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미지 기자] '가요톱10' 종영 이후 20년, 대한민국 음악방송에 볼거리가 사라졌다.
음악방송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KBS 2TV '가요톱10'은 지난 1981년 2월 방송을 시작해 1998년 2월 종영했다. 당시 최고의 MC였던 하지훈, 박혜리를 비롯해 임성훈, 오영실, 김병찬, 김광한, 송승환, 마지막 손범수까지 진행을 맡아 활약했다.
한주간 가요계를 조명하며 순위를 매기는 음악프로그램의 시초였던 '가요톱10'이 방송하는 날이면 연령층을 막론하고 다양한 시청자들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같은 비결은 바로 출연진에 있었다. 당시에는 조용필, 이선희, 신승훈, 김건모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 '레전드' 가수들이 '가요톱10'에 출연해 무대를 선사했던 것.
또 90년대 초중반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0대 연령층을 사로잡은 가수들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부모님 세대가 자녀와 함께 '가요톱10'을 보며 세대간 교감을 이뤄낼 수 있었다. 신승훈과 김건모의 세기의 대결은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신문화 등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모여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감정을 나눌 수 있던 것.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더 이상 현재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가요톱10' 이후 20년, '볼거리'가 없어진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특징을 살펴봤다.
◆ 아이돌 또 아이돌 혹은 아이돌 컬래버레이션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주요 타깃층이 10대로 옮겨오면서 더 이상 가족과 함께 생방송을 보는 풍경은 없어졌다. 1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음악방송 체계가 잡히면서 자연스레 주요 타깃 연령층이 낮아진 것. 이는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미쳐 현재의 1~3%대 낮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음반을 내고 음원을 내면 자연스레 섰던 음악방송을 아예 '생략'하는 가수들도 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집중포화 속에서 구태여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무대에 서는 것을 꺼려하는 가수들이 많아진 것.
한 가요 관계자는 "출연진 라인업이 모두 젊은 아이돌 그룹으로 채워진 것에 부담을 느껴 아예 음악 방송을 꺼리게 된 일부 가수들도 있다"며 "그 현상이 반복되고, 또 주변 가수들도 나오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생략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음악방송을 생략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음악 순위 방송에 출연해 음반 판매량이나 차트 순위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순위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 보다 차라리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청률이 높은 예능에 출연하면 단기간 차트 역주행도 가능하다는 것.
순위를 매기는 음악방송 대신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음악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음악방송에서 더이상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됐다. 아이돌 무대 후 아이돌 혹은 아이돌 컬래버레이션 무대만 반복되기 때문.
◆ 짧고 굵어진 방송 활동
지상파 3사를 비롯해 Mnet '엠카운트다운', SBS MTV '더쇼', MBC뮤직 '쇼! 챔피언' 등 케이블 채널에서도 음악방송이 생겨났고, 예전과 다르게 해외 활동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에 가수들의 활동 기간이 완전히 짧고 굵게 변했다.
90년대 중후반에는 타이틀곡부터 후속곡까지 짧아도 3개월 이상 활동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후속곡으로 활동하는 가수들도 찾기 어려워졌다. 후속곡 대신 더블타이틀곡 포맷을 따르며 짧고 굵게 활동하는 가수들이 늘어났다. 활동 기간 역시 길어야 한 달인 경우가 빈번하다.
'가요톱10' 시절 5주 연속 1위의 명칭인 '골든컵'에 버금가는 현상도 사라졌다. 3주 연속 1위의 '트리플크라운'이 시도되는 것도 어려운 판국이다. 때문에 대중의 기억 속에 한 가수의 곡이 오래 남기도 힘들고 신인 가수들이 인지도를 쌓아갈 기회까지 사라진다.
◆ 총 53회 중 50회에서 아이돌 그룹이 1위…끝없는 순위 시비
출연진이 고정화돼있다 보니 1위 역시 아이돌 그룹이 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난해 '뮤직뱅크'의 경우, 총 53회 중 9월 2주차 한동근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와 9월 3주, 4주차 임창정 '내가 저지른 사랑'을 제외하고 50회의 방송 모두 아이돌 그룹이 1위를 차지했다. 쏠림 현상이 극대화돼 있는 것.
순위 선정 방식 역시 팬덤의 크기를 따른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령별로 전국 투표인단 2,800명을 선정해 투표하고 집단 투표인단, 가요담당 PD 등의 의견이 종합돼 선출됐던 '가요톱10'과는 달리 '뮤직뱅크'는 디지털 음원, 모바일 음원, 음반 판매량, 인터넷 설문 조사 등으로 순위가 집계되기 때문.
일각에서는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팬덤이 큰 가수가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음원차트 상위권과는 거리가 먼 아이돌 그룹이 1위를 차지하면 늘 불거지는 시비다.
때문에 방송 3사 대표 음악 순위 프로그램인 KBS '뮤직뱅크', MBC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모두 순위제를 폐지한 경험이 있지만 결국 순위 프로그램의 의의를 위해 다시 살렸다. HOT3 체제를 유지하던 '음악중심' 역시 오는 22일부터 다시 순위제로 돌아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요톱10' 종영 이후 20년. 대중음악을 둘러싼 수많은 환경이 바뀌었지만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지상파 3사가 유지를 하는 것은 물론 케이블 채널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볼거리가 사라지고 주요 시청자층이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
좀 더 많은 연령층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꼭 정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사하며 더 많은 시청자에게 보물 같은 곡 그리고 무대를 선사하는 것은 음악방송이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시청률이 최저치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다양한 시도로 색다르게 접근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케이팝이 글로벌적인 인기를 끌며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의 음악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현재, 영향력이 커진 만큼 음악방송의 방향성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때이다.
am8191@xportsnews.com / 사진=KBS 2TV, KB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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