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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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그라운드와 스탠드 사이에 서서

기사입력 2008.05.18 08:04 / 기사수정 2008.05.18 08:04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이 축구를 볼 때 서 있는 위치는 어디쯤 인가요? 혹시, 당신이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는 않나요? 그리고 당신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과 모여 서서 여러 구호와 노래를 부르지는 않나요? 제가 던진 이 질문에 모두 예. 라고 대답을 하셨다면, 당신은 어느 한 팀의 후원자겠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혹시, 피치 근처에서 몸을 푸는 상대팀 선수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욕설을 내뱉은 적이 있나요?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은 그라운드와 관중석 사이입니다.

그렇다 보니 선수들과 서포터즈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죠. 보통 대기 선수들은 경기장 옆쪽으로 서서 몸을 풉니다. 그러나 성남 탄천 종합운동장은 홈 팀인 성남이 쓸 수 있는 작은 잔디가 골대 뒤 광고판 뒤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 큰 잔디는 아니지만 트랙에서 몸을 푸는 것보다는 효과적이겠죠. 그래서 성남 선수들은 항상 그곳에서 몸을 풀고는 합니다. 그리고 성남은 다른 곳과 반대로 홈 팀 서포터 석이 남쪽에 있습니다.

서포터 석이 반대쪽에 위치한 탓에 잔디 위에서 선수들이 몸을 풀다 보면 웃지 못할 상황들이 생기고는 합니다. 그 중 대부분은 상대팀 서포터와 생기는 마찰인데요. 물론 거의 대부분은 원정팀 서포터가 선수를 자극하면서 시작되는 것이고, 이상하게도 그 들이 자극하는 선수들은 노장 축에 속하는 30대 선수들입니다.

2년 전쯤 우성용이 아직 성남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도 이런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그땐  우성용이 서포터석 근처로 연습 중 흐른 볼을 주우러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성용이 향한 방향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습니다. 단지 볼을 주우러 갔을 뿐인데 그를 발견한 상대팀 서포터가 그에게 욕설 담긴 말을 내뱉은 것이죠. 우성용이 발끈해 반응을 보이자 또 다시 관중석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아온 우성용이 다른 선수들에게 토로하듯 내뱉은 말은 '서른도 넘고 자식도 딸린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이었죠.

이번엔 김해운이 비슷한 일을 당했습니다. 때는 포항과의 경기가 있었던 지난 3일이었습니다. 토요일 3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포항 서포터 응원석인 S석에 꽤 많은 팬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근 포항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하는 성남인지라 이번 홈경기가 더욱 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성남도 포항도 그야말로 치열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후텁지근한 날씨만큼이나 후끈한 경기가 계속되었죠. 경기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심판의 휘슬도 바빠지기 마련입니다. 휘슬이 바빠지면 주머니 속의 노란색 카드들도 자주 모습을 보이기에 마련이죠. 포항 선수들이 경고를 받자 포항 응원단 쪽의 자리에서 강력한 항의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런데 그 항의의 뜻이 엉뚱하게도 몸을 풀고 있는 성남의 대기선수들에게 향하더군요.

갑자기 큰 소리로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함께 대기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해운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당황한 김해운이 바라보자 또 다시 욕설과 함께 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함께 섞여 들려오더군요. 그 상황에서 선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김해운은 마냥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옆에서 몸을 풀던 김정우가 '그냥 참으시라'며 김해운을 다독이더군요.

그 후 김해운은 서포터석이 아닌 중계를 위해 서 있던 카메라맨에게 다가가 푸념 섞인 웃음으로 저런 욕하는 애들 찍어서 방송에 내보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건네더군요. 그리고는 기자에게 이런 것 기사 안 쓰고 뭐 쓸 거냐면서 타박 아닌 타박을 하더군요.

조금 뒤 김정우도 비슷한 이야기를 건네고 몸을 풀러 그라운드로 나갔고요. 이러한 타박과 고충의 토로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들려오는 욕설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고개를 돌려 쳐다볼 때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선수들의 그런 얘기에 선뜻 기사를 쓰겠다고 대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름 민감한 문제이고 기자 또한 서포터즈 생활을 한 적이 있는지라 그 들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죠.

어찌 보면 선수들은 피해자일 때가 많습니다. 서포터와 팬은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경기장을 출입한다는 이유로 선수들에게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물론, 가끔 벌어지는 선수와 서포터의 '충돌'의 원인이 전부 서포터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도 당연히 관중석에 있는 모든 관중들을 존중할 의무가 있습니다. 상대 서포터를 자극할 수 있는 세리머니는 물론 자행되어서는 안 될 행동임이 분명하죠. 그러나 이유 없는 혹은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선수를 향한 인신 공격성의 욕설 또한 분명 지양되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지인에게 왜 그런 욕설을 선수에게 했냐고 물었습니다. 혹시 기자가 보지 못한 사이에 선수가 무언가 서포터에게 제스처를 취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심판 판정 때문에 열이 채여서'였습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단지 심판의 판정이 맘에 들지 않아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30대 중반의 대기 선수가 어린 팬들에게 상스런 욕설을 그대로 들어야만 하다니요.

항상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신이 사랑하는 팀을 위해 목이 터져라 구호와 노래를 외치며 먼길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 그 들이 K-리그를 위하는 진정한 팬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내 팀 선수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모든 K-리그 선수에게 인격적인 대우는 해 줄 필요가, 아니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 들도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겠죠.

K-리그 연맹은 이번 시즌부터 'K-리그 경기장 안전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경기장 난입이나 오물 투척 등을 금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런 물리적 위해만큼이나 선수들이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 정신적인 위해입니다.

멋진 응원이 아닌 욕설로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것은 결코 팀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될 수 없음을 한 번만 생각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참고: 사진은 특정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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