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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조력자들②] 박정훈 촬영감독 "'내가 살아있구나' 느꼈던 시간"

기사입력 2017.06.15 10:35 / 기사수정 2017.06.15 10:46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박정훈 촬영감독에게 영화 '악녀'(감독 정병길)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신선한 액션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악녀'의 장면들은 박 촬영감독의 손에 의해 탄생됐다.

'악녀'는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가 그녀를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강렬한 액션 영화. 지난 8일 개봉해 관객들의 입소문 속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있다.

액션에 특화된 장기를 보여왔던 정병길 감독의 연출 속에 박 촬영감독은 감독과 무술감독을 비롯한 스태프, 또 배우들과 함께 새로움을 더한 영화의 한 페이지를 완성했다.

'악녀' 개봉 후 마주한 박 촬영감독은 "후반작업하면서 영화를 봤고, 극장에 앉아서 제대로 본 건 기술시사 때였나봐요. VIP 시사회 때도 스크린 체크도 할 겸 봤고요. 너무 많이 봤네요.(웃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 촬영감독의 말처럼 '악녀'는 123분의 러닝타임에서 모두가 고생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스튜디오와 세트장에서 찍는 분량 자체가 적었고, 다소 좁고 위험할 수도 있는 실제 공간에서의 촬영이 이어지며 여러 고충이 함께 존재했다. 정 감독이 만들어 온 3D 비주얼 콘티를 바탕으로 철저한 계산속에 '악녀'의 색다른 앵글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정 감독의 제안으로 '악녀'를 함께 하게 됐죠. 4개월 정도 프리프로덕션을 하고, 또 촬영을 4개월 했어요. 거의 1년 프로젝트였던 것 같네요. 회의를 진짜 많이 했어요. 그 영상(3D 비주얼 콘티)을 봤을 때 정말 구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예산 등 생각해야 될 문제가 있어 걱정했는데, (정병길) 감독님의 뚝심이 좋았고, 어떻게 보면 그 에너지에 설득 당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웃음) 한 컷 한 컷 어떻게 만들고 구현해낼지 진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죠."

"이렇게 빠른 템포의 액션을 사실 많이 보지 않았거든요. 제 성향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라고 솔직하고 차분하게 영화를 설명하는 박 촬영감독의 모습은 워낙 강하게 와 닿는 미장센의 장면들을 직접 찍어낸 이라는 생각을 잠시 멈추게 했다. 고요함 속에서도, 단단하고 묵직한 기운이 함께 자리했다.


여러 가지로 '악녀'는 박 촬영감독에게도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던 기회였다. 회자되는 1인칭 시점의 오프닝 액션에 대해서도 "적당하게 잘 쓰인 것 같아요"라고 평하며 "감독님 자체가 특이한 걸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지점은 촬영감독에게는 복이죠. 더 북돋아주니까, 제가 조금 더 자유로울 수가 있었어요. 그게 또 정병길 감독의 매력이기도 하고요"라고 웃어보였다.

감독의 연출, 무술감독의 액션 등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이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이 선을 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짜여진 액션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 지'를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총 70회차 중 50회차 이상이 액션신이었기에, 박 촬영감독이 느끼는 체력적인 고충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동안 사람들이 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한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렇게 영상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좋아할까, 지루해하진 않을까, 어지럽진 않을까' 불안감을 갖고 찍었죠. 결과물이 괜찮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을 그냥 믿고 했어요. '감독을 믿고 가자' 생각했죠. 그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실제 촬영을 하면서도 보통 사용하는 것보다 더 와이드하게 펼쳐지는 렌즈를 사용해 생동감을 더해냈다. 최대한 카메라와 인물이 붙어서 찍을 수 있는 촬영 기법을 활용해 빠르게 움직이는 느낌의 효과를 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한 컷을 이어주는 느낌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지금까지 영화에서 많이 쓰지 않았던 부분이긴 하거든요. 정도의 차이이지만, 저희는 그 부분을 계속 썼다는 것이죠. 한 번에 원 신 원 컷을 다 찍을 수 없다 보니 부분 부분 촬영한 것을 한 컷으로 이어 붙이는 작업을 했어요. 그 작업에 좀 고생을 했지만 관객들도 특이하게 느껴주는 지점이라 다행이고요."


