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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8]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 C조

기사입력 2008.06.30 07:24 / 기사수정 2008.06.30 07:24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 전성호 기자] 작년 12월 2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유로 2008 본선 16강 조추첨 결과 2006 월드컵 우승팀(이탈리아)과 준우승팀(프랑스), 세계랭킹 10위(네덜란드)와 12위(루마니아)로 구성된 사상 최고의 '죽음의 조'가 탄생됐다. 네 팀 모두 4강에서 만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유럽 최강팀들이었다. 누가 8강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조차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놀랍고도 허무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몰락

프랑스는 주장 파트릭 비에이라의 부상과 지네딘 지단의 은퇴로 예전보다 전력이 약화되었지만, 프랑크 리베리, 제레미 툴랄랑, 카림 벤제마, 사미르 나스리 같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그 빈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노쇠화가 우려되던 주전 포백은 유로 2008 예선에서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며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와의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면서 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프랑스는 네덜란드전에서 1-4의 참패를 당하며 쓰러졌다.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둔했고 수비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8강 진출 여부를 걸고 맞대결한 이탈리아전에서는 리베리의 부상, 에릭 아비달의 퇴장 등 악재가 겹치며 0-2로 패배, C조 최하위의 수모를 맛보게 된다.

지단의 공백, 골결정력 부족, 전술의 부재 등 프랑스의 모습은 2002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당시와 너무도 흡사했다. 과거 세계 축구 무대를 호령했던 '아트 사커'는 이제 세대교체의 진통을 겪어야 할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무투의 페널티킥 실축

아드리안 무투는 루마니아를 유로 본선 무대로 이끈 장본인이었지만 루마니아의 8강 진출 실패에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무투는 선제골을 터뜨리며 지난 경기 네덜란드에 0:3으로 패배했던 이탈리아를 공황 상태에 몰아넣었다. 비록 1분 뒤 곧바로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동점골을 넣으며 균형을 이뤘지만 무투가 이끄는 루마니아 공격진은 이탈리아 골문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결국, 후반 35분, 루마니아는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무투가 키커로 나섰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탈리아라는 '대어'를 잡고 8강 진출을 거의 확정지을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무투는 지난 시즌 소속팀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와의 세리에A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골키퍼인 잔루이지 부폰을 상대로 페널티킥을 넣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감이 과했던 걸까. 무투가 과감하게 가운데로 찬 공은 부폰의 손과 발에 차례로 맞으며 가로막혔다. 이번에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은 루마니아와 무투였다. 결국, 한 경기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무투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곧바로 교체되고 말았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주전을 9명이나 뺀 네덜란드와 맞붙었지만 루마니아는 결국 0-2로 패하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결과론적이지만 무투의 페널티킥이 들어갔다면 죽음의 조의 생존자는 이탈리아가 아닌 루마니아였을 것이다. 8년 만의 8강 진출을 노리던 루마니아의 꿈은 이렇게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초라한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는 대회 직전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의 부상으로 조별리그에서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3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비상등이 커졌다. 루마니아와의 2차전에서는 패배의 위기를 겪으며 8강 조기 탈락이란 벼랑 끝까지 몰린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는 세계 최고의 수문장 부폰이 있었다. 네덜란드에 세 골을 내주며 자존심을 구겼던 부폰은 루마니아전에서 무투의 페널티킥을 막으며 이탈리아를 구해냈다. 결국, 이 장면을 기점으로 이탈리아는 부활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천신만고 끝에 8강 티켓을 간신히 따냈다. 그러나 아무리 ‘죽음의 조’였다 하더라도 3경기 1승 1무 1패, 3득점 4실점이란 기록은 ‘월드 챔피언’에겐 너무 초라한 성적이었다.

네덜란드의 독주

그 누구도 예상 못 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고사하고 루마니아에도 뒤질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들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네덜란드는 강했다. 대회 최강팀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었다. 재능있는 미드필더들을 활용하기 위해 전통의 4-3-3 전형을 버리고 올해 초 과감하게 4-2-3-1로 변화를 모색한 반 바스텐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다. 원톱에 루드 반 니스텔루이라는 최강의 스트라이커가 포진하고 그 뒤를 세 명의 창의적인 미드필더 로벤 반 페르시(덕 카위트)-웨슬리 슈네이더-라파엘 반 데 바르트(아르옌 로벤)가 받쳐주면서 네덜란드의 공격력은 극대화됐다.

‘철벽 수문장’ 에드빈 반 데 사르의 존재는 평범한 수비가 'S급 수비진‘의 실점률을 보여줄 수 있게 해주었다. 무려 7명의 선수가 득점에 가담하며 '토털 사커'의 진수를 보여줬던 네덜란드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9득점 1실점이라는 완벽한 기록을 남긴다. 네덜란드의 8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던 전문가와 도박사들은 네덜란드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연파하자 그들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기 시작했다.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 C조


그러나 어렵사리 사상 최고(혹은 최악?)의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았던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다른 조의 8강 진출팀에 비해 매 경기 모든 힘을 쏟아냈던 두 팀은 비교적 전력을 많이 노출하고 체력을 소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고스란히 8강 토너먼트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러시아에 1-3의 참패를, 이탈리아는 대회 우승팀 스페인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하면서 일찌감치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이탈리아는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지난 월드컵 결승전에서 겨우 떨쳐냈던 ‘승부차기 징크스’를 다시 재현시켰다. 대회기간 내내 원톱 스트라이커 루카 토니가 허공에 날려버린 슈팅은 무수히 많았다. (16번 슈팅에 유효 슈팅 4개!) 수비에선 칸나바로의 공백이 너무 컸고, 중원의 피를로와 가투소가 경고 누적으로 8강전에 출전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나마 부폰이 없었다면 이탈리아는 결코 여기까지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

네덜란드는 이전부터 잠재된 불안요소였던 수비가 발목을 잡았다. 조별리그에서 불안한 수비진은 표면적으로는 1골밖에 내주지 않았지만 수차례 실점위기를 맞았다. 아마도 상대팀 공격수들이 조금만 더 침착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앞선 3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불라루즈는 사흘 전 딸이 출생 하루 만에 숨진 충격으로 경기에서 제 기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늘 불안했던 안드레 오이에르와 요리스 마테이센은 물론이고 믿었던 요니 헤이팅하마저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네덜란드의 약점을 꿰뚫어 본 히딩크 감독의 전략에 ‘오렌지 군단’은 러시아에게 끊임없이 측면 돌파와 공간을 허용하며 1-3으로 속절없이 무너지고 버렸고, 또 다시 메이저대회에서의 비운을 이어가게 됐다.

결국 죽음의 조는 말 그대로 ’죽음의 조‘가 되고 말았다.

[사진 (C) 유로 2008 공식 홈페이지]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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