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3.22 18:38 / 기사수정 2009.03.22 18:38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대표팀의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베네수엘라와의 4강전을 두고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자멸했다는 점과 한국팀이 잘한 것이라고요. 물론, 이 두 가지 의견은 모두 맞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결정적인 실책을 범한 베네수엘라는 흔들렸고 한국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 대신, 한국과 대결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원투펀치인 요한 산타나(뉴욕 메츠)와 카르롤스 잠브라노(시카고 컵스)를 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투수는 이번 WBC 대회에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자랑하는 펠릭스 '킹' 에르난데스(시애틀 매리너스)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뒤를 받쳐줄 카를로스 실바(시애틀 매리너스)도 대기 중이었죠. 만약, 베네수엘라가 한국전에 무게감을 두었다면 실바 대신 '킹' 에르난데스를 선발투수로 내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르난데스는 결승전에 마운드에 올라설 예정이었고 실바가 준결승전의 책임자로 선정됐지요.
한국 타자들이 불 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정통파 투수들보다는 기교파 투수들에게 약하다는 점이 실바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또한, 실바는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의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이번 WBC 대회에서는 좋은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한국을 무난하게 잡고 결승전에 모든 것을 투자하자는 것이 베네수엘라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승전 대비를 위해 소홀했던 준결승전에서 베네수엘라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한국 팀이 가진 '토털 베이스볼'에 패하고 만 것이죠. '빅볼'과 '스볼볼' 그리고 환상적인 투수 계투가 가능한 것은 한국 대표팀의 구성력에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테이블 세터진,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중심타선
한국 타선의 최대 강점은 출루율이 높고 주루 플레이가 뛰어난 1, 2번 타자에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1번 타자로 주목받아온 이종욱(30, 두산 베어스)은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팀의 선두 타자 역할을 톡톡히 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면서 이종욱보다 더 뛰어난 야구 센스를 보여준 이용규(25, KIA)가 주전 1번 타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용규는 독특한 타격 폼과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뒤를 받쳐주는 정근우(27, SK 와이번스) 역시 뛰어난 야구 센스로 한국 타선의 포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21세 불과한 김현수(21, 두산 베어스)는 이번 대회에서 '안타제조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실행해주고 있습니다. 밋밋한 볼을 골라내 정확하게 받아치는 타법을 구사하고 있는 김현수는 '붙박이 3번 타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국제대회에서 검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김태균(27, 한화 이글스)은 국내 리그에서 보여준 '무결점'의 실력을 세계무대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현재까지 3개의 홈런과 11개의 타점으로 이 부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김태균은 빠른 직구는 물론, 일본과 베네수엘라 투수들이 던지는 변화구도 곧잘 쳐내고 있습니다. 부상의 문제만 극복한다면 김태균은 일본 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범호(28, 한화 이글스)를 필두로 한 하위타선의 선전도 한국팀의 상승세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팀에서 유일한 메이저리거인 추신수(27,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그동안의 부진을 털고 통렬한 스리런 홈런을 작렬시켰습니다.
수비진을 본다면 '세계 최고의 수비수'인 박진만(33, 삼성 라이온스)이 빠진 유격수 자리가 가장 취약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박기혁(28, 롯데 자이언츠)이 베네수엘라 전에서 다이내믹함이 넘치는 수비를 보여줬습니다. 1라운드에서 아쉬운 수비를 보여준 박기혁이었지만 탄탄한 조화로 빚어진 대표팀에 융화되면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주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구안을 가진 한국 타자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야구가 지니는 많은 우수성을 여러 차례 검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타자들이 지니는 선구안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어지간한 유인구는 한국 타자들에게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대회를 통해 여실히 증명됐습니다.
가장 까다롭다는 일본 투수들의 낙차 큰 볼과 포크 볼, 그리고 싱커와 슬라이더 등이 한국 타자들에겐 위협적이지 못했습니다. 국내 투수들의 볼 배합이 예전보다 다양해진 점도 선구안을 키우는 이유가 됐지요. 여기에 코칭스태프들의 정확한 분석이 투수들의 패턴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한국 타자들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자신감이 넘쳐 있었습니다. 상대 투수에 대한 볼 배급을 파악하고 있고 볼을 끝까지 볼 수 있는 선구안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 볼넷을 최대한 많이 골라내거나 정면 승부를 유도해 안타를 때려내는 기교는 미국과 일본 타자들도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기민한 주룰 플레이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습적인 작전은 계속 성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박찬호(36,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빠졌지만 한국 투수진은 다양한 색깔을 지닌 투수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좌완 정통파 투수를 비롯해 우완 강속구 투수, 그리고 제구력을 앞세운 기교파 투수와 강속구를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까지 지니고 있었지요. 이러한 투수 구성의 핵심은 절묘한 계투 전략입니다.
김인식 감독은 한국 투수진이 갖춘 구성의 장점을 십분 살려냈습니다. 상대 타자들이 체인지 업과 슬라이더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150km에 가까운 볼을 던지는 정현욱(31, 삼성 라이온스)을 투입해 타자들의 패턴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땅 끝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드는 정대현(31, SK 와이번스)를 투입해 타자들을 상대하고는 중간에 위험한 좌타자가 나오면 좌완 에이스인 김광현(21, SK 와이번스)를 투입하는 카드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뱀직구'의 위력을 가진 임창용(33, 야쿠르트)에게 맡겼습니다. 이러한 투수진의 계투는 아무리 뛰어난 타선이라도 쉽게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 언론 측은 아직까지도 일본이 우승 후보국 1순위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개인기가 한국보다 뛰어나고 이들이 조직력을 발휘하면 강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개인기가 일본과 미국, 그리고 남미 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은 김인식 감독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이 지닌 장점을 조합해 최상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한국이 단연 '세계 최고'입니다.
또한, 김태균과 류현진, 그리고 김광현 등은 해외 야구에 대한 준비를 착실하게 준비해간다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조직력으로 강해진 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선수들의 재능이 훨씬 뛰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강팀의 특징은 상대팀이 허점을 보였을 때, 놓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팀은 이런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강팀'입니다. 김인식 감독 말대로 결승전의 상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팀의 기량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사진 = 추신수, 김태균 (C) WBC 공식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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