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브라질의 명장 룩셈부르고(브라질. 53) 감독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5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가 반데를레이 룩셈부르고 감독을 해임하면서 불과 2년 6월 동안 무려 5명의 감독을 경질 시키는 기록 아닌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지난 2003년 6월 델 보스케 감독의 해임을 시작으로, 카를로스 케이로스, 카마초, 마리아노 가르시아 레몬, 룩셈부르고 까지 줄줄이 해임 시켰던 레알 마드리드는 한국 국가 대표팀의 감독직에 비유되었던 '독이 든 성배'란 말이 더욱 잘 어울리는 팀이 되어 버렸다.
지난 04/05시즌 중반 레알의 지휘봉을 잡았던 룩셈부르고 감독은 부임 초반 승승장구하며 레알의 '빛'으로 떠올랐으나 결국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에 리그 우승을 내주었고 지난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유벤투스에 당한 참패, 그리고 이번 05/06시즌의 초반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외형상으로는 감독들이 화려한 멤버들로 이루어진 레알을 잘 이끌지 못했다는 결론에 다다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초호화 멤버에도 불구하고 레알 마드리드가 이름값에 걸맞은 성적을 올리는 데 계속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레알 마드리드, 오직 갈라티코매년 여름과 겨울 이적 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움직임은 유럽 축구계의 화두가 되곤 한다. 몇 년 전부터 이브라모비치가 움직이는 첼시가 '머니 게임'에 동참하며 선수 영입 경쟁을 펼치고는 있지만, 레알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지닌다. 첼시는 무링요 감독의 선수 수급 계획과 팀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계획적이고 효과적인 영입을 펼치는 반면, 레알은 검증 된 '스타'만을 영입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일명 '갈라티코' 시스템이란 확고한 정책 기조를 가지고 있는 페레스 회장이 레알의 사령부에 버티고 있는 한, 지금과 같은 레알 마드리드의 어처구니 없는 선수 영입 행태는 계속 될 전망이다. 갈라티코 시스템은 스타급 선수를 사들여 상업적인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뜻하는 데, 축구인으로서의 마인드 보다는 경영자로서의 삶이 더 익숙한 페레스 회장에게는 어쩜 당연한 행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난 2000년, 페레스 회장의 부임이 레알 마드리드에 가져다준 성과물은 굉장하다. 무려 2억 7천만 유로의 엄청난 적자에 허덕이던 마드리드를 일으키기 위해 보여준 그의 공격적이고 과감한 투자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페레스는 연습구장을 판매한 돈으로 부채를 탕감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사들이면서 '최고'란 이미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2000년 루이스 피구를 시작으로, 2001년 지단 2002년 호나우두 2003년 베컴 2004년 마이클 오웬 그리고 올해에는 브라질의 신성이라는 호빙요를 펠레를 위시한 브라질 정부와 투쟁하면서 까지 영입했다. 이러한 스타급 선수의 영입으로 구단 재정은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했고, 2000년 2천500만 유로였던 수입이 지난해에는 12배나 뛰어올라 3억 유로에 근접했다.
구단이라는 이미지보다 하나의 기업에 가까운 유럽의 축구 구단으로서는 경이로울 만큼의 재정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페레스 회장의 공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페레스 회장의 갈라티코 시스템이 구단의 재정적인 면과 이미지 사업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구단의 근간이며 구단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이유인 '축구' 그 자체에 있어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축구는 11명이 뛰는 단체 스포츠이다. 11명 이란 적지 않은 숫자의 선수들이 그리 넓지 않은 경기장에서 각자 정해진 역할과 포지션, 그리고 임무를 받아 움직이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스포츠이다. 11명의 팀 원이 하나의 결과물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부분은 그 개개인의 능력들이 어떻게 하나로 융화되어 표출되느냐 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지난 수년간 영입한 각국의 에이스들로 인하여 개인 기량은 거론할 필요도 없이 최고가 되었지만, 그들의 기량이 한 데 어우러지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도 함께 불러왔다. 게다가 많은 축구팬의 각광을 받고 수많은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급' 선수들이 대부분 공격에 치중되어 있어 자연스레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층은 공격 일변도인 선수 구성으로 바뀌어 갔다.
