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김병기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알리는 것도 쉽지 않다'며 사람 좋은 넉넉한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감독'이라는 호칭이 여전히 낯설다면서, 자신보다 영화를 위해 더 고생해줬다는 후배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며 공을 돌렸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28년 여 동안 기자라는 이름으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기 위해 외국도 마다하지 않고 발로 뛰어 온 그다. 14일 개봉한 영화 '삽질'은 어떤 정치적인 부분을 떠나, 기록과 그 가치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김병기 감독의 바람이 담긴 작품이다.
'삽질'은 이명박 정부가 기획한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을 다룬 팩트 추적 사회고발 다큐멘터리. 12년 동안 취재를 이어온 김병기 감독과 그의 동료들이 유튜브에 올릴 5부작 다큐멘터리 용으로 먼저 만들었고 역시 기자로 활동 중인 이선필 총괄 프로듀서의 추천으로 영화화에 도전,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한 명의 관객이라도 '삽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김병기 감독은 개봉 첫 주말에도 여러 극장을 누비며 영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김병기 감독은 "지금까지 제가 12년 동안 4대강 사업을 취재해왔던 것은, 정치적 목적이 전혀 아니다"라며 "강이 죽어가는 것을 죽어가는 대로, 제가 직접 보고 눈으로 확인하며 들은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이다. 정치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며 가급적 당사자들의 반론도 들으려 애를 썼던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다"면서 조심스럽게, 또 강단 있게 말을 이어갔다.
-'삽질'의 영화적 의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사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중간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생겼었어요. 그때 정연주(전 KBS 사장) 선배에게 고민을 얘기했고, 선배가 다른 방법들도 제안을 해주셨거든요. 그 때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셨고, ('PD 수첩'에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제작한) 정재홍 작가라고 말하니 '무조건 해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큰 나무 하나를 잡으려고 하지 마라, 4대강 사업에 대한 숲을 보여주면 된다'고 조언해주셨어요. 4대강 사업에 대해 사람들이 하나의 파편들만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숲으로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기록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봤죠.
하나로 모아본다면, 4대강 사업에 대한 총체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환경 문제도 다루고 있고 불법과 사기, 편법, 속임수, 불법사찰까지요. 어떻게 보면 'PD수첩'의 확대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시게 되면 나름대로의 드라마와 스토리가 있어요. 제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하나같이 화내고, 무례하다며 인터뷰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분들의 민낯을 보면서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들도 볼 수 있다고 봐요. 극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94분 동안 펼쳐지는 것이죠."
-사람들이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만 보고 정치색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12년 동안 4대강 사업을 취재해왔던 것은, 정치적 목적이 전혀 아니었어요. 강이 죽어가는 것을 죽어가는 대로, 제가 직접 보고 눈으로 확인하며 들은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이죠. 정치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며 가급적 당사자들의 반론도 들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던, 그런 영화라고 저는 말하고 싶어요. 정치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 사람을 잘못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 아닐까요.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고요."
-정말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좀 더 기울였던 노력이 있었을 것이에요. 영화 속에서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는 눈앞에서의 무시에도 조금의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취재를 이어가던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요즘 말로 저는 바지감독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고요.(웃음) 제가 취재 영역에서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지만 안정호 기자가 전체적인 영상작업을 맡으며 영화 제작을 이끌었어요. 일단 담담했던 모습은, 안정호 기자가 화를 내지 말라고 했고요.(웃음) 사실 제가 불같이 화를 내는 성정이라면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웃음) 해야 하는 일이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더 담담하려고 했던 것이고,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마이크를 들이댄 것은 반론취재를 한 것이죠. 이재오 전 국회의원에게도, 잘 알지만 '얘기를 듣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그 말을 들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에요.
10년 전에 이랬던 사람이, 10년 뒤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기록에 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죠. 저널리스트로서의 검증, 크로스체킹의 과정으로 마이크를 들이댔던 것인데, 사실은 또 그것에서 그 분들이 재미 포인트를 제공해줘서 고마운 점도 있죠.(웃음) 그 분들을 잡기 위해 1년 동안 헤맸던 적도 많아요. 기다리고 사정했지만 거절당했죠. 어쨌든 이 영화는 그들의 민낯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니, 그것을 우선순위로 만들어진 것이고요."
-영화를 만들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지요.
"여러 가지가 있죠.(웃음) 현장에 가면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고, 정말 참혹해요.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차로 지나가면 물이 꽉 차 있으니까 '보기 좋다'라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도 썩어가고 있는 강바닥을 생각하면 아쉽죠. 큰빗이끼벌레, 실지렁이와 깔따구까지 이런 것들이 실제로 보면 영상에서 보는 것보다 더 끔찍한 면이 있어요. '이렇게 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얘기도, 사실은 좀 복잡하기는 하죠. 한반도 대운하를 4대강 사업으로 한 것이 물론 영화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비자금 문제도 그렇고요. 지금도 그 비자금 문제는 공소시효가 살아있거든요. 재수사를 한다면, 22조 2천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 잔치에서 최대 판돈을 쥔 사람이 누구인지, 검찰은 밝혀내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수사의 영역이지, 취재의 영역이 아니잖아요."
