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관심이 멀어진 노인들이 주인공이다. 우유배달을 하는 김만석과 파지를 줍는 송씨(송이뿐),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는 장군봉과 치매를 앓는 조순이의 로맨스를 담았다. 영화, 드라마에 이어 연극도 호응을 받고 있다.
박인환, 이순재, 손숙, 정영숙 등 베테랑 배우들이 열연 중이다.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남녀의 사랑과 우정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그려냈다. 이들은 실감 나는 연기로 객석을 웃음과 눈물로 물들인다.
2016년 연극 ‘아버지의 선물’ 이후 오랜만에 대학로 무대에 선 박인환과 만났다. 그는 “실망하지 않을 작품”이라며 고개를 끄떡였다.
“각색한 건데 연출이 좋아요. 무대 형상화도 잘 됐어요. 좋은 배우들이 호흡을 맞추고 있고요. 엉터리 공연도 많잖아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합격점을 받을 작품이에요. 실망 안 할 거예요. 주위에서도 재밌다, 울었다, 공감했다는 얘기를 하거든. 재미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많이 울고 많이 웃지. 누굴 생각하게 해주고. 노년층만 보는 게 아니라 젊은 친구들도 좋아해요. 때가 덜 묻어서, 순수해서 먼저 울기도 하고. (만석과 이뿐이) 헤어졌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고 여운을 줘요.”
이날 그는 코트와 머플러를 멋지게 차려입고 만석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겼다. 중후한 겉모습과 달리 인간적이고 소탈한 입담을 이어갔다. 지금까지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고 진솔한 생각을 밝혔다.
박인환은 중앙대학교 2학년 때인 1965년 드라마 '긴 귀항 항로‘로 데뷔했다. 연기 경력만 어느덧 54년이다.
“바람이 들어서 (웃음) 연극영화과를 갔어요. 그 당시에 연극영화과가 세 군데 밖에 없었지. 그 당시에도 영화, 무대가 참 멋지잖아요. 동경했다고 할까? 영화에 빠져 친구들 몇 명과 한 번 가보자 하고 우르르 몰려갔는데 운 좋게 나만 되고 다 떨어졌어요. 그때부터 고생 시작이지. 연극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교양과목, 일반 국문과, 역사, 철학 다 공부해야 하고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공부도 하고 배울 것도 많고. 연기가 너무 막연한 거예요. 누가 써줘야 하니까. 극단도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어요. 선배들 쫓아다니며 극단도 가고, 전단 뿌리면서 배웠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관록 있는 연기로 대중에게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베테랑 배우가 됐다.
“지금은 만족해요. 젊은 시절로 가라고 하면 너무 힘들어서 가고 싶지 않아요. 경제력 등 여러 가지로. 이 직업 자체가 무명은 힘들거든. 돈도 없고 써주지도 않고 막연해요.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제 등 연극계에서 주는 상을 받아도 TV에서 뭐 알아주나. 괄시받고 그 고비 넘기느라 힘들었지.
단역 하고 조연하다 베스트셀러극장, TV문학관에 출연하고. 옛날에는 특집이 많았어요. 연극을 그만큼 한 게 재산이 됐어요. ‘폭넓은 연기자’,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연기자’로 기사가 많이 났죠. 1년에 연극을 4, 5개씩 했으니까 밑거름이 됐어요. 교수도 하고 깡패도 하고 코미디, 또 단막극, 연속극을 하게 됐죠. 연속극을 하면 6개월 보장이 되는 거고. 주말 드라마도 들어오게 되고 CF도 들어와요. 보너스야, 이걸로 저축을 하는 거야. 그전에는 세금을 내봤으면 했어요. 돈이 있어야 내는 거니까. 후배나 동료들에게 소주 한 잔 살 수 있는 수입이 있었으면 했죠.”
누구나 인정하는 원로 배우지만, 뜻밖에 “난 재주가 없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하게 됐고 이 자리까지 왔어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조건이 좋은 사람도 많은데 난 재능이 없어요. 운이 좋았어요. 재주도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성실하고 열심히 했어요. 그거라도 안 하면 쫒아갈 수 없잖아. 마라톤 뛰듯이 대본을 항상 주머니에 꽂고 다니고 그렇게 해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수없이 연습했어요. 지금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대본을 보고 집에 가서 괜찮았나 돌아보고 그래요.”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이 생활화된 박인환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75살인 박인환은 여전히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천상 연기자다.
“난 어차피 재주도 없고 공부도 1등 해본 적 없고.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살다가는 배우로 기억됐으면 해요. 공부도, 달리기도 1등을 해본 적이 없어요. 특출난 애도 아니고 무난했어. 꾸준히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죠. 마라톤의 종점에 오진 않았잖아. 70세까지 할 줄 알았는데 (웃음) 선배들이 80대까지 연기하는 걸 보면 나도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고. 나이를 잊어버려요. 우스갯소리로 치매 예방 차원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죠. 대사를 외우면 치매도 안 걸릴 것 같아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윤다희 기자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