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3.01 01:29 / 기사수정 2006.03.01 01:29
88시즌의 주인공, 해태와 김성한
아무도 오르지 못한 고지를 정복하는 것만큼 짜릿한 게 또 있을까. 해태와 김성한은 각각 한국시리즈 3연패와 한 시즌 30홈런이란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면서 프로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해태는 한마디로 최강이었다. 그동안 ‘가을의 전설’로 통했던 해태가 페넌트레이스에서도 위용을 과시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해태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모두 석권(약속이나 한 듯 전후기 똑같이 34승 1무 19패)하며 한국시리즈에 자동 진출했다. 이렇게 당당히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전 선수들이 모두 고른 활약을 보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응룡 감독은 선발투수로만 내보내기엔 너무 아까웠던 선동렬을 선발-중간-마무리 가리지 않고 출전시키면서 승리 지킴이로 활용했다. 선동렬이 입단한 후 에이스 자리를 빼앗겼던 이상윤도 절치부심으로 부활에 성공, 선동렬과 똑같이 16승씩 거둬 도합 32승을 합작해냈다. 이와 함께 문희수, 차동철, 신동수, 김대현(이 해 교통사고로 사망) 등 화려하진 않지만 언제든 제 몫을 해내는 숨은 보석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타선의 주축은 세대교체의 시발점이자 무적시대의 주역인 이순철과 한대화, 새로운 안방마님으로 자리 잡은 장채근, 그리고 원년부터 내려온 전통의 ‘김씨 타선’이었다. 은퇴를 앞둔 김봉연은 내리막을 걸었지만 김준환과 김종모가 분전했다. 하지만 리더는 따로 있는 법. 김씨 타선의 기둥은 단연 김성한이었다.
‘국내 최초 30홈런’ 김성한의 기록 잔치
어느덧 프로 7년차에 접어든 김성한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1루수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동안 쌓아온 기록들도 하나 둘씩 프로야구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김성한은 개인 통산 700안타 고지를 처음 선점했고 400타점(2번째), 100홈런(3번째) 등 굵직굵직한 통산 기록들을 한 시즌에 모두 세우면서 ‘최고의 선수’를 향해 전진했다.
88시즌에서 만큼은 단일시즌 기록도 김성한의 몫이었다. 역대 최초로 30홈런을 때려낸 것은 물론 89타점으로 단일시즌 타점 신기록도 작성했다. 안타는 131개를 때려내 신기록 달성에 아쉽게 실패했지만 당시 최고 기록인 133개는 이미 85시즌에 자신이 세운 것이라 서운할 이유는 없었다.
다양한 기록들을 한 시즌에 쏟아버린 김성한의 수많은 기록 중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은 역시 30홈런. 당시 팀당 108경기(빙그레가 새로 가입하며 110경기에서 108경기로 조정)로 치러지는 페넌트레이스에서 30홈런은 꿈의 숫자나 다름없었다.
김성한은 이 해 홈런, 타점, 승리타점, 장타율 등 4개 부문에 걸쳐 타이틀을 획득, 정규시즌 MVP가 그의 몫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었다. 사실 김성한은 85시즌에도 MVP로 선정된 바 있어 한 선수가 두 번 MVP를 차지하는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받는 MVP는 조금 남달랐다. 85시즌에 ‘어부지리’로 MVP가 됐다는 말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남모를 괴로움이 있었지만 한 시즌을 쥐락펴락했던 이번 시즌에 받는 MVP는 당당하게 받을 수 있었다.
김성한의 별명은 ‘오리궁둥이’였다. 일명 ‘오리궁둥이 타법’을 구사하며 연일 맹타를 휘두르자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팬들도 ‘김성한=오리궁둥이’를 자연스레 공식화했다. 배트를 뒤로 젖히는 게 핵심이다 보니 엉덩이가 툭 튀어나오는 건 불가피했다. 사실 팬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타격폼이지만 이것은 김성한이 그라운드를 휘젓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충돌사고’의 진한 아쉬움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 9월 6일 삼성전에서 1루 수비를 보던 김성한이 김성래와 충돌,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김성래는 무릎이 다치면서 시즌 종료) 30홈런을 향해 달려가던 김성한에게 안 좋은 징조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음날. 빙그레전에 나선 김성한은 한용덕에게 기분 좋은 30번째 홈런을 때려냈지만 7회말 수비에서 장종훈과 1루에서 부딪치며 왼쪽 손목이 부러지는 대형사고가 났다. 그에게 내려진 선고는 ‘한국시리즈 출전 불가’.
때마침 불을 뿜던 호쾌한 장타를 한국시리즈에서도 뽐내고 싶었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 해태는 김대현의 교통사고 사망과 김성한의 부상 등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나며 위기를 겪지만 위기일수록 힘이 모아지는 팀워크를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처녀 출전한 빙그레를 4승 2패로 제압했다.
김성한은 아쉬움 속에 한국시리즈를 지켜봤지만 그가 해태 우승의 당당한 주역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한은 다음해에도 홈런 1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95년 은퇴까지 해태 유니폼을 입으며 영원한 타이거즈맨으로 남아 호남팬들의 가슴 속에 이름 석자를 새겨 넣었다.
김성한 (1988) → 30홈런 89타점 타율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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