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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속 시원하면서도 걱정"...임경섭, 망막색소변성증 직접 밝혔다

기사입력 2018.09.13 19:47

유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유은영 기자] 밴드 장미여관 임경섭이 4급 시각장애인이라고 밝혔다.

임경섭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잘 안 보여서 그랬다"고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임경섭은 "시각 모든 방향에서 10도 이하의 시각을 가진 시각장애인"이라면서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경섭은 "그간 심심치 않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장미여관 드러머가 인사를 해도 잘 안 받더라. 너무 차갑더라. 아는 척을 해도 잘 모르는 듯 무시를 하더라, 특급연예인 다 됐더라,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라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 임경섭은 "별것도 아닌 개인 속사정이지만 모두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따라붙는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임경섭 소속사 록스타뮤직앤라이브 관계자는 엑스포츠뉴스에 임경섭이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한 장애 4급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향후 활동은 계속 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갑자기 시각에 이상이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장미여관 활동은 꾸준히 할 계획이다. 최근 지인들에게 자신의 병을 밝히고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임경섭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

밴드 장미여관의 임경섭입니다.
저의 얘기를 들어주시길 부탁합니다.

잘 안 보여서 그랬습니다.

오랜만에 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쓰는 글은 저에게 몇 없는 친한 지인들 또는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저의 개인적인 사연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 이 이야기를 하려고 용기를 낼 자신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시각 모든 방향에서 10도 이하의 시각을 가진 시각장애인입니다.
저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시각을 잃은 유명 개그맨 출신 가수나 어느 걸그룹 멤버의 아버님께서도 가지고 있는 증상으로서 텔레비전에서도 몇 번 소개가 되었지요. 시력이 점점 떨어지다가 끝내는 시력을 완전히 잃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병입니다. 
발병 후 1년여 년 만에 곧장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기 전까지 증상의 발현 속도가 계속되는 운 좋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망막변성증’ 환자들은 사람마다 다른 진행, 다른 증상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환자가 100명이라면 100개의 서로 다른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주치의의 설명입니다.
그러니 치료가 어려운 데다 현재로서는 완치될 수 있는 치료법 자체가 없습니다. 불치병이지요. 그래서 환자와 그 가족들은 언제 시각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채 사실상 시한부나 다름없는 불안한 나날을 살고 있습니다.

제 눈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던 때가 중학교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빛이 희미한 저녁에 농구를 하는데 패스를 받지 못하고 얼굴에 맞아 코피가 터지는 일이 잦곤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하굣길도 친구들과는 달랐습니다. 골목길이 힘들었습니다. 친구들은 불편 없이 가는데 나만 벽을 짚어야만 갈 수 있어 내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지요. 
21살 때였습니다. 한참 활발히 밴드 생활을 하던 때 군 입대 문제 때문에 대학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야맹증에 대한 진단서가 필요하여서 방문을 하였었는데 그러나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야맹증에 대한 진단서가 아닌 제가 곧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사실과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며 끝내는 영영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결과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예상 못 하고 홀로 병원을 찾았다가 검사하기 위해 눈에 넣는 약이 5시간 정도 시야가 흐린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택시를 탈 여유는 없고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버스 번호가 몇 번인지, 주머니 속 동전이 500원짜리 인지 100원짜리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서 처음 보는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공교롭게도 그 때문에 군대 면제 판정을 받은 저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며 매일매일 담벼락에 친구들에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느라 주먹은 늘 가죽이 벗겨져 피딱지가 앉아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면 경찰서이기 일쑤였고 4차선 도로 중앙선에서 쓰러져 있질 않나 목숨을 건진 것만도 돌이켜 보면 무척 놀라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현재의 아내를 만나기전까지 10여년 동안 망나니처럼 살았습니다. 저는 초고휘도 손전등을 24시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낮에도 밤에도 말이지요. 어딜 갈 때마다 보조 손전등까지 두 개를 들고 다닙니다. 혹시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발을 헛디뎌 큰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밴드 장미여관의 드럼 연주자입니다. 장미여관은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전국 곳곳에서 불러주시는 밴드입니다. 무대 뒤는 항상 어두운 상태입니다. 특히 야외무대는 더 어둡고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많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제가 자주 뵈었던 음악관계자님들이나 무대 스태프님들은 제가 항상 손전등을 비추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계단은 밝아도 어두워도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저의 눈 상태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손전등에 의존해 오직 느낌으로만 첫발을 디딜 수밖에 없습니다. 
장미여관은 늘 실제 라이브 연주를 하는 밴드이기 때문에 일반 솔로 가수와는 다르게 악기 세팅 시간이 걸립니다. 드럼 같은 경우 여러 팀이 같이 사용하면 세팅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연주자마다 신체조건이 다르기에 최소 6개 이상의 스탠드 높이를 맞추어야지만 무리 없이 연주를 할 수 있답니다. 연주자마다 팔다리 길이가 다르고 좋아하는 높이를 일일이 조정해 주어야 하니까요. 눈이 잘 보인다면 이런 작업이 크게 무리는 없겠지만 저같이 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세팅 시간이 배로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 손으로 손전등을 비춰가면서 스탠드 나사를 풀고 조이고 세팅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는 현장 상황에 맞춰 제대로 세팅을 하지 못 한 채 곧장 연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 꽤 많이 벌어집니다. 그런 날이면 제 몸에 맞지 않는 드럼 세팅을 견디지 못해 양손이 찢어질 때가 많습니다. 시야가 좁으니 내가 몸으로 알고 있는 그 위치가 아니면 쇠로 된 심벌이며 드럼 테두리에 손가락이 찍히고 손목이 난도질 됩니다.
이런 상황과 마주치면 한편으로는 멤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가 오히려 배려를 해주지 않는 것이 얄미울 때도 화가나 있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현장의 속도에 맞추지 못해 늘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정작 제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일반인에 비해 시야각이 아주 좁은 편이고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에서는 물체가 어떤 것인지 거의 구별하지 못합니다. 안경이나 보조 장비조차 의학적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어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니 무대 뒤에 있는 스태프들의 얼굴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장미여관은 방송 및 기타 무대에 가수로서 출연하는 입장이니 무대 뒤에서 많은 관계자들이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그걸 저는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소리로 구분합니다. 멤버들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면 같이 인사합니다. 우리 팀이 인사하는 분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꾸벅 머리만 숙이는 셈이지요. 내가 인사한 사람이 혹은 제게 인사를 건넨 분이 피디님인지 작가님인지 후배님인지 선배님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얼굴에 후레쉬를 비추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지요.

