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8.01 12:45 / 기사수정 2008.08.01 12:45
와일드카드라는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때부터였다. 올림픽의 아마추어 정신 고취라는 IOC의 의도와 월드컵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FIFA의 취지가 맞물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올림픽축구의 출전 자격이 23세 이하로 제한되었는데, 이로 인해 올림픽 축구경기의 흥미와 흥행성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88년부터 꾸준히 올림픽에 출전했던 우리나라 올림픽축구대표팀은 사실 와일드카드와 그다지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96년 애틀란타 - 황선홍, 하석주, 이임생
비쇼베츠 감독이 이끌던 96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은 황선홍, 하석주, 이임생을 와일드카드로 선발했다. 당시 올림픽대표팀은 스트라이커 최용수와 플레이메이커 윤정환 콤비를 앞세워 올림픽 예선 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기에, 이들 와일드카드의 합류는 올림픽대표팀에 더욱 힘을 실어주며 사상 최초의 8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황선홍이 1차전 가나를 맞아 윤정환의 결승골로 이어진 페널티 킥을 유도한 것을 빼면 전반적인 와일드카드의 경기력은 실망스러웠다. 마지막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2로 패하며 조별예선에서 탈락하자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친 와일드카드 선수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이들이 어린 선수들과 융화되지 못하며 전체적인 팀 조직력을 해쳤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 홍명보(강철), 김도훈, 김상식
박지성, 이천수, 고종수, 이동국, 이영표, 송종국 등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홍명보, 김도훈, 김상식을 선발했다. 이들의 합류로 올림픽대표팀은 공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역대 최고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회 개막 직전 '수비의 핵' 홍명보가 갑작스러운 부상 악화로 결국 강철로 대체되면서 대표팀은 치명타를 맞았다. 기존의 수비진과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보지 않았던 강철이 첫 경기 스페인전부터 투입됐지만 결과는 0-3의 대패.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2000년 올림픽대표팀은 사상 최초로 조별예선에서 2승을 거두고도 골득실에 뒤져 조 3위로 8강 진출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 유상철, 김남일(정경호), 송종국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표팀은 사상 최초의 8강 진출의 쾌거를 일궈낸, 한국축구의 기념비적인 대회였다. 하지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바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와일드카드 때문이다. 당시 와일드카드에는 유상철, 송종국, 김남일이 뽑혔다. 다분히 수비를 보강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김남일은 애초에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며 정경호로 대체됐고, 송종국은 아테네에는 갔지만 줄곧 부상으로 벤치만 지켰다.
결국, 수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대표팀은 조별예선 마지막 말리전과 8강전 파라과이전에서 두 경기 연속 3실점을 기록했다. 특히 8강에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상대로 여겨진 파라과이를 만나 2-3으로 패배하며 4강 진출의 꿈을 접었던 것은 아직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만약 와일드카드 선수들이 모두 건재했다면 8강을 넘어 메달권까지 넘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08 베이징 올림픽 - 김정우, 김동진
박성화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3명까지 선택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로 미드필드의 김정우(26, 성남일화)와 수비수 김동진(26, 제니트) 두 명만을 선발했다. 당초 염두에 두고 있던 염기훈은 부상을 이유로 제외됐고, 이들 두 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과연 이들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올림픽대표팀의 '와일드카드 잔혹사'를 끊을 수 있을까? 7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리나라가 호주와 치른 마지막 평가전은 그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이날 경기에서 김정우는 기성용과 함께 중원에서 1차 저지선을 형성하며 중원을 장악했다. 김동진 역시 왼쪽 풀백 위치에서 수비를 조율하고 필요할 때는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펼치며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김동진과 김정우의 가세로 올림픽대표팀은 한층 강한 전력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김동진과 김정우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모두 골 맛을 보면서 사상 최초의 8강 진출을 일궈낸 경험이 있다. 나이도 비교적 젊어서 어린 선수들과 융화가 잘 되고 팀 전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 와일드카드의 진정한 의미를 잘 살려주고 있다.
김동진 역시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2004년에 비해 지금의 대표팀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하다. 팀 분위기도 너무 좋고 와일드카드이자 선배인 나와 김정우를 후배들이 잘 따라주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본선에서의 좋은 성적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포커에서도 와일드카드는 때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아무것도 아니던 패가 와일드카드 한 장이 사용됨으로써 최고의 패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태껏 대한민국 올림픽축구 역사에서 와일드카드는 최고의 패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김동진과 김정우가 과연 박성화 감독으로 하여금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쥐게 해줄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자.
[사진 (C) 엑스포츠뉴스 김혜미 기자] 엑스포츠뉴스 전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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