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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드컵] 미국, 이래서 결승에 갈 수 있었다

기사입력 2009.06.26 04:52 / 기사수정 2009.06.26 04:52

강대호 기자

[엑스포츠뉴스=강대호 기자] 6월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룸폰테인의 프리스테이트경기장(48,000명 수용규모)에서 열린 '2009 컨페드레이션스컵'(이하 대륙간컵) 준결승 스페인(1위)와 미국(14위)의 경기는 미국의 2-0 완승이란 의외의 결과를 도출했다. (블룸폰테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소토족의 언어로는 망가웅이라 한다. 블룸폰테인은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지배했던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도시명이다.)

물론 2007년 북중미선수권 우승팀인 미국이 승리를 꿈꾸지 못할 정도의 약팀은 아니다. 그러나 조별리그 B조에서 1승 2패로 다득점을 따져 4강에 합류한 미국과 A조 3전 전승 8득점 무실점으로 쾌속 질주한 스페인의 대결은 후자의 우세가 당연히 점쳐졌다.

게다가 스페인은 작년 유럽선수권 우승팀이자 2008년 7월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발표순위 1위를 고수하는 세계 최강팀이다. 2006년 11월 15일 루마니아(28위)와의 홈 평가전에서 0-1로 패하고서 미국에 지기 전까지 35전 32승 3무 73득점 11실점 경기당 2.09득점 0.31실점이란 가공할 무패행진을 벌였다.

따라서 각국언론이 미국의 2-0 승리를 대이변으로 보도한 것은 결코 미국의 전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스페인의 패배가 그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스페인의 패인이 아닌 미국의 승인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가 적은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 14위 미국은 단지 우연과 기적만으로 스페인을 꺾을 만큼 허약하고 무능한 팀이 아니다. 물론 행운이 있었기에 점유율 44%-56%, 유효 슛 2-8의 열세에도 승리할 수 있었지만, 승리의 비결로 꼽을만한 몇 가지는 분명히 있다.

미국은 각 2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측면 미드필더를 둔 4-2-2-2 대형으로 경기에 임했다. 스페인은 4-1-2-1-2 대형이었는데 이를 세분하면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2명의 측면 미드필더, 1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볼 수 있는 형태였다.

1. 4백 전진과 사비 알론소 포위

스페인은 경기 시작 27분 만에 미국 공격수 17-조지 앨티도어(비야레알CF, 만 19세)에게 실점을 한다. 앨티도어는 2008/09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1부리그) 비야레알에서 리그 6경기 1골에 그쳤고, 후반기 2부리그의 세레스CD로 임대됐으나 데뷔전도 치르지 못하고 올해 4월 16일 수술을 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미국대표팀에서 앨티도어는 스페인전까지 A매치 15경기 7골을 기록 중인 유망한 공격수다. 앨티도어의 득점은 스페인 1, 2부리그에서 모두 적응에 실패한 설움을 날려버리는 것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었던 안정환(다롄스더, 만 33세)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전반 16분부터 30분 사이 스페인의 선수 배치는 측면 수비수의 상당한 전진, 경기 시작 당시 오른쪽 미드필더였던 10-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널FC, 만 22세)의 중앙 이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좌우 수비수는 수비형 미드필더 14-사비 알론소(리버풀FC, 만 27세)보다 더 전진했고 본래 중앙 미드필더인 파브레가스는 자연스럽게 중원으로 진출, 8-사비(FC바르셀로나, 만 29세)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

이에 맞서 한 골을 넣은 미국은 4백의 전진 배치와 알론소 주변에 4명의 미드필더가 모두 집결한 특색을 보였다. 스페인 중앙 수비수 2명이 상대 공격수와 근거리에 배치된 것과 견줘 미국 4백은 스페인 공격수 2인을 뒤에 두고 눈에 띌 정도로 전진하여 공격과 간격을 좁혔다.

