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3.31 10:31 / 기사수정 2010.03.31 10:31
[엑스포츠뉴스=이동현 기자]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었기에 19년이나 현역으로 뛸 수 있었다."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변하는 동안 한 팀에서만 활약한 내야수. 주전으로 시즌을 시작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한여름이 되면 늘상 내야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이종열(37)이 30일 LG 홈 개막전에 앞서 은퇴식을 갖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이제 LG 육성군 코치가 됐다.
1991년 4월 25일 잠실 빙그레전에서 치른 데뷔전을 포함해 통산 1654경기에 나와 4748타수 1175안타, 타율 2할4푼7리를 기록했다. 52개의 홈런을 쳤고, 도루는 131번 성공시켰다. 1993년 21도루로 이 부문 7위에 오른 적이 있고, 세 차례 올스타전에 출장했다.
▲ 투수·포수 빼고 어디든 OK
그는 '전천후 내야수'라는 수식어가 무척 잘 어울리는 선수다. 수준급 수비 실력을 갖춘 이종열은 내야 어디든 공백이 생기면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이른바 '멀티 플레이어'였다.
데뷔 후 백업 유격수로 활약하다 3루수와 2루수로 자리를 옮긴 후 꽤 많은 경기에 출장했다. 1998년과 1999년에는 3루수로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핫코너를 지켰고, 이듬해인 2000년에는 키스톤 콤비의 한 축인 2루수로만 131경기를 뛰었다.
1루수와 유격수로도 꽤 많은 경기를 소화한 이종열은 심지어 외야수로 출장한 경험도 갖고 있어 투수와 포수를 빼고는 안 해본 것이 없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남게 됐다. 그만큼 쓸모있는 선수라는 의미를 담아 팬들은 그에게 '변신 괴물'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은 붙였다.
▲ 꾸준함이 만든 올스타
공격 성적이 그저 그런 선수가 스타 플레이어로 발돋움하기란 정말 어렵다. 아무래도 화려한 조명은 타율이 높거나 홈런을 많이 치는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수비를 앞세우는 선수가 '별들의 잔치' 올스타전에 초대받는 경우가 드문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러나 이종열은 선수 시절 올스타전 무대를 세 번이나 경험했다. 베스트 9에 이름을 올린 건 아니었지만, 이종열의 가치를 인정한 여러 감독들이 그를 잔치에 초대했다. 12년차였던 2002년 7월 17일, 문학에서 벌어진 올스타전에서 이종열은 9회 의미 있는 안타를 터뜨려 서군의 3-1 승리에 공헌했다.
이후 그는 2005년과 2007년에서 감독 추천 선수로 다시 올스타가 됐다. 2007년 7월 17일 사직 올스타전에서 이종열은 8회말 무사 1,3루에서 정대현의 공을 공략해 1타점 좌전 적시타를 기록한 바 있다.
▲ 1세대 스위치 히터로 주목받다
이종열은 원래 오른손 타자였지만, 1995년 김용달 코치의 조언에 따라 스위치 히터로 변신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상대 투수가 좌완이든 우완이든 관계 없이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었다.
이듬해 왼쪽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스위치 히터를 잠시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다시 양손 타법을 들고 나온 이종열은 그해부터 3년 연속 규정 타석을 채우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타고투저가 심했던 1999년에는 타율을 2할9푼1리까지 끌어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중심 타선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왼손으로도 타격을 할 수 있었기에 2번 타순에 꽤 잘 어울리는 타자였다. 김재박 감독 부임 첫해인 2007년에 이종열은 톱타자 이대형과 테이블세터를 이뤄 선수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시즌 타율은 2할8푼5리, 타격 18위였다.
[사진 = 이종열 코치 선수 은퇴식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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