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6.18 16:01 / 기사수정 2009.06.18 16:01
애초 복병 북한을 비롯해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과 한 조에 편성되면서 험난한 본선 길이 예고되었지만 허정무호는 지지 않는 축구를 선보이며 4승4무 무패를 기록하며 비교적 손쉽게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본선 진출을 확정하고도 외국인 감독 부임설이 나돌 정도로 확고한 신임을 받지 못했던 허정무 감독은 "남아공 월드컵에 축구 인생이 걸겠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나서는 한편 예전의 '진돗개'로 불리며 호령했던 모습과는 달리 선수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며 선수들과 동화하려는 노력을 거듭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 20년 만의 무패기록으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의 대업을 달성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 4강 달성으로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본선진출로는 부족하다. 일 년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을 철저히 준비해 염원하던 '원정 16강'을 이뤄야만 한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성공을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재까지의 행보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허정무호의 출범을 알렸던 칠레와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한 이후 11승13무로 24경기째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만 상대했기 때문에 평가절하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최종 예선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무패로 통과한 것은 분명히 대단한 업적이다.
또한, 무패행진의 이면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 감춰진 면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동안 대표팀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부한 측면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전방에 공격수를 한 명 배치하고 두 명의 측면 공격수를 두는 전술을 주로 사용해왔다. 물론 이상적인 투톱의 조화를 찾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은 이근호를 과감히 기용하며 정성훈과 박주영을 차례로 시험하며 이상적인 투톱 찾기에 골몰했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험을 거듭한 끝에 이근호-박주영의 '동갑내기 듀오'를 탄생시켰다. 아직까지는 이들이 보여준 결과물은 미미하지만 점차 색깔이 들어맞고 있다는 느낌은 그동안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수긍이 갈 것이다.
단순히 전술의 변화를 주었다고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우리보다 강팀을 상대하는 월드컵에서 상대에 따라 여러 가지 전술로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산소 탱크'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임한 것도 다소 파격적이었다. 그동안 대표팀의 주장을 맡은 선수들은 홍명보, 이운재, 김남일 등 카리스마가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세계적인 명문팀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머쥔 브라질 대표팀의 둥가를 비롯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로이 킨, 아스널의 비에이라, 에펜베르그 등 한 성질 하는 선수들이 주로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은 이들과는 다른 캐릭터인 '순둥이'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택했고 박지성은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팀을 이끌며 대표팀의 성공 가도에 앞장서 허정무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어린 선수들을 과감히 기용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선수 보는 눈이 탁월한 허정무 감독은 그저 어린 유망주일 뿐이었던 이청용과 기성용을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주축으로 성장시켰다.
지난 2000년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던 박지성의 무한한 잠재력을 눈여겨봐 대표팀에 깜짝 발탁하며 주위를 놀라게 했던 허정무 감독의 안목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들어맞았고 이제 고작 스물을 넘긴 '쌍용' 이청용과 기성용이 없는 대표팀은 허전을 넘어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외국인 감독 그늘에서 알게 모르게 설움을 느꼈을 허정무 감독의 성공시대는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라는 후반전을 향해 일 년이라는 긴 하프 타임에 들어갔다.
이 휴식기간에도 할 일은 많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선수들의 실험, 전술의 다양성, 축구강국과의 평가전을 통해 조직력 향상 등 밀린 숙제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숙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멍이 들고 피가 날수도 있다. 모두가 염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때로는 질책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자비한 비난이면 곤란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 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허정무 감독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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