알론소 주변에 미국 미드필더 전원이 모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론소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경기 운영을 상당 부분 담당하는 것을 장기로 하는 선수다. 이는 수비진 바로 앞에서 수비를 전문으로 하는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 감독 밥 브래들리(만 51세)는 어색한 옷을 입고 있던 알론소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그럼에도, 알론소는 비록 팀은 졌지만, 미국전에서 제 몫을 충분히 했다. 이동거리 11,081미터는 스페인 출전선수 평균 8,122미터를 훌쩍 넘는 팀 1위이자 전체 3위였고 패스성공 73회와 정확도 85%는 각각 스페인 미드필더 2위와 1위였다.

2. 알론소 포위 효과 = 짧은 패스 시도 최소화

그렇다면, 미국이 미드필더 전원을 동원하여 알론소를 압박한 효과는 없던 걸까? 수비진 바로 앞의 알론소는 수비와 미드필더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전에서 알론소의 짧은 패스 7회(100% 성공)는 팀원 중 교체 투입 2인을 제외하면 가장 적은 수치다.

미국은 알론소의 단거리 패스 성공률을 낮추거나 중장거리 패스를 막진 못했지만 짧은 패스의 시도 자체를 최대한 줄였다. 선수 전원의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은 스페인이 수비진부터 공격진까지 단거리 패스의 연속으로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간다면 이를 막기란 매우 어렵다.

‘수비·미드필더 연결고리’ 알론소의 짧은 패스 시도를 최소화하는 것. 브래들리가 미드필더 전원을 동원하여 알론소를 압박하여 얻은 성과는 바로 이것이었다.

(전반 16-30분 사이 스페인 중앙 수비 2인은 미국 공격수 둘 중 앨티도어와 가까운 곳에 몰려 있었다. 비록 스페인 무대 적응에 실패한 10대 청년이라도 아무래도 자국에서 활약하는 선수에게 신경이 더 쓰였을까? 그럼에도, 실점을 한 것이 재밌다.)

3. 상대 교체에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대처

스페인 감독 비센테 델보스케(만 58세)는 68분 파브레가스를 빼고 미드필더 20-산티 카소를라(비야레알, 만 24세)를 투입한다. 공격형 미드필더도 가능한 카소를라지만 교체로 들어간 이유는 오른쪽 미드필더로 뛰기 위함이었다. 파브레가스는 경기 시작 당시에만 오른쪽 미드필더에 있었을 뿐, 교체되기 전까지 중앙 미드필더로 움직였다.

스페인이 수비형 미드필더 1·중앙 미드필더 2·왼쪽 미드필더 1에서 수비형 1·중앙 1·측면 2로 중원 구성을 바꾸자 브래들리는 1분 후에 공격수 9-찰리 데이비스(함마르뷔IF, 만 23세)를 빼고 미드필더 22-베니 페일헤이버(AGF, 만 24세)를 집어넣었다. 작년부터 덴마크 1부리그에서 활약 중인 페일헤이버는 중앙/공격형 미드필더가 주 위치지만 스페인전에서 받은 임무는 왼쪽 미드필더였다.

한 점을 앞선 상황에서 공격수를 빼고 미드필더를 넣는 것은 지키기 위한 교체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61분부터 75분까지 미국의 수비진은 여전히 상대 공격 2인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전진하여 공수간격을 좁혔다.

이 시간대에도 미국은 알론소 주변에 미드필더 3명을 두어 압박했다. 미국은 기본 전략은 유지하면서도 카소를라가 들어오면서 오른쪽 공략을 모색하는 스페인에 맞서 페일헤이버를 왼쪽 미드필더로 투입하여 이를 견제한 것이다.

페일헤이버의 투입은 그때까지 왼쪽 미드필더로 뛰던 8-클린트 뎀시(풀럼FC, 만 26세)가 중앙으로 이동하는 결과를 낳았다. 앞 문장에서 언급한 ‘알론소 압박 3인’에 뎀시도 포함되는데 측면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뎀시의 중앙이동은 데이비스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직접 공격력을 유지하는 목적이었다.

