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8.19 09:17 / 기사수정 2008.08.19 09:17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국제무대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축구는 다시 한번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며 부족한 실력을 드러냈습니다.
애초, 메달획득을 목표로 하며 거침없이 베이징을 향해 내달렸던 박성화 감독과 올림픽 대표팀. 기대치와 비교하면 얻은 결과물이 초라해서일까요? 아니면 정말로 한국축구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미궁 속에 빠져버렸기 때문일까요? 대표팀의 예선 탈락을 두고 다양한 비난과 자조의 목소리가 들려 오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국제대회의 실패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기적의 4강 신화를 이루어내며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 축구. 하지만, 그 후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매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일 월드컵 이후 국제대회(아시아 대회 제외)서 한국이 조별리그를 통과한 적은 단 두 차례에 불과합니다. 2003년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이 16강에 오른 것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 이외의 모든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조별리그 경기를 마치고 짐을 싸야 했습니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한국축구는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습니다. 각각 한일월드컵 이후 두 차례씩 열렸던 아시안 컵과 아시안게임에서 번번이 중동의 모래폭풍에 가로막히며 결승진출의 문턱에서 무너졌습니다.
계속된 실패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국제무대에서의 계속된 실패는 작게 보면 그 대회에 참가한 감독과 선수들의 역량부족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 팀을 이끈 박성화 감독의 능력에 대한 불신과 박주영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비판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실패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며, 꾸준히 국제무대에서 고전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진정 우리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지금처럼 단편적이고 단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즉, 이번 올림픽에서의 한국축구의 실패는 박성화 감독과 선수들의 문제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며 더욱 정확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감독과 선수의 문제로 올림픽 실패의 잘못을 돌리고자 한다면, 우리 대표팀은 항상 국제대회에서 준수한 경기력을 보이며 결선 토너먼트의 단골손님이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한국 축구가 그 정도 수준에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축구 강국들의 공통점 : 좋은 선수-좋은 리그-좋은 시설
국제대회에서 매번 우승후보로 꼽히는 축구 강국들은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활용 가능한 좋은 선수자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고, 지금도 좋은 유소년 시설에서 선수를 길러내면서 그들의 미래 또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축구협회의 소수정예 프로젝트가 아닌 번창한 자국 리그 클럽들의 노력으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몇몇 국가들은 훌륭한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는 역량까지 갖췄습니다.
월드컵 최다 우승국 브라질을 예로 들자면, 선수들은 자국리그를 가득 채우고 있고, 프로리그가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전 세계 국가에서 브라질 국적의 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우리 K-리그의 외국인 선수들도 대부분 브라질 출신 선수들입니다. 실로 브라질의 선수자원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세계 최고수준이며, 이런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브라질은 꾸준히 세계 최상위권의 축구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나라입니다. 네덜란드는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적은 천육백만 명에 불과합니다. 네덜란드가 비교적 다른 강호들보다 적은 인구를 가졌음에도 세계적 기량의 많은 스타를 배출하고 국제무대에서 그들이 원하는 축구를 선보이며 꾸준히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경쟁국들보다 축구에 대한 열의가 높고, 좋은 선수를 길러낼 수 있는 양질의 시설과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축구 강국들은 경쟁력 있고 수준 높은 자국리그를 소유하고 있고, 리그에 속한 팀들은 좋은 선수를 길러내고자 항상 노력하고 있으며, 좋은 시설과 인프라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축구에 대한 높은 열망과 맞물려 이것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축구 발전의 원동력 : K-리그
표류하는 한국축구. '과연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낍니다. 하지만, 희망은 분명히 외부가 아닌 우리 안에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K-리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들과 어느 정도 격차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수들의 기량, 투자되는 재원,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과 육성 프로그램. 이외에도 K-리그가 유럽의 명문리그에 비해 뒤떨어지는 여러 부족한 점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은 이 K-리그 안에서 뛰고 있고, 14개 구단에서 선수들의 급여를 담당하며 한국축구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불변의 명제입니다. 따라서 K-리그가 여러 측면에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된다면 대부분의 선수는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물들이 쌓여서 근본적인 한국축구의 수준 향상에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K-리그도 서서히 미래 지향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많은 클럽이 하나 둘 유소년팀과 육성 시설 및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갖추기 시작했고, 각 구단은 과거보다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며 수익창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민구단 인천은 전용구장 건립을 확정 지었고, 기업의 홍보부서였던 구단들은 독립법인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K-리그 평균 관중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분명히 K-리그는 조금씩 그 역할과 소임을 다하며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더욱 애정 어린 관심과 투자가 늘어난다면 그 발전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빨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축구가 더는 거스 히딩크와 같은 명장의 '마법'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착실하고 꾸준하게 스스로 '실력'을 쌓아 나가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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