호나우두와 라울에 호빙요가 버티는 공격 라인은 말할 것도 없고, 베컴과 지단 밥티스타 구티 그라베센 등 미드필더 라인까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선수들 일색이다. 더군다나 기존의 모리엔테스나 '원더보이' 마이클 오웬,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를 이끌었던 루이스 피구 같은 슈퍼스타들도 레알에게서 떠나야 했을 정도로 레알의 선수층은 에이스들 일변도다.
이런 레알의 선수 구성은 흡사 1950년대 후반, 유럽 축구계를 휩쓸었던 레알의 선수층과 매우 흡사하다. 당시 레알은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란 천재를 필두로 왼발의 달인 푸스카스와 헨토 델솔로 짜진 막강한 공격라인을 구성했었다. 하지만,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줄 알았던 당시와는 다르게 현대 축구는 중앙과 공간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지배하고 있고, 공격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중앙을 먼저 지배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헌데 레알의 칼라티코는 이러한 현대 축구의 법칙을 외면한 채, 단순한 '스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결국 높게만 쌓았던 빌딩이 서서히 기초의 부실함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감독의 교체는 아무 의미 없는 낭비지난 2004년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재선에 성공한 페레스 회장은 '앞으로 매년 한 명 이상의 갈라티코를 계속 실현해 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힌 바있다. 당시엔 에버튼에서 뛰고 있던 웨인 루니가 강력한 영입 대상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루니가 맨체스터를 택해 물거품이 되었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시장에서 갈라티코 1호였던 루이스 피구를 보내고 브라질에서 호빙요를 공수해 오면서 이제 4~5년이 지난 낡은 갈라티코들의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단과 베컴 호나우두 등은 여전히 매력적인 선수들이지만, 이제 그들을 대체 할 새로운 '별'을 찾고 있는 셈이다. 맨체스터와 눈치 싸움이 팽팽한 독일의 미드필더 미하일 발락의 영입 계획도 어쩌면 그러한 갈라티코의 세대교체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세대교체의 대상이 여전히 4-5년 전과 다름없는 단순한 '스타' 선수들의 영입이란 점이다.
현재 엘게라가 버티는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의 힘겨움과 많이 지쳐버린 카를로스를 비롯한 윙백의 변화, 이에로의 은퇴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수비라인의 재정비 따위는 레알의 머릿속에 아직 절실하지 않은 듯 하다. 이미 심하게 기울어진 팀의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보다는 되려 더 큰 불균형을 추구하는 선수 영입이 쉼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떤 명장이 어떻게 팀을 바꾼단 말인가?
팀이 감독을 중심으로 돌아가야지, 구단주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 나간다면, 굳이 감독이란 사람을 자리에 앉힐 필요도 없다. 페레스가 지금과 같은 기업적인 목적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계속 이끌어 간다면, 레알 마드리드는 곧 2000년 이전의 팀으로 몰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많은 축구팬은 레알 마드리드보다 FC 바로셀로나의 경기력에 적지 않은 매력을 갖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클럽을 꼽는데도 이제는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첼시의 이름이 더 많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직은 그냥 '독이 든 성배'의 차원이 아니다. 그 독이 든 성배를 마실 것인지 말 것인지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불충분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작업을 거칠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설령 생각한다 하더라도 페레스 회장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실현해 나가기 어렵다. 감독의 역량과 능력이 선수들로 인하여 표출되기 어려운 팀인 것이다.
아직 페레스 회장의 임기는 2남년 반이나 아있다. 그 사이 유럽 축구의 이적 시장은 무려 5번이나 남아있고, 레알 마드리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갈라티코란 정책을 기준으로 꾸준한 선수 보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물론 그 선수 보강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실적인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페레스 회장의 재선과 더불어 레알 마드리드의 재도약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영양제의 섭취로 위로만 크게 자랐던 레알의 기형적인 몸집은, 부실한 허리와 높은 상체를 감당키 힘들어하는 하체로 인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손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