페일헤이버의 투입은 상대 오른쪽 공격에 대한 견제가 목적이었다. 이에 따른 뎀시의 중앙 이동은 알론소에 대한 압박 강도를 유지하면서 공격수가 한 명 적어진 단점을 줄이려 했던 것이다.

55번째 A매치를 소화하던 뎀시가 74분 자신의 성인대표팀 15호 골을 넣은 것은 페일헤이버의 투입으로 중앙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실현되기 어려웠다. 물론 브래들리가 여기까지 내다보고 페일헤이버를 투입하는 신들린 기용을 했다고 보는 것은 억측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델보스케가 카소를라를 투입하여 오른쪽 공격을 강화하자 1분 만에 중앙/공격형 미드필더 요원 페일헤이버에게 상대 측면 견제를 명하고 공격수도 가능한 뎀시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는 대응이 나온 것은 감독의 역량을 극찬하기에 충분하다.

4. 체력 우위와 끝까지 유지된 공수간격

스페인에 2골 차로 앞선 미국 수비진이 76분부터 경기 종료까지도 전진했다면 그건 오히려 만용이라는 지적을 받았을 것이다. 브래들리는 상대 공격수 2인과 근접한 곳으로 수비진을 물렸다.

만약 당시 미국 선수 대부분의 체력이 소진됐다면 수비진의 후진과 함께 공수간격은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수비와 공격의 간격은 오히려 이 시간대에 가장 좁게 유지됐다. 탁월한 조직력과 체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브래들리는 83분 앨티도어 대신 공격수 4-코너 케이시(콜로라도 라피즈, 만 27세), 88분 뎀시를 빼고 수비수 2-조너선 본스테인(치바스 USA, 만 24세)를 넣었다. 2골을 앞선 상황에서 공격수 앨티도어 대신 역시 공격수인 케이시가 들어간 것도 이례적이지만 수비수 본스테인이 후방이 아닌 전방에 있는 것이 주는 신선함보다는 덜하다.

본스테인은 상대 오른쪽 미드필더 부근에 배치됐는데 이는 경기 도중 투입되어 다른 상대보다 체력이 좋은 카소를라의 공격을 견제하기 위함이라 해석할 수 있다. 본스테인은 2005년까지 미국대학 무대에서 공격수로 뛰었으나 미국프로축구(MLS)에 입문하면서 왼쪽 수비수로 변신했는데 이를 주도한 이가 바로 당시 치바스 감독인 브래들리였다.

따라서 경기 시작 당시 왼쪽 미드필더였으며 도중에 중앙으로 이동한 뎀시 대신 본스테인이 투입된 것은 1. 측면 수비 요원으로서 상대 오른쪽 공격에 대한 견제, 2. 공격수 출신으로 역습에 가담할 수 있는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이다.

이날 미국의 1인당 이동거리는 7,898미터로 스페인 8,122미터의 97%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는 스페인이 교체한도 3명을 다 사용하지 않고 2명만을 투입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반대로 스페인의 이동거리 합계는 105,590미터로 미국 110,573미터의 95% 정도다. 개인별로도 이동거리 10,000미터 이상 선수가 미국은 6명이지만 스페인은 3명에 불과하다.

미국은 패스정확도가 55%에 그쳐 스페인의 78%와 비교될 정도로 기술적으로는 열세였다. 그러나 상대에 따른 적절한 전술과 교체 투입, 탄탄한 조직력과 체력의 우위로 세계최강을 격파했다.

유효 슛 2회가 2골로 연결된 것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페인전에서 보여준 미국의 여러 장점은 2010년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한국이 참고하기에 충분하다. 앨티도어의 골이 안정환의 그것과 유사하듯이 2002년 월드컵 4강 당시 한국은 이날 미국과 어딘가 많이 비슷했다.

[관련 기사] ▶ '5대륙'에서 모인 컨페드컵 베스트11은?  

[사진 (C) 2009 대륙간컵 공식홈페이지]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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