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2.20 02:07 / 기사수정 2008.12.20 02:07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8~2009 SBS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파이널이 끝나고 난 뒤, 일본 기자들이 움집하고 있던 프레스는 들썩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조차 김연아(18, 군포 수리고)가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번 대회에서 아사다 마오(18, 일본)가 승리했으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본기자 대부분들이 '점프'와 '악셀'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TES(기술구성점수)와 PCS(프로그램구성요소), 그리고 GOE(가산점)에서도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에게 우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사다 마오의 전담 코치인 타티아나 타라소바는 트리플 악셀 두 번 시도와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경기 중후반대에 넣으며 반전을 노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요소에서 고르게 발전돼 있는 김연아를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난이도를 높여서 최대한 기초점수를 높게 측정한 뒤, 이 기술들을 성공시키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을 앞두고 '점프 특훈'을 했다는 아사다 마오의 의지는 눈여겨볼만한 것이었습니다.
타라소바가 노린 '점프 특훈'이란?
아사다 마오가 이번 시즌 공개한 점프들은 예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다른 점프들에 비해 가장 많이 좋아진 것이 토룹 정도입니다. 살코는 아직도 명확해 보이지 않고 가장 문제시됐던 러츠도 고쳐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아사다 마오의 전매특허라고 불려지는 트리플 악셀은 여전히 회전수가 부족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 마오가 예상보다 저조한 점수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 아사다 마오는 엉덩방아를 찐 트리플 플립 점프에서만 다운 그레이드를 받았을 뿐, 나머지 점프와 기술들에선 모두 가산점을 챙겼습니다.
회전수가 부족한 트리플 악셀 점프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다운 그레이드가 나올 줄 알았지만 두 번째 트리플 악셀에선 무려 1.40의 가산점이 나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아사다 마오가 승리했던 원인 중 하나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가산점을 제법 챙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필자는 프리스케이팅이 벌어진 13일 오전, 여자 싱글 선수들의 최종 연습을 관전했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물론, 일본 선수들은 모두 점프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경쟁심은 강하지만 유독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약한 모습을 보였던 마오는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를 이끄는 타라소바의 영향 때문인지 한층 강해진 인상이 풍겨졌습니다. 그리고 최종 연습 때에도 체력을 조절하면서 줄기차게 점프를 시도하고 있던 선수가 아사다 마오였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연습 때 점프 성공률이 좋은 선수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실전에서도 큰 실수가 없었던 이유는 점프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지켜본 아사다 마오가 실시한 '점프 특훈'은 점프를 정확하게 다듬고 질을 높이는 데에 목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뛰던 점프들을 얼마나 실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랜딩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안도 미키(21, 일본)도 자신의 점프를 고치려는 의식과 부상 때문에 한동안 점프 성공률이 급격하게 낮아졌었습니다. 자신이 뛰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점프를 익히려면 그만큼 자신감이 없어지고 도약은 물론, 랜딩조차 불안해 집니다.
아사다 마오는 회전수가 부족한 트리플 악셀을 연거푸 성공시키고 있었습니다. 가산점으로 승부하려는 것이 아닌, 기술 구성 난이도를 높여서 김연아와 승부하겠다는 전략이 한눈에 포착되었습니다.
또한, 비슷한 점수로 승부가 가려질 상황이라면 '점프 하나'로 명암이 엇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점프를 한결 가볍게 뛰려고 노력하면서 랜딩할 때,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잘못된 점프를 교정하고 정확하게 구사하기 보다는 기존에 뛰던 점프를 제대로 구사하고 실수를 줄이느냐가 타라소바의 전략이었습니다.
물론, 타고난 재능과 함께 '연습벌레'로 불리는 아사다 마오의 승부 근성도 톡톡히 한몫을 했습니다. 최종 연습 시, 아사다 마오는 점프 연습에만 집중하다가 자신이 연기할 프로그램 곡인 '가면무도회'가 흘러나오면 점프는 생략하고 안무와 나머지 기술들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일본에 다녀온 국내 코치들과 선수들은 일본선수들이 점프 연습과 다른 연습들을 철저히 따로 하는 훈련방식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피겨 훈련도 점프연습 위주로 돌아가지만 일본 피겨 역시 '점프'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아사다 마오가 프리스케이팅을 마치고 난 뒤 가졌던 공식기자회견에서 가장 처음으로 밝힌 소감은 "트리플 악셀을 두 번이나 성공시킨 점이 가장 기쁘다"였습니다. 점프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기술과 요소를 중요하게 언급하는 김연아에 비해 트리플 악셀에 큰 의미를 두는 아사다 마오의 태도는 낯설기만 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인 답을 내린다면 아사다 마오는 '고난도의 점프'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과 점프의 정확성, 표현력, 안무, 그리고 가산점 등에서 모두 앞서고 있는 김연아에게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점프'뿐이기 때문입니다.
점프 하나의 차이가 아니라 피겨스케이팅과 관련된 전체적인 요소가 승부를 결정짓는다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 후반부에 시도했던 '트리플 살코'를 성공시켰다면 어땠을까요. 또한, 쇼트와 프리스케이팅에서 시도했던 '트리플 러츠'를 단 한번만이라도 삼 회전을 채워서 안정적으로 랜딩했다면 승부의 향방은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점프 하나로 승부가 갈려졌다고는 하지만 피겨스케이팅은 그렇게 단순한 종목이 아닙니다. 같은 기술이라도 정확하게 구사됐다면 그것에 따라 매겨지는 GOE(가산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케이팅 기술과 표현력을 채점하는 PCS(프로그램 구성요소)의 비중도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에 비해 기술의 난이도를 높게 측정해서 나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선수 중, 실수가 없을수록 유리한 선수는 오히려 김연아입니다.
피겨스케이팅은 난이도가 높은 기술로만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더욱 정확한 기술을 성공시킨다면 가산점이 매겨집니다. 또한, 피겨스케이팅을 예술적인 멋으로 승화시킨다면 당연히 여기에 대한 평가도 뒤따라옵니다.
독한 승부근성으로 임한 아사다 마오는 이번 대회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을 하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갔지요. 타라소바와 아사다 마오에게 긍정적인 평가는 충분히 뒤따라야 하지만 '실수를 덜한 김연아'를 넘어설 수 있을 지에는 아직도 의문부호가 많기만 합니다.
현장에서 지켜본 결과, 어떤 의미로든 일본 피겨 계는 하나로 단결돼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김연아는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과도 같았습니다. 점프 하나로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가 졌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갈라쇼가 벌어진 14일, 필자는 어렵게 선수 대기실 앞에서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씨를 만나봤습니다. 이번 대회의 경험도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향해서 걸어가는 한 과정이라는 의견이 오고갔습니다.
홈에서 벌어진 뜻 깊은 대회에서 우승을 놓쳤지만 김연아가 다시 희망을 품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경기가 끝나면 또다시 치러야할 다음 대회가 남아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 김연아, 아사다 마오 (C) 강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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