-영화를 본 일반 관객들과는 어떻게 소통해왔나요.
"자신이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화가 나는데, 지금 내가 무엇을 실천해야 하나' 묻는 분들도 꽤 있으셨죠. 저도 '우리가 영화 한 편을 쏘아 올렸는데, 지금부터는 당신들과 함께 더 끌어올리자'는 얘기를 했어요. 시민들과 관객들이, 정치적인 것은 잘못됐다고 영화를 보고 입소문을 내주셔야 한다고 봐요.
시민정치가 기존의 기득권 정치를 뒤집어엎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재인 정부가 4대강 정상화 공약을 다시 내걸고 당선이 됐죠. '내가 할 일은 끝났구나, (이것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알아서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지지부진하죠. 상대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도 있을 것이에요. 대통령이 아무리 강력한 생각과 나름대로의 철학,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라며 변화할 수 없지 않을까요. 정치적으로 시민들이 밑에서부터 일어나 끌어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그 이유에서죠."
-영화가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어요. 함께 해준 이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 면전에서 서운한 얘기를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웃음) '12년 동안 정말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오마이뉴스라는 플랫폼에서 12년 동안 글로 기록을 해왔다면, 지금은 '삽질'로 여러 인터뷰를 하면서 입으로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이 저희에겐 기회이기도 하거든요. 가급적 이 기회를 많이 활용해서, 좀 더 많은 매체들을 만나고 그 매체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독자들과 진솔하고 진정성 있게 만나려고 해요. 그 진정성 하나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특히 김종술 시민기자는 1년 중 340일 정도를 금강에 나가 있었어요. 금강이 출입처인 것이죠.(웃음) 저를 가장 부끄럽게 하는 기자이기도 해요.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크고요. 이철재(에코 큐레이터, 시민기자),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시민기자)과 제가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있을 수 있게 해 준 많은 후배들, 안정호 기자와 이선필 기자, 힘든 과정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안민식, 조민웅 기자에게도 고마워요. 이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열심히 뛰어야 겠다' 마음먹죠.(웃음) 판화로 응원해주신 이철수(목판화가) 선배도 고맙고요."
-항상 취재에 바빴던 아빠, 남편을 지켜봐왔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실제로 지난해에는 '글쓰기 가족 여행'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더군요.
"제가 기자라는 이유로 매일 밖에 돌아다니고 하니까, 막내는 어릴 때 저를 보며 '이 사람은 누구지'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에요.(웃음) 아빠로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매년 여름, 겨울방학이면 가족 여행을 가고 가족 신문을 만들었거든요. 그것을 묶어서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고, 만들고 보니 제가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아니라 아이들이 제게 선물을 준 것이더라고요. 최근에 아내와 딸 둘이 저희 영화를 보러 극장에 왔는데, '정말 고생했다'고 말해줬죠.
아내와는, 지금도 존칭을 써요. 어떻게 보면 기자라는 직업이 펜으로 사람을 비판하고 긁는, 때로는 그렇게 죽일 수도 있는 것이잖아요. 아내가 제게 매일 해주는 얘기 중 하나가, '당신이 비판하려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쓴다'라고 생각하라 하더군요. 그 사람을 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개과천선해서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어야 한다고요. 영화에 많은 탐욕스러움이 나온다고 한다면 '진짜 나와 우리는 탐욕스럽지 않았나', 보면서 화가 나겠지만 그런 생각도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당부가 있다면요.
"4대강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요. 매년 5천억에서 1조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고 있어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그걸 꼭 극장에서 봐야해? 나중에 인터넷에 올라오면 보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루한 기록이 아니라 나름대로 짜인 구성, 드라마와 재미가 다 있어요. 그런 영화적 요소들이 잘 갖춰져 있으니 부담 없이 오셔서 가족들과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희에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원래의 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앞당길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닐까 싶어요."
-'기자 김병기'로의 앞으로는 어떻게 계획 중인가요.
"사실 제 연차 정도 되면 대부분 앉아서 데스크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제가 편집국장일 때도, '인터넷 시대에 왜 사무실에서 편집국장을 하냐, 현장 편집국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웃음) 지금의 저는 선임기자라는 이름으로 일선 현장에 내려와 있는데, 회사에 속한 취재기자로서의 맡은 일들을 계속 해나가야겠죠. 또 4대강이 원래의 강으로 돌아갈 때까지 4대강 독립군인 김종술, 정수근 기자와 계속 취재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간의 기록들이 중요한 것이잖아요. 요즘에도 휴대전화로 항상 영상을 찍고 있는데, 이렇게 기록하다보면 10년 뒤에 또 지금의 지난했던 과정들이 영화로 만들어질 수도 있겠죠.(웃음) 지금 현재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기록하고, 그렇게 움직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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