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밤 전북의 승리로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가 종료되자 기자 근처에서 조용히 관전하던 박상균(34ㆍ회사원)씨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해 주변에 많은 울산 팬들이 있는데도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그는 이어 "회사에 월차 내고 군산에서 울산까지 다섯 시간 넘게 차를 몰고 왔지만 하나도 안 피곤하다"며 "이런 승리가 삶의 활력소"라며 활짝 웃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전북 서포터를 포함해 약 오십여 명 정도 되는 전북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평일인데도 찾은 이들의 성원은 전북의 대승에 한몫했다. 전북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는 경기 종료 후 이들을 찾아 열렬한 응원에 화답했다.
이날 평일이지만 꽤 많은 관중이 찾아 명승부를 지켜봤다. 북쪽 관중석의 울산 서포터 '처용전사'는 종이 가루를 뿌리며 응원전을 펼쳤다. 이들은 울산의 결승 진출을 의심하지 않는 듯 했고 본부석 건너편 관중들 역시 그랬다.
하지만 하필 이날 경기는 울산 지역 중·고·대학교들의 시험기간이라 학생들이 많이 찾지 못했다. 시험 기간인데도 경기장을 찾았다는 유민지(17ㆍ 학생)양은 "시험을 조금 못 봤지만 오늘 천수 오빠가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경기장에 왔다"며 "오늘의 승리는 울산"이라고 제차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경기 시작 10분 전까지 관중석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관중들이 들어와 자리를 채워 울산의 축구사랑 열기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평일인데도 이 정도면 많이 온 것'이라는 것이 울산 팬들의 대다수 의견이었다.
그런데 이날 경기를 K리그의 한 경기 정도로 인식하는 관중들이 상당히 많았다. 같은 리그 팀끼리 경기를 하는 탓에 그럴 만도 했다. 경기장에 와서야 아시아축구연맹에서 주최하는 클럽팀 간 경기인 것을 알았다는 관객이 상당수였다.
이 때문에 울산이 0-2로 지고 있을 때 K리그라 착각한 몇몇 관중은 "왜 우리나라 사람이 주심을 안 보냐"며 주심에게 은근히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주변 관중들이 챔피언스리그 제도를 설명해주자 그제야 고개를 끄떡이며 이해하기도.
▲ 승리를 만끽하는 전북 선수들
ⓒ AFC.COM
0-3으로 스코어가 벌어지자 울산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선수들을 향해 "열심히 뛰라고"하며 소리를 치는 장면이 간간히 잡혔다. 주변의 한 관중은 "전북이 역전의 명수라더니 기가 막히게 역전하는 것 같네요…"라며 한탄섞인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천수의 만회골이 터지자 "역시 이천수"하며 이천수를 외치는 소리가 울산 문수 경기장을 달구어 놓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천수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계속 달리는 전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1-4가 되버린 순간 많은 관중들은 머리를 감싼 채 경기장을 바라보며 결승 티켓이 울산에서 전북으로 떠나버리는 장면을 봐야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 후에는 전북 선수들과 전북 응원단이 신나게 뛰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오늘 우리(울산) 선수들 왜 이럽니까?"하고 탄식하며 경기장 밖을 나가던 조상준(37ㆍ자영업)씨는 "챔피언스리그의 의미가 뭔지 확실히 알았네요. 내년에는 꼭 다시 나가서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울산 팬 모두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울산 팬은 올해 K리그 챔피언이 되지 않으면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울산팬들에게는 가혹한 밤, 전북 팬들에게는 신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