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충분히 승산 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 홍콩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크로아티아와의 칼스버그컵 1차전에서 김동진과 이천수가 릴레이 골을 성공시킨 한국팀은 2-0으로 크로아티아팀을 완파하고, 축구 팬들에게 기분좋은 새해 선물을 선사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보다 한층 성숙한 경기를 펼친 한국 대표팀은, 유럽 지역 예선에서 7승 3무(21득점 5실점)를 기록하며 스웨덴을 물리치고 8조 1위를 기록한 크로아티아를 시종 압도하며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날 2-0이라는 스코어보다 더 만족스러웠던 점은 유럽의 강호를 상대로 보여준 경기 운영 능력이었다.

전반 초반- 크로아티아의 공간 장악에 흔들린 한국

비록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뛰었던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이 소속 클럽의 일정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크로아티아팀의 전력은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3위의 저력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다 일본팀과 같은 조에 편성된 크로아티아팀으로서는 이번 한국전이 아시아팀을 가늠해 볼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전력으로 맞섰다.

이러한 크로아티아팀의 공격력은 전반 초반 한국 대표팀을 압도했다. 크로아티아팀의 16번 예르코 레코가 중앙에서 좌우 측면을 활용하는 공간 패스로 대표팀을 흔들었고, 초반 한국팀은 크로아티아팀의 강한 공격에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전반 6분 한국 진영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아티아팀의 날카로운 크로스는 이운재가 먼저 공을 잡아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상대 측면 공격수에겐 공간을, 상대 공격수에게는 자유로운 문전 쇄도를 허용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크로아티아팀은 4백을 뚫기 위한 효과적인 공격 방법인 '중앙→측면→크로스'의 공식을 계속 사용했다. 한국팀 수비라인의 측면 수비수였던 조원희와 김동진은 효과적인 지역방어에 실패하면서 상대에게 측면을 연이어 허용했다.

이렇게 크로아티아팀이 한국팀의 측면을 손쉽게 허물 수 있었던 것은 김정우와 이호가 버티던 중앙 미드필드 라인의 2선 방어가 상대적으로 엷었기 때문이다. 김정우과 이호가 버티는 중앙이 크로아티아팀에게 장악당하면서 상대는 중앙부터 시작해 측면의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쉽게 펼쳐나갈 수 있었고, 이는 대표팀 수비 조직 전체를 흔드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러한 초반의 수세는 전반 20분까지의 패스 성공률을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크로아티아에 약 20%나 뒤진 패스 성공률은 중앙 미드필드를 장악당하면서 생긴 결과였다. 결국 공간을 장악당한 한국팀은 부정확한 롱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고 크로아티아팀은 짧고 정확한 숏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경기의 주도권을 빼앗긴 한국팀은 1선 공격수들이 중원까지 내려와 수비를 지원하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또 크로아티아팀의 공간 패스를 최진철, 김상식 등 두 명의 중앙 수비수가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상대 공격 예봉을 꺾으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팀의 공격을 무디게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해결책은 최전방 부터의 '압박'과 '협력수비'였다.

한 박자 빠른 패스와 슈팅, 크로아티아 격파의 원동력

전지훈련에서의 첫 승리를 거두었던 지난 핀란드팀과의 경기 때부터 대표팀 공격 라인에 생긴 변화가 있다면 바로 한 박자 혹은, 반 박자 빨라진 패스와 슈팅 등 전체적으로 빨라진 공격 타이밍이었다. 지난 핀란드전에서도 정경호와 조재진 등 공격수들은 빠른 공격 판단에 따른 패스와 슈팅을 선보이며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전방 공격수로 나선 이동국과 이천수는 골 마우스 부근에서는 원터치 혹은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과감한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두드렸고, 미드필더 부근이나 골 에어리어 밖에서는 빠른 패스로 상대 수비를 허무는 데 성공했다.

특히, 후반 5분 이동국의 원터치 패스에 이은 이천수의 논스톱 슈팅은 좋은 공격 조합이었을 뿐만 아니라 순간 동작에 약점이 있는 유럽 수비수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좋은 표본이었다. 주전 수비라인이 노쇠한 프랑스팀이나 월등한 신장과 체격 조건에 비해 순간 스피드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스위스팀을 이기기 위한 득점 루트를 하나 발견했다고 좋을 것이다.

또 타깃맨으로서 조금씩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이동국은 중앙에서 볼을 받아 이천수와 정경호 같은 2선 공격수들이 파고드는 공간에 패스를 질러주는 공격 패턴을 많이 선보였다. 한국대표팀은 비록 두세 차례 득점 기회를 날리는 아쉬운 모습도 보였지만 골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상당히 좋았다. 또, 그 과정이 단 한두번의 볼 터치로 마무리되면서 크로아티아팀의 수비진을 손쉽게 무너트리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전반 35분 터진 김동진의 선제골도 중앙에서 측면으로 이어지는 한국팀의 빠른 공격 패턴이 가져다준 결과물이었다. 전반 중반부터 대표팀이 중앙에서 측면으로 이어지는 공간 패스 시도를 늘리자 크로아티아팀의 수비 라인은 후퇴하면서 측면 방어에 주력했다. 결국 크로아티아팀 수비진들의 후퇴로 슈팅할 공간을 잡은 김동진은 마음 놓고 중거리 슈팅을 때릴 수 있었다.

물론, 크로아티아팀의 전력이 최상이 아니었고 우리가 상대할 스위스나 프랑스 같은 유럽팀이 크로아티아팀와 똑같은 스타일을 지향하는 팀들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유럽에 약했던 대표팀이 유럽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비책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다. 특히, 이날 공격진이 보여준, 빠른 선택에 의한 공격은 인상적이었다.

아직 수비시 공중볼 경합에 대한 보강과 종종 사람을 놓치는 위험한 상황, 지역 방어와 대인 방어의 사이에서 혼동하는 전체적인 수비 조직은 분명 다듬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남은 경기에서 대표팀이 얼마만큼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을지, 전지훈련의 본격적인 담금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