여러 차례 우승시킨 김 감독은 감독상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 (사진=경기도 야구협회 제공)
- 고교야구 감독은 선수들을 프로, 혹은 대학으로 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중학 야구 감독은 '싹이 있는 선수'를 더욱 잘 키워 내거나 아니면 '재능이 없는 선수를 학업에 집중하게끔' 여건을 보장해주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듯싶다. 대개 중학야구에서 이 친구가 싹이 보이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김 : 대부분의 선수가 중학 때 어느 정도 싹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선수에 대해서는 연습을 많이 시키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시킨다. 사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보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만, 고교야구에서도 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한다.
-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지도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 : 우리는 숙소 생활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기 집같이 숙소를 깨끗이 쓰라고 강조한다. 또한, 먼 장래를 보고 운동하라고 가르친다.
- 그래서 이형진 안양시 야구협회장께서 중학 야구부 칭찬을 많이 한다. 특히, 고교야구부와는 달리 실내 연습장을 깨끗이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김 : 어느 시설이건 간에 내 것처럼 쓴다면, 정리 정돈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숙소를 사용하건, 실내 연습장을 사용하건 간에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감독님에게 LG는 어떠한 팀인가?
김 : (잠시 침묵하더니)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감독님이 세 번 바뀌셨다(배성서→백인천→이광환 감독). 지금 참 어려운 상황인데, 이를 잘 극복하고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 마지막 공식 질문이다. '김덕근'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김 : 솔직히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이 쑥스럽다. 내가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부족한 점도 많기 때문에, ‘야구란 ○○다’라고 한 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다만, 내가 나이가 들어 조금 더 나은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때는 어느 정도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김덕근 감독 (C) 경기도 야구 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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