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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딸에서 엄마로"…'마이웨이'' 이경애, 눈물로 고백한 인생史

기사입력 2018.01.18 22:53

김주애 기자

[엑스포츠뉴스 김주애 기자] 개그우먼 이경애가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공개했다.

18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는 엄마의 딸로 살아왔고, 이제는 한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이경애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이경애는 "현재 그 어느때보다 바쁘게 살고 있는데, 다들 '왜 이렇게 방송에 안 나오냐' 하시더라. 내가 그 분들이 TV를 보는 시간에는 출연을 안하나 보다. 그 분들이 보는 시간에 나와야하는데"라고 너스레를 떨며 카메라를 맞이했다.

이경애는 한 때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개그우먼이다. 1984년 제 2회 KBS 개그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며 20살에 최고의 스타가 됐고, 이후 김미화, 임미숙과 함께 'KBS 개그우먼 트로이카'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경애는 "엄마를 호강시켜 주고 싶어서 그렇게 성공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고백했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 대신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정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던 이경애. 그는 엄마를 "안 한 장사가 없으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엄마가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집을 샀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노름 빚으로 집을 압류당했다고. 그는 "이후 어머니가 맥을 놓으셨다. 정신 이상이 오셔서 다섯 차례나 자살을 시도하셨다. 그럴 때 마다 내가 발견해서 살려놨다. 그러던 중 마지막에 쥐약을 먹고 위세척을 했는데, 이후로 앓아 누워서 일을 못하는 상태가 되셨다"고 고백했다.

이후로 이경애는 집안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고. 또 공부를 못해도, 나이가 어려도 성공할 수 있는 연예인을 목표로 품게 됐다. 그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14살 부터 수세미를 팔았고,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도 하려고 했다"며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전 힘들게 생계를 꾸려갔다고 이야기했다.

이경애가 개그우먼이 된 뒤 집안 살림은 나아졌지만. 2000년 부모님을 열흘 차이로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이경애지만 어머니의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그는 "엄마가 나를 못보면 안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국으로 도망갔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못버티셨다. 그래서 절친한 임미숙에게 전화해 '네가 엄마 딸이나 마찬가지니까 네가 좀 봐주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한국에 가보려했지만 비행기가 없었고, 다음날 한국에 도착했을 때 '운명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경애는 어머니를 무덤에 묻고 난 직후, 아버지와도 이별했다. 아버지는 이경애에게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해 줘서 너무 고마워. 수고했어"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40살이 넘은 나이 이경애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 딸 희서를 만났다. 이제는 엄마의 딸에서 딸의 엄마가 된 그는 희서와 함께 부모님의 무덤을 찾았다. 그는 희서에게 "나는 엄마랑 너무 친해서, 엄마가 없어지고 힘들었으니 우리는 서로 미워하면 좋겠다"고 농담스레 말했다. 

2007년 교통사고로 인한 무릎 수술부터 맹장 수술, 갑상선까지 건강 이상이 한번에 겹쳐 왔던 이경애가 다시 건강을 찾은 이유는 딸이라고. 딸 옆에서 오래 살고 싶어서 함께 운동을 하며 건강을 되찾았다고 고백했다. 

이경애는 이제 딸바보 엄마가 됐다. 딸은 TV조선 '아이엠셰프'에 나갈 정도로 요리에 재능을 보이고 있다. 딸의 건강을 신경 쓰고, 딸의 음식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하는 이경애는 "올해는 아주 아름다운 가정을 꽃피워 보려고 해요"라고 다짐했다.

savannah14@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DB

김주애 기자 savannah14@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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