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황수연 기자] 배우 최민식이 자신의 연기관에 대해 언급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중 최민식은 1442년 '안여 사건(임금이 탄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 이후 조선의 역사에서 사라진 천재 과학자 장영실 역을 맡아 세종 역의 한석규와 호흡을 맞췄다.
최민식과 한석규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인연을 시작으로 MBC 드라마 '서울의 달'(1994), 영화 '넘버3'(1997), '쉬리'(1999)에 함께 출연하며 오랜 우정을 쌓아왔다. 허진호 감독에 따르면 두 사람은 꽤 오래전부터 한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는 뜻을 공공연히 알려왔다고. 때문에 20년 만에 재회한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두 사람에게 특히 애틋하고 소중한 작품이 됐다.
최민식은 최근 엑스포츠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날 허 감독이 (한)석규와 내게 '천문: 하늘에 묻는다' 시나리오를 줬다. 대본을 보니 역시나 한 디테일 하더라. 정치나 과학드라마가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래서 석규와 내게 줬구나 싶었고 무조건 콜을 외쳤다. 재밌었던 건 누가 세종이고 장영실인지를 우리가 알아서 정하라고 했다. 대본을 보고 3일 뒤에 전화 통화를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왜 장영실이었을까. 최민식은 "세종도 좋지만 장영실 역할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분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 많지 않다. 빈 공간이 많아서 표현하는데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덕분에 내가 상상하는 장영실을 마음껏 그려봤다"며 "아마 제가 세종을 했으면 풍채가 있는 세종이지 않을까. 많은 그림이 달라졌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석규와 작업이 무척 좋았다는 최민식은 "탁구를 치기 위해 서브를 넣으면 리시브로 공이 넘어오는데 이번에는 스핀으로 직구로 막 넘어오더라. 장시간 동안 랠리를 하는 맛이 있었다. 또 석규가 굉장히 개구져서 저희가 있던 현장 메이킹 필름을 보면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였다. 아마 누가 본다면 '쟤네 미친거 아니야' 할 거다"고 크게 웃었다.
또한 최민식은 극중 옥사에 있던 장영실이 세종을 만나는 장면을 꼽으며 "우리가 서로 부둥켜안으며 우는데 사실 지문에는 울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내가 우니까 세종도 쌓여있던 장영실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나왔는지 석규도 바로 울었다. 둘이 너무 슬퍼서 부둥켜 안았다"먀 "만약 석규가 '여기서 왜 울지?'했으면 피곤해지는 건데 연주하듯이 같이 호흡을 맞췄다. 그럴 때 아주 쾌감을 느낀다. 한석규는 그런 호흡이 가능한 파트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오랜 벗으로 20여년의 세월을 함께한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에 초점을 뒀다. 최민식은 "세종과 장영실의 수많은 업적들은 방송과 책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차별화를 두기 위해 업적을 이루기까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도입부도 예열 과정 없이 바로 본론과 디테일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최민식이 그려낸 장영실은 열정적이고 우직한데 동시에 아이처럼 순수하다. 특히 똘망똘망한 눈빛에서는 귀여움까지 느껴진다. 그는 "우연히 KBS 1TV '명견만리'에서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이라는 분을 봤다. 본인이 만들어 온 로봇을 작동시키면서 설명하는데 너무 즐겁게 설명을 하더라. 아기 같고 순수했다. 문득 장영실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실제 장영실은 비정치적인 인물이자 세종이 내관처럼 가까이 뒀다고 한다. 신분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분과 천하디 천한 계급의 사람이 다 무시하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이유로 의기투합을 했다면 두 사람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결코 일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열린 마음의 군주, 아이들처럼 순수함을 간직한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역사극에서 봐왔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길 바랐다"고 털어놨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과 장영실이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명나라의 천문 사업 개입과 안여사건으로 사이가 멀어지는 20여 년의 시간을 폭넓게 다룬다. 특히 후반부는 노년이 된 세종과 장영실의 모습들이 애틋하게 그려진다.
최민식은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가 우정을 넘어 브로맨스로 느껴진다는 일부 반응에 대해 "오랜 친구처럼 보이고 싶었다. 사실 장영실의 입장에서는 천민의 신분을 면천해주고 벼슬까지 준 왕에 대한 애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너무 가까이 지내다 보니 때로는 도를 넘기도 하는 일이 실제로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투덜 거리고 삐치는 인간적인 서운함과 질투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단지 왕과 신하를 넘어 둘의 인간적인 교감이 보이지 않으면 망한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이 된 최민식에게 영화와 연기는 어떤 의미인지도 물었다. 그는 "얼핏 생각나는 건 '밥벌이'다. 일차원적으로 난 다른 걸 할 줄 몰라 먹고사는 수단이 이것뿐이다. 사실 연극의 3대 요소 중에 하나가 관객인데 솔직히 대중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연기하는 내 행위에 스스로 뻑이 가서 미쳐서 하는 게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천문'을 통해 나만의 장영실을 만들었고, 관객들에게 '내 장영실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던져 본다. 관객들은 공감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내 이야기를 100% 공감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어쨌든 저는 관객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매번 굉장히 이기적인 작업을 하면서 모르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 신구 선생님처럼 연기를 4,50년 해오신 분들에게 연기에 대해 물어보면 '죽어야 끝나는 작업'이라고 한다. 저 역시 연기는 죽어야 끝나는 공부인 것 같다.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다 아는 것 같다가도 또 모르겠다. 매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고 털어놨다.
끝으로 최민식은 "제목이 중국 영화 같기도 하고 무겁고 심각해서 젊은 친구들에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허진호, 한석규, 최민식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부담 없이 가볍게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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