그간 심심치 않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미여관 드러머가 인사를 해도 잘 안 받더라. 너무 차갑더라. 아는 척을 해도 잘 모르는 듯 무시를 하더라, 특급연예인 다 됐더라,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 말이지요. 
얼마 전 지방 축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음악프로그램에 종종 같이 출연하면서 저희 팀과 잘 지내는 가수인데 우리 바로 앞 순서였습니다. 더운 날씨에 무대를 마치고 숨을 헐떡이면서 수고하시라며 내려와 저에게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양손을 올렸는데 저는 보이질 않으니 수고하셨다고 목 인사를 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분은 어색하게 손을 계속 들고 있는 상황이고 뒤늦게 뭔가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희미하게 팔을 올린 게 보여서 다시 손을 잡아서 수고하셨다며 인사를 했습니다. 서로가 어색해서 우물쭈물하다가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그 뒤 최근 한 음악프로에서 같이 출연하여서 쉬는 시간에 그때 일을 사실대로 말해줬습니다. 제가 어두운 곳에서는 눈이 잘 보이질 않아 실수를 했던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라고. 그 분은 괜찮다면서 자기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다독여 주셨습니다. 뒤늦게나마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요. 이렇게 사실을 말씀드리면 나은 편이지만 이 경우처럼 곧장 오해를 풀지 않으면 저는 같은 분을 볼 때마다 나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불편한 마음이 가득한 상태로 지나가 버리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정말 많았지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한 적은 몇 번 되지 않았습니다. 장미여관으로 지난 6여 년간 활동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먼저 다가가기 보단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였습니다. 언젠가는 공개적으로 꼭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몇 년 전에는 제가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결정을 내렸으나 장미여관의 팀의 이미지가 ‘어렵고 힘들게 시작해서 성공한 밴드’, ‘연예인 같지 않고 친근한 동네 형, 오빠 같은 밴드’,이런 느낌의 밴드인데 ‘시각장애인 멤버가 있고 언제 눈이 멀지 모르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불쌍한 밴드로 비추어 질수 있는게 과연 팀의 도움이 될까? 라는 주위의 말을 듣고 저 또한 그리 생각이 되어 또다시 얘기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눈만 아니라면..
차라리 다른 신체 일부였다면. 더 빨리 내 몸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언제까지 앞을 볼 수 있을지. 다음 달이 될 수도 있고 내 년일 수도 있겠지요. 지금으로선 현대 의학의 힘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다리, 팔에 알 수 없는 멍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여기저기 저도 모르는 사이 무엇인가에 많이 부딪혔다는 거지요. 부딪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점점 상태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정확한 검진을 통해야겠지만 의사 앞에 서기가 두렵습니다. 또다시 대인기피증이 덩달아 찾아와 집에만 있게 될 것이며 우울증, 신경안정제를 털어 넣고서야 잠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신이 내린 환자라고 예전 주치의 선생이 농담조로 말을 해주셨습니다. 진행이 정말 느린 편인 데다가 관리만 잘하시면 오래 앞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주셨었지요. 물론 듣기 좋은 이야기이긴 합니다. 루테인 먹고 비타민 에이를 꾸준히 복용하고 술 담배를 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줄여라.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장 위험하니까 차라리 술 담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rp협회 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질병을 가진 분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시는 곳입니다. 유명한 걸그룹의 아버님이 저와 같은 병으로 회장으로 계시구요. 2012년 탑밴드2에 저희팀이 예선 진출을 하였을 때 여기 rp협회 게시판에 글을 썼었습니다. 저도 같은 rp환자라고 그랬었고 저희 팀이 이슈가 되고나서 축하한다며 rp협회 어느 분께서 저에게 전화가 오셨습니다. 저는 당황하여서 상대방이 뭐라 말씀하시기도 전에 저는 저의 눈 얘기를 할 수가 없다고 단칼에 통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겁이 났었고 결혼한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고 처가에서는 저의 병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그리 매몰차게 rp협회 분께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뒤 활동할 때 마다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도움을 주지 못하는거에 대하여 미안하였습니다. 정작 저는 그 협회를 통하여 많은 소식과 도움을 받고 있는데 말이지요. 저는 그렇게 비겁하였습니다.

별것도 아닌 개인 속사정이지만 모두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따라붙습니다. 장모님이 절 참 좋아하시는데 결혼할 때 아내가 이 사실을 알리지 말자고...아직 시력이 남아있으니 굳이 어른들께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동안 제 사정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장모님도 처가 식구들에게도,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지 큰 걱정입니다.
미안합니다.

잘 안 보여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엑스포츠뉴스 DB

유은영 기자 y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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