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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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 있는 야구 발전,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

기사입력 2009.11.16 21:22 / 기사수정 2009.11.16 21:22

조인식 기자

흔히 월드시리즈를 'Fall Classic(가을의 고전)'이라고 한다.

이는 월드시리즈가 가을(보통 10월)에 열리기 때문인데, 야구는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보다는 훨씬 늦게 탄생했지만, 올해의 월드시리즈가 105번째 대결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월드시리즈는 충분히 가을의 고전으로 불릴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하고도 몇 년 뒤인 2006년에 시작되어 이제 단 두 번의 대회만을 치른 WBC의 C 또한 'classic'을 뜻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바로 'classic'이라는 단어를 국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뜻(음악에서 쓰일법한 의미)으로 번역한 것이 이러한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영어의 'class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로마 시대의 최상위 계층을 뜻하는 'classicus'라는 말에서 나왔다. 그래서 'classic'은 '최고 수준의'라는 뜻 또한 가진다. 따라서 각 팀의 최고 선수들만 모아 한여름에 펼치는 올스타전은 'Midsummer Classic', 세계 야구의 최강을 가리는 대회는 'World Baseball Classic'인 것이다.

양대 리그의 최고 팀들이 펼치는 가을밤의 명승부인 'Fall Classic' 에서도 'classic'은 이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쓰였던 '가을의 고전'이라는 표현은 매끄러운 번역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진 ⓒ WBC 공식 홈페이지
 
누군가의 말처럼 번역된 글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고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번역된 텍스트는 원문에 나타난 개념이나 의미, 정신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며 원문을 읽지 않고 번역된 것만 보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야구 관련 용어나 외서 번역에 있어 많은 실수를 해왔으며 오래전에 발생한 실수들도 제때 교정하지 않아 그대로 굳어져 원래의 표현이 가지는 뜻을 바꾸거나 심각하게 망가뜨려 버린 경우가 많다. 특히 스포츠 전문지가 아닌 경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여 이름난 잡지를 비롯한 언론에서조차 벤치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manager(감독)'를 원어 그대로 번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manager'라는 어휘가 야구에서는 감독을 뜻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다른 스포츠에서 감독을 지칭하는 'head coach'라는 말이 야구에서도 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여 생기는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90년대 중후반부터 국내에서 메이저리그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통용되는 야구 용어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왔고, 적절치 못한 번역으로 인해 팬들이 야구를 즐기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는 일본식 야구 용어들의 범람에 비하면 차라리 가벼운 문제다.

우리나라에는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미국에서 생겨난 야구 용어들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경우가 많다. 우선 야구라는 말 자체도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다. 미국의 'baseball'을 일본인들은 'yakyu(野球)'로 불렀고, 우리는 野球를 소리가 나는 대로 읽은 것뿐이다. 또한, 우리가 직구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인들은 'fastball'이 휘지 않고 곧은 궤적을 그리며 포수의 미트까지 도달한다고 생각하여 이 공을 'straigh'’라고 불렀다. 우리는 'fastball' 이 아닌 'straight'를 받아들여 투수가 던지는 가장 빠른 공을 직구라고 일컫는다. 임창용의 직구(直球)가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지며 들어온다는 해설위원의 설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사진=김광현 ⓒ 강운 기자

기록, 통계 관련 용어에서도 일본식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눈에 띈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에 맞은 경우는 ‘hit by pitch'라고 말하는데, 일본에서는 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deadball'이라는 용어가 살아있고,(본래 '데드볼'은 미국야구의 시대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데, 추후에 기회가 생기면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는 이를 번역해 '사구(死球)'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 가지 더 꼽자면, 무심코 사용하는 방어율이라는 용어도 실은 대한해협을 건너온 것들 중 하나다. 방어율은 무분별한 일본식 용어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용어 자체에도 오류가 있다. 올해 방어율 1위에 오른 김광현의 방어율은 2.80이다.

율(率)이라는 것은 확률을 뜻하는데, 어떻게 확률이 1을 넘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사구(데드볼)는 '몸에 맞는 공(혹은 볼)'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으로 훌륭하게 대체가 되어 널리 쓰이고 있고, 더불어 방어율의 경우 최근에는 미국에서 쓰는 'ERA(Earned Run Average)'를 우리말로 바꾼 '평균자책점'이라는 용어가 병용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2.80이라는 숫자가 나타내는 뜻을 비교적 잘 통하게 하고 있어 점차 방어율이라는 용어를 밀어낼 전망이다.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사용되는 일본식 야구 용어들을 우리식으로 바꾸어 나가는 작업은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야구가 많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야구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들이 오로지 돔구장 신축이나 고교야구팀 창단과 같은 가시적인 부분에만 집중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야구뿐만 아니라 어떠한 분야든 내실 있는 발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균형 있는 성장이 그 바탕이 된다.

가까운 일본의 야구 환경이 부러운 것은 비단 돔구장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이 2번의 WBC 우승을 일궈내고 6개의 돔구장과 500여 개의 정식 야구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baseball'이라는 게임의 이름마저도 '야큐'로 바꿔 토착화시켰을 만큼 그들의 야구 사랑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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