박 촬영감독은 창문에서 떨어지는 신, 버스 액션신 등 그 장면의 완성을 위해 화면 뒤에서 하나의 호흡을 맞춰 'OK'를 만들어냈던 순간의 뿌듯함을 회상하며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우에게는 "저희는 프리 단계를 통해서 어떻게 작업할지에 대한 그림을 다 그렸지만, 배우들은 새로운 촬영기법이라든지 표현방식 자체가 다르다 보니까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현장이 올곧이 그냥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컨디션은 아니었을 텐데, 그럼에도 잘 이해해주고 따라 와줘서 고마웠죠. 롱테이크 촬영이 많다 보니 결국 대역을 쓸 수 없었고, 배우들이 직접 해주는 부분이 중요했죠. 너무나 잘 해줘서 '악녀'의 이런 콘셉트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박 촬영감독은 직접 와이어를 타며 촬영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와이어 얘기에 그는 "다 안전성이 확보된 부분이니까요. 제가 와이어를 탄다고 하면, 고가의 카메라도 있지만 결국 제가 안 다치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스턴트, 무술팀들이 더 긴장을 해요. 그런 면에서 봤을때, 와이어를 하나 메고 진짜 위험한 스턴트 하는 연기자들이 있었는데 제가 와이어를 탄 게 화제가 된다면 좀 민망하죠"라고 손을 내저었다.

"와이어 탄 게 이슈가 되는데, 그건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카메라를 잡았으니까 탄 것뿐이죠.(웃음) 단지 제가 카메라에 익숙했던 것이고, 실제로 아마 무술팀이 찍었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서울액션스쿨 스턴트처럼, 저보다 더 위험하게 촬영에 나섰던 수많은 분이 있어요. '악녀'는 그들의 땀으로 만든 영화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인 충남 태안에서 서울로 상경해 2002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의 촬영팀 막내를 시작으로 어느덧 16년에 가까운 시간을 영화와 함께 보내왔다.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 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인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작품을 하며 계속해서 영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아 온 지난 시간들이다.

"왜 촬영감독을 선택했냐고 물으신다면 '멋있어서'였다고 답할 것 같아요.(웃음) 지금도 멋있어지고 싶은데, 하면 할수록 그렇지가 않네요. 중간에 (일이나 생활면에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고요. 스무 살에 일을 시작해 막내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촬영감독까지 왔어요. 큰 상업영화를 촬영해서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오는 것, 그걸 십여 년 동안 계속 상상을 했던 거죠. 그리고 꿈을 이뤘잖아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원했던 건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저는 그냥 현장이 좋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소통해서 뭔가를 만들고 찍는, 그냥 이 행위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

박 촬영감독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고한 소신도 덧붙였다.

"촬영감독이라는 사람은 주목받는 포지션의 사람은 아니에요. 어쨌든 창작자의 손발이 돼줘야 하는 사람이죠. 촬영감독이 자신을 많이 드러냈을 때 영화가 좋아지는 확률은 거의 없거든요. 여러 예술 중에서도 영화는 그 특이성이 분명히 있잖아요. 만약 제 안에서 나오는 약간 다른 창의적인 부분들은, 시나리오의 선을 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가야지만 함께 돋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오버하려고 하지는 않죠. 카메라 앵글이 촬영감독만의 것은 아니잖아요. 무엇보다 (스태프들끼리의) 인간적인 부분이 서로 공유돼서, 소통할 수 있는 게 중요하고요."

박 촬영감독은 가을에는 잔잔한 드라마의 촬영을 맡아 다시 영화 현장에 뛰어든다. '악녀'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박 촬영감독은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것을 느낀 영화에요"라고 '악녀'를 정의했다.

"제가 영화를 앞으로 몇 편을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악녀'는 분명히 항상 많이 얘기할 영화가 될 거에요. 항상 생각할 것 같고요. 고생했고 힘들고 이런 부분을 떠올리며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꼈던 작품이었거든요. 정말 여러 제약 없이, 원하는 것을 원 없이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어요. 앞으로도 제가 이렇게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영화가 또 있을까 싶어요.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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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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