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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독이 든 성배, WBC 감독직

기사입력 2008.10.28 02:08 / 기사수정 2008.10.28 02:08

유진 기자


[엑스포츠뉴스=유진] 국내를 포함하여 전미 대륙과 일본이 야구에 열광하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시작된 것을 비롯하여 전미 대륙에서는 월드시리즈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일본프로야구가 조금 늦긴 하지만 이제 곧 재펜시리즈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형상이다. 야구팬들에게 포스트시즌만큼 열광 서러운 기간도 없다.

그러나 이는 곧 야구시즌의 종점을 향해간다는, 일희일비(一喜一悲)의 순간이 옴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10일을 채 못 가는 것처럼, 우리 야구인생도 11월 종료와 더불어서 내년 2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야구팬들의 긴 기다림을 해소할 수 있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orld Baseball Classic, 이하 WBC)은 그래서 의미 있는 대회다.

팬들에게는 정규시즌 시작 전 야구를 실컷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며, 선수들에게도 경기 감각 상승과 '제2의 훈련'이라는 기회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미우리의 이승엽 선수는 WBC에서의 대활약을 바탕으로 2006시즌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또한, WBC는 '축구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스타탄생과 동시에 많은 변수를 일으키는 장(場)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같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초대 우승팀은 미국이 그렇게 업신여겼던 아시아권 국가에서 나왔다는 데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초대 대회 때까지만이다. 사실 WBC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선전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그 광경을 보기란 어려울 듯싶다. 물론, 뜻하지 않은 명승부가 나올 소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초대 대회 우승국가부터 삐걱 거리고 있다. 대회를 주관하는 메이저리그 역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독이 든 성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감독

성배(聖杯)라는 것은 '포도주를 담는 잔', 즉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성스러운 잔을 의미한다. 그 잔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러운 만큼,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선수나 감독, 모두에게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독(毒)이 들어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목숨을 잃는다. 물론, 독을 잘 사용하면 오히려 건강이 갑절로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독을 잘 쓰기 위한 선장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바로 감독 문제다.




▲ 당시 한국팀의 '독이 든 성배'를 들었던 김인식 국가대표 감독

일본의 경우 프로팀 감독을 배제한 감독출신 야인 중 한 명을 선임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그 대상이 바로 호시노 센이치 前 한신 감독이었으나,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이유로 고사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후보군에서 쫓겨난 것과 똑같다. 바로 여론과 이치로 등 일부 선수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독설가'로 유명한 노무라 감독은 이치로가 선수 겸 감독, 둘 다 해라라고 맞받아쳤을 정도다. 이로 인해 일본 야구 원로들은 고심에 빠졌고, 결국 스스로 내세운 감독 선발 기준을 바꿔버리는 우여곡절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재펜시리즈 우승 감독을 WBC 감독으로 선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은 둘로 압축된다. 요미우리의 하라 감독과 세이부의 와타나베 감독이 그들이다.

그런데 금일, 일본프로야구계는 재펜시리즈가 시작하기도 전에 감독 최종 후보를 결정했다.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을 낙점한 것이다. 그들은 보수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요미우리 구단의 젊은 감독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시기가 매우 좋지 않다. 재펜시리즈의 뚜껑도 열어보기 전에 말 많은 야구계 원로들이 유난스럽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구단'이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는 그들로써는 자이언츠의 우승을 내심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으리라 본다.

만약에 세이부 라이온스가 재펜시리즈 우승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된다면 이미 감독 최종후보를 낙점한 야구 원로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 혼란을 틈타 와타나베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요청하는 것으로써 그를 갈음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다혈질의 와타나베 감독이 이를 거절할 요소는 충분히 있다. 결국, 다시 하라 감독에게 대표팀 감독직을 제의하는 것도 참으로 우스운 꼴이 된다.

또한, 하라 감독의 WBC 감독 제의는 적어도 요미우리에 플러스가 되지 않는다. '재펜시리즈 우승 감독=WBC 감독'이라는 공식이 선수들을 압박하는 수단이 되어 오히려 제 실력 한 번 발휘 못 하고 싱겁게 끝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래저래 일본으로써는 '독이 든 성배'에 대한 처리가 골치 아프게 되었다.

WBC에 침착한 한국. 그러나……

반면 한국프로야구는 WBC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올림픽 이후 그 기세를 몰아 김경문 감독에게 다시금 대표팀 감독직을 제의할 생각도 잠시, 우선 한국시리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각 팀의 감독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KBO는 적어도 일본보다 한 수 위인 셈이다. 아직까지 WBC 때까지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더구나 주최 격인 미국 역시 조용하기 때문이다.

▲ WBC의 히어로, 이승엽(對 맥시코전)

그러나 한국 역시 초대 대회때만큼의 파이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월드컵 16강, WBC 3라운드 진출 등에 대한 병역혜택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월드컵때와 마찬가지로 병역혜택은 선수들에게 큰 메리트였다. 2008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파이팅을 보였던 것도 사실상 병역 혜택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만큼 국가의 명예를 대변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무형자산을 얻는 것과 같다.

하지만, 병역혜택 조항이 없어진 지금, 무조건 애국심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기란 어렵다. 노장 선수들의 참가가 전제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제는 WBC가 순수하게 '자국 야구의 자존심'을 가리는 대회로만 비쳤다. 개인의 선수생활을 위해 참가를 고사하는 선수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본 역시 마쓰이가 초대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불참을 통보했다.

그렇다면, 국가가 돈으로써 선수들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KBO 재정상 스무 명이 넘는 선수들에게 큰돈을 내어놓기란 무리다. 결국, 한국야구의 WBC 참가는 동기부여가 될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는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있다. 2006년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감독문제도 그렇다.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을 선임한다고 해도 해당 감독은 '코나미컵'에도 출전해야 한다. 김성근 감독이나 김경문 감독 모두 힘겨운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더구나 국내 야구팬들의 야구보는 안목이 높아진 지금, 초대대회나 2008년 올림픽과 같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가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동기부여가 필요한 때

이제 국제무대에서 야구를 정식으로 보기란 어려워졌다. 차기 런던 올림픽에서는 이미 야구를 정식종목에서 제외했고, WBC는 축구 월드컵처럼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올림픽이 다시 아시아권 국가나 전미 대륙에서 열리기를 기원하거나 WBC가 세계적인 대회로 발돋움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WBC에 참가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나라가 WBC에 참가해야 할 의무는 없다. 축구와 달리 야구는 전 세계적으로 총괄하는 FIFA와 같은 단체가 없으며, WBC 자체도 미 프로야구(MLB)에서 주관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토너먼트 자체도 자국(미국)에 유리하도록 짜 놓아 최악의 경우 두 팀이 네 번의 경기를 치를 수 있다. 또한, A조와 B조는 결승 이외에는 절대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 WBC 풀리그 1팀과 2팀은 결승에서야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대회에 참가할 세계적인 강제력은 없다. 또한, 병역 혜택이나 금전적인 보상 같은 동기부여가 없다면 선수들로써도 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한 '독이 든 성배'를 들게 될 대표팀 감독 또한 동기부여 없이 애국심만으로 선수들을 독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WBC를 '뜨거운 감자'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사진 (C)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공식 홈페이지]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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