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루과이 감독, 보카 후니오르스, AC 밀란 등 남미와 유럽의 명문팀 감독 역임. 한국 상대 2전 2승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 오는 26일, 허정무호와 16강전에서 만나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타바레스 매직'이 심상치 않다.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은 플랫3와 플랫4를 적절히 구사, 지역 예선에서 그토록 부실했던 우루과이 수비진을 본선 무대에서 조별리그 세 경기 무실점의 '완전무결'한 수비진으로 탈바꿈시켰다.
타바레스 감독은 '전술가'다운 면모를 과시하며 우루과이 대표팀을 플랫3와 플랫4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팀으로 변모시켰고 상황에 따른 유기적인 전술 변화에 상대 공격수들은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비록, 무명에 가까운 선수경력이었지만 수비수로 활동했던 타바레스의 선수 이력은 타바레스 감독이 수비 전술에 일가견이 있는 전술가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1979년, 32세의 나이에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타바레스는 이듬해 자신이 은퇴한 베샤비스타의 유소년 팀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다누비오와 몬테비디오 원더러스에서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이어나간 끝에1987년, 우루과이 양강 중 하나인 페냐롤에 입성했고 같은 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일구며 자신의 이름을 남미 축구계에 각인시켰다.
페냐롤에서의 성공으로 타바레스는 1988년, 기어코 우루과이 대표팀 감독으로 역임 되었다. 코파 아메리카1989 대회 준우승으로 대표팀에서의 성공적인 출발을 알린 타바레스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성공하며 우루과이 축구의 부활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에스파냐와 벨기에를 상대로 1무 1패를 기록한 우루과이는 한국을1-0으로 물리치고20년 만의 월드컵 승리를 기록하며16강에 진출했다. 비록 개최국 이탈리아에0-2로 완패하며 우루과이의 도전은 마무리됐지만 팀에 탄탄한 수비조직을 구축한 타바레스의 지도력은 성공적이었다.
월드컵 후, 타바레스는 보카 후니오르스에 입성하며 남미 최고 명문팀에서 자신의 경력을 이어갔다. 아페르투라 1992 우승이 유일한 리그 우승이었지만 타바레스는 보카에 안정된 수비 조직을 부여했고 약관에 불과하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시켰다.
남미 최고 클럽을 지도한 타바레스에게 이제 남은 건 유럽에서의 도전뿐이었다. 1994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칼리아리를 통해 자신의 유럽 커리어를 시작한 타바레스는 하위팀이던 칼리아리를 중위권으로 도약시켰고 1996년, AC 밀란 감독으로 부임하며 세계 최고 클럽의 지휘봉을 잡는다.
그러나 타바레스의 밀라노 생활은 채 6개월을 못 채웠다. 1996-97시즌 초반 11경기에서 4승 3무 4패의 부진 끝에 타바레스는 밀란의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후 감독으로서 정점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타바레스 감독은 에스파냐의 오비에도와 이탈리아의 칼리아리를 통해 유럽에서의 경력을 이어갔지만 팀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2001년, 아르헨티나의 벨레스 사르스피엘드를 맡으며 타바레스 감독의 6년을 걸친 유럽 생활은 막을 내린다.
이후, 2002년 보카의 감독직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타바레스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우루과이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온갖 역경 끝에 우루과이의 8년 만의 월드컵 복귀를 성공시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모래알 조직력이란 평가를 받던 우루과이를 강력한 팀 정신의 끈끈한 팀으로 변모시킨 타바레스 감독. 30년에 걸친 오랜 지도자 생활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타바레스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명예로운 은퇴를 노릴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루과이가 40년 만에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과 2007년의 대결에서 한국은 우루과이의 '지략가'에게 두 번 모두 쓴맛을 맛봤다. 오는 26일, 한국의 복수가 이루어질지, 타바레스 감독의 마술이 지속될지, 그 결과에 주목해 본다.
[사진=오스카르 타바레스 (C) Gettyimages/멀티비츠]
윤인섭 기자 pres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