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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트라이커 박성호다

기사입력 2009.08.17 11:40 / 기사수정 2009.08.17 11:40

취재편집실 기자

[엑스포츠뉴스] [풋볼코리아닷컴=최영민] 나는 박성호다. 1982년 7월 27일생이다.

축구를 처음 만난 건 인천 만수초등학교 5학년 때다. 형이 먼저 축구를 시작하다 부상을 당하며 그만두게 되어 부모님의 반대가 상당히 심했다. 하지만, 부모님도 나의 의지를 꺾지는 못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스피드와 신체조건 하나는 자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바로 경기에 투입되었고, 또 두각을 나타냈다. 유소년 축구에서 가장 유리한 점은 타고난 체격과 스피드인데 나는 그 점을 모두 갖춘 선수였다.

모든 것이 힘들었던 중학교 시절, 체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힘든 훈련과정을 겪으며 몸만 피곤한 때를 보냈다. 힘들어서인지 경기에서도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화려했던 부평고 시절, 맴버들이 정말 화려했다. 이천수, 최태욱 등의 선배들과 김정우, 박병규, 이준기 등 동기생들의 실력이 엄청났다. 정말 잘하는 선수들만 모여서인지 중학교 때 사라졌던 축구에 대한 재미도 다시 생기더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입문했다. 대학에 가려고도 했지만, K-리그 팀 안양에서 마침 좋은 제의가 들어왔다. 하루빨리 경제적 독립을 하고 싶었던 나는 금전적인 제의에서 만족스러웠던 안양의 제안을 수용했다.

기회는 왔지만 그걸 살리지 못했던 안양에서의 1군 시절, 감독님이 기회를 많이 주셨지만 난 그걸 살리지 못했고 모든 경기가 부담되었던 것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2군에 내려와서 비로소 감독님이 왜 나를 믿었었고 자신감을 주셨는지 알았다. 2군에 있을 때 안양의 조광래 감독님은 “헤딩만 하지 말고 기술을 연마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말이 지금의 박성호를 만든 아주 ‘뼈있는 한마디’였다.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하고 부산으로 팀을 옮겼다. 부산에서 나는 고대하던 데뷔골을 넣었다. 프로 데뷔 6년 만에 드디어 골을 넣은 것이다. 팀의 승리를 이끈 골이었고, 내 골로 팀이 승리해 정말 기뻤다.

2007년, 다시 팀을 옮기며 대전으로 왔다. 2007년에 대전의 6강을 만든 선수들이 다들 팀을 떠나고 주축 선수들은 부상인 가운데 나의 역할이 많이 필요했다. 팀의 No.1 스트라이커가 되었지만, 골을 많이 넣는 선수는 아니어서 마음고생이 좀 있었다. 그리고 부산과 대전에서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정성훈과의 경쟁심리도 있었다. 부산으로 이적한 후 국가대표도 되었으니까 자극받는 것은 당연하지!

지난번 대구전 때, 2골을 넣고 자신감이 많이 살아났다. 지금 팀은 FA컵 4강에도 진출했고, 리그에서도 지는 경기가 거의 없다. 난 우승을 하고 싶다. FA컵에서 이제 2경기만 이기면 우승이다. 리그에서 졌던 수원을 다시 만나서 꼭 이기고 싶다. 내가 골을 넣으면 더 좋겠지?

최영민(ymchoi@footballcorea.com) / 사진 제공 =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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