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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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김연아의 눈물은 그동안 흘린 눈물의 결정체

기사입력 2009.03.29 13:20 / 기사수정 2009.03.29 13:20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피겨 현장을 꾸준히 다니면서 김연아(19, 고려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은 한결같이 김연아에 대해 '매우 특별한 아이'다. 혹은 '어릴 적부터 비범함이 넘쳤다. 그러나 빙판 밖에서는 어느 소녀들과 다름없었다"라는 소리가 대부분이었죠.

어느 한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을 향해 '신의 은총'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김연아가 어머니인 박미희씨의 손을 잡고 과천시 시설공단 아이스링크를 처음 찾았을 때가 7살 때였습니다. 그저 피겨를 재미있게 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어린 김연아는 너무나 진지했었고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 보였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특별한 재능이 보였던 김연아는 10대 초반에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모두 자기의 것으로 완성했습니다. 그 정도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것이 드러난 셈이죠.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당시 김연아의 지도자였던 신혜숙 코치는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했다고 밝혔습니다.

신 코치는 "연아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을 썩히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데 연아는 다행스럽게도 그 길을 피해갔다. 재능도 가장 좋고 경기에 출전해서도 1등만 하는 아이가 훈련도 지독하게 해냈다. 지금은 그때 흘린 땀을 지금 보상을 받는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신이 내린 특별한 재능에 안주하는 이들을 우리는 스포츠계에서 흔치 않게 봐왔었습니다. 실력은 좋지만 인성에 문제가 있어 퇴보된 선수와 목표와 열정이 결여돼 쓸쓸하게 퇴장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연아가 '피겨 여왕'에 등극할 수 있었던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과제를 달성하고 나면 바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목표를 찾아나서는 근면함이 오늘날의 김연아를 완성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김연아가 국내무대를 휩쓸고 나서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는 2002년부터였습니다. 12세 때 참가한 슬로베니아 트리글라프트로피 대회 노비스 부분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주니어 대회를 거치면서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졌고 노력도 지독하게 하는 선수였지만 김연아가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느냐의 여부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연아를 괴롭힌 큰 이유는 '부상'이었습니다. 피겨 전용링크가 한 개도 없는 국내 환경에서는 김연아의 재능을 업그레이드시킬 엔진이 전혀 없었습니다.

난방도 안 되는 추운 곳에서 연습을 해왔던 것이 부상의 화근이 됐습니다. 또한, 빙판에 들어서기 전에 갖추어야 할 체계적인 트레이닝 방법과 체력 훈련에 대한 부분도 국내에서는 미흡했었죠. 김연아는 결국, 열악한 국내 환경이 남긴 지뢰를 피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김연아의 실력과 연기를 봤을 때,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가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컸습니다. 아직 어리고 국제대회 경험이 적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김연아에겐 큰 무기가 있었죠. 피겨의 전설인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새로운 지도자로 들어왔다는 점과 피겨 역사상 최고의 쇼트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록산느의 탱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탐 딕슨이 완성하고 김연아의 주니어 시절 코치인 김세열 코치가 수정한 이 프로그램은 현재 김연아의 창조적인 안무를 완성하고 있는 데이비드 윌슨이 최종 수정을 했습니다. 김연아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강렬하고 다이내믹한 표정연기와 손동작은 이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녹아있었습니다. 만약 다른 선수들이 록산느의 탱고를 연기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김연아만을 위해 창조된 프로그램입니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 데뷔 무대에서 세계 피겨 사의 새로운 획을 그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는 아사다 마오(19, 일본)라는 인식이 강했지요. 주니어 시절에 아사다 마오가 워낙 두각을 나타냈던 점도 있었지만 세계 피겨 시장에서 막대한 자본력과 언론 플레이를 동원하는 일본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겨의 변방국에서 온 낯선 선수가 모든 이들을 감탄하게 하였습니다. 카타리나 비트와 미셀 콴도 할 수 없었던 다이내믹한 동작과 표정연기, 그리고 연기의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부드러운 움직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요. 게다가 점프의 기술을 강조한 일본 선수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점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여자 선수로서 그 정도의 비거리를 보이는 점프는 이전과 현재에 찾아보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환상적인 연기를 펼친 선수가 부상 중이라는 점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김연아는 부상으로 인해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보이면서 동메달에 그쳤지만 세계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각인시켰습니다.

김연아가 출전한 두 번째 세계선수권 대회인 2009 예테보리 세계선수권은 출전 여부가 불투명할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순위를 떠나서 대회를 무사히 치르고 귀국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지요. 열악한 환경과 피겨의 불모지에서 오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낸 김연아와 어머니인 박미희 씨는 또 한 번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김연아는 그 가운데서도 선전해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비록 쇼트프로그램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석연찮은 판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때도 부상만 없었더라면 김연아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을 것입니다.

김연아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브라이언 오서에게 값진 선물을 안겼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김연아 자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오서 코치의 몫이기도 합니다. 항상 친절하고 올바른 안내자 역할을 한 오서 코치는 김연아가 완성한 기술을 다듬고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했습니다.

또한, 김연아의 곁에서 평생 코치이자 매니저 노릇을 하고 있는 박미희 씨의 공로도 빠트릴 수 없지요. 김연아와 박미희 씨가 함께 걸어온 길은 매우 험난했습니다. 그러나 모녀가 흘린 땀과 눈물이 다리가 되어 더 좋은 세상으로 안내를 했지요.

김연아는 지난 두 시즌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철저한 준비를 했습니다. 우선적으로 몸 관리에 성공했다는 점이 최고의 성과였습니다. 기술과 표현력에서 절정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김연아에게 최고의 적인 아사다 마오가 아닌 '부상'입니다. 2008~2009시즌을 시작하면서 김연아는 가장 고마운 선물인 '건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김연아는 그랑프리 시리즈 1차 대회인 'Skate America'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3차 대회인 'Cup of China'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비록 국내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는 국내에서 치러진다는 심적인 부담감과 가벼운 몸살 때문에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2009년 2월 초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4대륙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2008~2009시즌을 총정리 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해서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수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가면서 최고의 자리에 도달한 김연아는 시상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그토록 담담하고 당차기 그지없는 김연아가 시상대 위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상대 위에서 태극기를 바라볼 때, 그동안 고생했던 장면들이 스크랩처럼 지나갔을 것입니다. 김연아가 시상대 위에서 흘린 눈물은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쏟은 눈물의 '결정체'였습니다.

[사진 = 김연아 (c) 엑스포츠뉴스DB 강운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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